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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름의 이름은.

 

 

   더위는 계속되고 내겐 이름이 생겼다. 살면서 가만 따라다닐 꼬리표 같은 거였다. 부모님은 부푼 맘으로 여러 낱말을 솎았다. 당시의 유행, 애 딸린 몇의 권유, 혹은 시댁에서 바란 이름을 고민하기도 했다. 많은 얘기가 오갔고 내게 붙여지다 떨어진 글자는 쌓여갔다. 사전 속 시원찮은 단어엔 빗금, 나름 괜찮은 뜻에는 동그라미가 쳐졌다. 아버지는 자신의 아이를 ‘태양’이라고 부르길 원했다. 하늘 위 새하얀 구처럼 온 세상을 비추란 뜻이었다. 남루하긴 해도 그거대로 좋은 이름이었다. 내 호적에 ‘태양’이 새겨질 즈음이었다. 여름이 기승을 부렸다. 아버지는 해와 가깝고도 먼 거리에서 돌아가셨다. 어머니는 의당 그래야 하는 듯 바다 ‘해’ 자와 항렬자 ‘영’ 자를 따와 이름을 고쳤다. 그냥 그런 얘기를 들었다.

 

   6월이 왔다. 이불을 개고 첫 오줌을 눴다. 아침의 구취는 찌뿌둥했다. 입안은 간밤을 설친 냄새로 득실댔다. 부엌으로 가 물을 마셨다. 밋밋한 입자들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뱃속에 쌓여갔다. 물의 온도에 체온이 시들해져 정신을 맑게 했다. 기지개를 켜고 커튼을 걷었다. 창 너머에서 조그만 햇빛이 들어와 방바닥에 아른거렸다. 값싼 전셋집에서 보는 풍경은 보잘것없었다. 건너편 이웃의 담장이 바싹 붙어 낡은 벽면만 도드라졌다. 얄팍한 경계선은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얼굴조차 모르는 이웃과 난 서로의 사정을 쉽사리 공유했다. 현관문을 여닫고, 뭐라 질문하고 대꾸하고, 간간이 들리는 웃음소리와 고함은 이제 익숙한 소음이었다. 하루치 이웃의 기척은 때론 냄새의 형태로 바람에 실려 왔다. 꿉꿉하고 기름진 생선과 고기의 찌든 내, 찌개와 장조림의 맵고 짠 향이 어지러이 섞여 집안 곳곳에 번지곤 했다. 방충망은 금세 더러워졌다. 촘촘한 십자수 사이엔 때가 꼈고 누렇게 변했다. 환기할 때면 의도치 않은 이물질이 들어왔다. 바람은 곰팡이, 세균, 땀, 피지를 실어 날랐다. 도심 속 매일 떠다니는 누군가의 흔적 같은 거였다. 그들의 체취는 자꾸만 흘러와 코끝을 괴롭혔다. 먼지는 방충망과 에어컨으로 들어왔다. 최근에는 평생 달고 산 비염이 심해져 유독 달떴다. 창문을 열든 말든 똑같았다. 덥고 습한 공기와 체취에 나는 결국 재채기를 했다. 아무리 싫증 나도 하는 수 없었다. 밖은 지금 열대야였다.

 

   서랍장에서 얇은 옷을 꺼냈다. 네모났게 접혀있는 여름옷 아래엔 봄옷, 가을옷, 겨울옷이 뒤섞여 있었다. 정신없는 일 년의 구분은 순전히 ‘귀찮음’의 결과였다. 손수 시간 들여 정리할 생각은 없었다. 다소 어수선해도 옷이란 건 결국 몸을 싸서 가리는 용도, 그게 다였다. 바깥을 나돌기 위한 한낱 구색에 신경을 꺼둔 진 오래다. 세탁기에 마구 돌려 청바지의 색이 바래든, 체육복이 줄어들든, 아무래도 좋았다. 면 재질의 상의에 목을 집어넣고 두 팔을 빼고 나서야 속옷 차림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거울 앞에서 멋쩍게 서 빗으로 가르마를 탔다. ‘오늘 교통은 어떨지’, ‘손님은 얼마나 올지’, 따위의 걱정 끝에 준비를 마쳤다. 현관에는 갈리고 찢긴 신문 쪼가리가 가득했다. 얼굴이 반절만 남은 기상 아나운서, 커다란 해 그림, 둥글게 잘린 녹은 아스팔트와 차선 유도봉 사진 등을 굽어봤다. 어젯밤만 해도 가지런히 한편에 있던 신문지가 새벽 새 묽은 폐지가 된 거였다. 누가 한 짓인진 금방 알 수 있었다. 신발장과 문틈 사이, 종이를 양껏 물어뜯은 그 ‘누가’ 은근슬쩍 기어나와 꼬리를 흔들며 짖었다. 나는 다그치고 성을 내는 대신 나지막이 한마디 했다.

   -31, 하지 말랬지?

 

   도로는 북적였다. 차들은 끊임없이 서로의 꽁무니를 뒤따랐다. 작고 큰 수백 대의 배기관이 까만 입김을 뿜어댔다. 오전 반나절의 매연은 지독했다. 넓은 데서 떼로 이동하던 차들은 낱낱이 흩어졌다. 직선, 곡선, 사선을 비롯해 여러 갈래로 뻗어가고 어디선가 무심코 온 다른 무리와 합쳐졌다. 도로 위 선과 선은 그냥저냥 닿고야 만다. 지상에 이룩한 길은 각지로 연결돼 쨍쨍한 열기를 동시에 맞았다. 모래, 돌가루, 석유가 혼합된 본연의 색과 하도 상기된 빛이 아우러졌다. 이따금 반짝이는 게 해변의 야트막한 파도 같기도 했다. 혼잡한 교통은 잦은 소음을 내며 돌아갔다. 한적함에 못 이겨 라디오를 듣는 여자, 버스 속 왁자지껄 웃고 떠드는 중학생들, 앞차의 경적에 유리창을 내리고 욕하는 그치가 그랬다. 이들 모두 어디서 흘러와 오고 가는지, 혹은 막 돌아왔거나 곧 떠나갈 사람인지 알 수 없었다. 이름은커녕 짧은 성도 몰랐다.

 

   날은 무더웠다. 며칠째 그런 하루가 계속됐다. 태양은 한껏 뜨거워져 여름 한낮에 광채를 더했다. 뙤약볕은 수천 장의 유리로 지은 빌딩이나 고급 아파트, 낡은 주택을 비롯해 지하 단칸방까지 드리워졌다. 빛은 모두에게 공평했다. 창문의 크기와 모양은 물론 동서남북에 상관없이, 혹여 서쪽을 향하든, 어떻든 간에 비집고 들어와 내부를 달궜다. 쌩쌩 달리는 차도 예외는 없었다. 두꺼운 선팅을 해봤자였다. 자연의 파동은 손쉽게 얇은 막을 뚫고 보란 듯 아른거렸다. 꽃은 지고 푸른 고목에 생기를 주는 계절은 묘했다. 맑은 하늘엔 구름 대신 여러 대륙을 오간 이력이 찍혔고 먼 타지의 외딴 온기와 고민, 상념, 여러 생각의 파문을 불어왔다. 해의 줄기찬 광은 시원하니 잘 뻗은 직모, 뒤엉킨 곱슬, 단발과 장발, 휑뎅그렁하거나 미용실의 샴푸 향을 풍기는 머리에 쏟아졌다. 후텁지근함은 사람들에게 바싹 엎드리라는 양, 남쪽 나라의 생활을 강요했다. 달동네의 아낙네는 매일 선크림을 펴 바른 채 양산을 들고 시장을 나돌았다. 그녀의 아들은 방구석에 꼼짝하니 누워 선풍기를 틀고 아이스크림을 핥았다. 옆집 이웃이 떠드는 여행 계획은 회전하는 프로펠러에 실려 소문처럼 천천히 번졌다. 자취방에 사는 여자는 연인과 바닷가로 향했고 고기압에 한층 끈적해져 몸을 섞었다. 혹독한 날씨 속 삶의 동선은 각기 달랐다. 도심 속 택시들은 별의별 목적지를 향해 움직였다. 병원, 은행, 마트, 회사처럼 쉽게 접할 곳이나 연고 없는 지방에 가기도 했다. 기사들은 ‘노란 갓등’, 내지는 ‘푸른 갓등’을 깜빡이며 얼른 손님이 타, 빛이 꺼지길 고대했다. 광채로 꽉 찬 구 아래, 무색을 좋아하는 사람들, 나도 그들 중 한 명이었다.

 

   아침이 가고 점심이 왔다. 택시들은 갓길에 붙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나 역시 그 언저리에 차를 대고 밖으로 나왔다. 언제나 그랬듯 몇 기사들과 함께 담배를 입에 물었다. 길게 늘어선 가로수 그림자는 시원한 휴식처였다. 우린 흰 연기를 매개로 잡다한 얘기를 나눴다. ‘뒷좌석에 쪼그려 앉아 소변을 본 여자’, ‘음료수를 쏟고 간 아이’, ‘계좌로 입금한다며 홀연히 사라진 커플’ 등 돈 벌기 힘들다, 식의 대화였다. 내가 이렇게 지독하게 산다고, 누군가 한숨을 쉬면 다른 이들이 잇따라 하품하고 침을 뱉었다. 입속 니코틴을 나풀댈수록 가지에 똬리 튼 매미는 한층 초조하게, 목청껏 울어댔다. 구애치고는 거칠고 투박한 소리였다. 무심코 먹고만 독성 물질에 질려 몸서리치는 비명일지도 몰랐다. 박 씨는 허공에서 원 모양으로 빙빙 도는 벌레를 내쫓고 담배를 튕겼다.

   -아, 맞다. 너희들.

   박 씨가 내 어깨를 툭툭 쳤다.

   -얘가 뭘 데리고 사는 줄 아나?

   기사들은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며 ‘뭔 소리야’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중 한 명이 입을 열었다.

   -뭐고, 손님하고 살림이라도 차렸나?

   몇몇이 낄낄대며 웃었다. 담배 연기가 입바람에 금세 지워졌다. 박 씨는 살짝 파인 보조개를 실룩댔다.

   -이놈, 이거. 가끔 개 태우고 다닌다. 개.

   기사들은 일제히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잠시 머뭇대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물었다.

   -응? 뭐? 그 멍멍 짖는 개?

   -그래, 그렇다니까.

   박 씨는 다시 내 쪽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저번에 뭐랬지? 왜 데리고 다닌다고?

   나는 심드렁히 대꾸했다.

   -전기세 아끼려고요.

   ‘31’, 나는 새까만 개를 그렇게 불렀다. 31은 유려한 핏줄은 아니었다. 골목을 걷다가 흔히 마주치는 잡종이었다. 31은 사람으로 치면 40살 후반, 딱 서너 달 후엔 노년으로 접어들 나이였다. 31은 적당히 살갑고 애교 있는 성격이었다. 녀석의 혓바닥은 매일 분주하게 움직였다. 끈적한 침샘은 장시간 운전으로 생긴 비지땀, 동전과 현금을 건네받으며 묻은 철의 독소, 어쩌다 묻은 세균 등을 말끔히 녹여냈다. 31은 할짝거리며 오전보다 오후, 어제보다 내일, 아주 조금씩 깊어지는 손 주름을 느꼈다. 개는 시간에 민감했다. 찰나에도, 훌쩍 털이 돋고 몸집이 커졌다. 31은 자라고 늙어가는 게 뭔지 알고 있었다. 지금은 탁한 눈망울로 쳐진 살결을 굽어보며 점점 스러져 가는 자신을 꺼렸다. 사람과의 시차를 몰라 줄곧 내 주위를 빙빙 돌며 냄새를 맡았다. 나는 달이 찰수록 썩어가는데, 너는 괜찮냐고, 걱정하는 투로 킁킁댔다. 31의 콧속엔 탈락한 피부 쪼가리, 매일 먹는 김치와 절인 채소 냄새, 비누와 샴푸 향으로 가득할 터였다. 내게서 떨어진 부스러기는 곧장 31의 몫이 되었다. 누군가와 어떤 일부, 매일의 순간을 공유한다는 건 새로웠다. 31은 일상을 울퉁불퉁하게 만들었다. 딸칵, 부엌 스위치를 켰을 때, 냄비, 커피포트, 반찬통, 숟가락과 젓가락, 오래 묵혀둔 접시들이 31의 행방에 이리저리 치이고 떨어져 바닥을 더럽히는 일은 ‘종종’과 ‘빈번’ 사이 잊을 만하면 생겼다. 찢긴 종이를 발견하는 건 기본이고 어쩌다 한 번은 딸칵, 화장실 불을 켰는데 두루마리 휴지가 네모난 칸마다 뜯겨 얄팍한 수면에 녹아 있기도 했다. 딸칵, 딸칵, 여러 번의 딸칵 소리 뒤엔 늘 31의 발자취가 있었다. 긴 체모와 동물 특유의 비릿한 냄새는 ‘31이 다녀간 자리’를 보란 듯이 알려줬다. 31의 흔적은 점점 옅어지는 동시에 짙어지고 있었다. 어느샌가 털은 푸석하니 가느다랗게 변했고 살 내음은 한층 퀴퀴해졌다. 한 계절이 가고 여름이 올 동안, 31과 난 많은 걸 함께했다. 밖으로 나와 걷고, 뛰고, 공을 주고받고, 강가의 산책로나 널찍한 공원에서 쉬거나 놀고 마냥 시간을 보냈다. 31과 난 ‘선생과 학생’, ‘부모와 자식’, ‘친구나 형제’ 같이 비슷한 듯 다른 서로가 됐다. 31이 ‘앉아’, ‘일어서’ 등의 지시를 따르면 칭찬했고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면 꾸짖었다. 나란히 소파에 앉아 티브이를 보거나 한데 이불을 덮고 잠을 자기도 했다. 31은 둥글게 살던 내게 이런저런 변화를 줬다. 훈육하고, 보살피고, 정을 주고, 온종일 페달을 밟다가 사료를 사고, 동물병원에 가고, 원을 그리던 동선은 어느새 아무렇게나 휘갈긴 서툰 낙서가 되었다. 삶의 촉이 다음엔 어디로 향할지, 또 무얼 그릴지 몰랐다. 알 수 없다는 건 오늘의 기대와 내일의 설렘을 줬다. 11월과 12월이 가고 한 자릿수 달이 왔을 때 비로소 그랬다. 그러니까, 6월이나 7월 역시 똑같을 거라 여겼다.

 

   31은 앞집 부부가 키우던 개였다. 두 사람은 2층 주택에 살았다. 업자를 잘 구했는지, 큰돈을 들였는지, 어쨌거나 인테리어가 근사한 곳이었다. 외벽은 흰색으로 통일했고 테라스와 베란다엔 큼지막한 창문이 있었다. 까만 필름이 부착된 유리는 제 역할을 잘 알고서 낮이고, 밤이고, 빛이라면 무조건 반사했다. 퇴근길의 헤드라이트도 앞집의 사생활 보호를 방해하진 못했다. 철제 울타리 안쪽, 까무룩 잠에 든 31만이 빛에 예민해져 으르렁거렸다. 집 주변을 오가며 본 31의 모습은 다양했다. 밥그릇에 얼굴을 들이밀고 날름거리고,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고, 어떨 때는 앓는 소리를 내며 배를 까뒤집기도 했다. 부부는 31을 다루는 게 어설펐다. 남편은 목줄에 끌려다녔고 아내는 배변 봉투를 몹시 더러워했다. 두 사람은 짐승의 왕성한 활동량과 오물을 닦고 치우는 일에 질려 31을 점점 방치하기 시작했다. 31은 때때로 앞마당에서 나뒹굴고 짖었다. 온몸으로 열심히 ‘산책’이란 수신호를 보내는 듯했다. 부부의 응답은 주로 세 가지였다. 평소엔 무시하고, 가끔 31의 응석을 받아주고, 유난히 시끄러운 날이면 호통쳤다. 봄이 다가올 즈음, 앞집엔 낯선 사람들이 들락거렸다. 그들은 냉장고, 세탁기, 책상과 의자, 온갖 생활 물품이며 잡동사니까지 트럭에 싣고 떠났다. 부부가 유일하게 남긴 건 31이었다. 녀석은 철제 울타리에 묶여 있었다. 31은 두 사람이 사라진 쪽을 향해 앞발과 뒷발을 왕복하며 짖어댔다. 목줄은 아무리 팽팽해져도 끊기지 않았다. 소리가 닿기엔 너무 멀었다.

아마, 거슬렸을 거다. 한밤중에 개가 울부짖는 음성은 스산했다. 어제도, 오늘도 부부는 돌아오지 않았다. 내일도, 한 달 뒤에도 그럴 터였다. 31은 동네에 드리워진 땅거미를 내쫓듯 발을 동동 구르고, 불안한 듯 끙끙거리며 한산한 도로를 응시했다. 나는 일회용 접시에 물을 담아 31의 앞에 내려놓았다. 목이라도 축여서 조용해졌으면 했다. 접시 속 출렁이는 액체를 보고 녀석은 뒷걸음쳤다. 31은 빨고, 씹고, 삼키는 뭔가에 익숙하지 않았다. 어떤 음식이든 부부의 손길이 닿아야만 안심하고 먹고 마실 수 모양이었다. 31의 입장에서 내가 주는 물은 뭐가 들었을지 모를, 께름칙한 거나 다름없었다. 경계심은 몇 번의 발악으로 나타났다. 한참을 짖더니 녀석은 대뜸 지친 기색을 보였다. 31은 눈과 다리에 힘이 풀려 온몸을 경련하듯 떨었다. 이때다 싶어, 접시를 앞쪽으로 밀었다. 31이 한 걸음 물러서면 나는 두세 걸음 가까이 다가갔다. 구석에 몰린 31은 잔뜩 당황한 눈초리로 주위를 살피다 귀와 꼬리를 힘없이 내렸다. 녀석은 결국 체념한 듯 물을 먹었다. 속도는 점점 빨라졌다. 어느새 접시엔 물방울 자국만 남았다. 31은 기분이 좋아졌는지, 더 달라는 재촉인지, 가쁜 숨을 여러 번 내셨다. 무심코 손을 뻗었다가 31의 코앞에서 멈칫했다. 머리를 툭툭 건드렸다. 저항은 없었다. 조금 더 용기 내 털을 쓰다듬으면서 문득 생각했다. 상추나 깻잎, 생선, 고추, 나물, 아껴 먹던 소고기, 찌고, 데우고, 볶고, 날것이나 조리한 음식 중……개는 뭘 먹지, 하고.

 

   거치대 위 휴대전화가 울렸다. 예약 손님이었다. 곧장 ‘수락’ 버튼을 누르고 핸들을 돌렸다. 짧은 근거리라 얼마 안 가 도착할 듯했다. 미터기 속 기본요금은 움직이지 않았다. 택시 기사들은 숫자에 민감했다. 수학자, 공학자, 물리학자, 통계학자, 하다못해 마트의 재고 물량 담당자도 아닌데 이상했다. 똑같이 수에 집착하는데 각자의 공식은 달랐다. 그들에게 ‘없음’의 개념은 ‘0’이었고 우리에겐 ‘4800’이었다. 승객이 타지 않으면 미터기의 천 단위는 의미가 없었다. 사람들은 도로를 가로지르고, 전화를 걸고, 길가에서 손을 흔들며 택시를 잡았다. 문을 여닫는 횟수가 많아지고 뒷좌석에 분내, 술내, 알싸하고 꿉꿉한 냄새가 가득해야 겨우 입에 풀질할 수 있었다. 도로의 신호는 지켜도 과로의 적색 불은 무시했다. 쉬지 않고 페달과 브레이크를 밟아야 했다. 이마에는 땀이 맺혔다. 세찬 여름빛은 한기를 타일렀다. 평소 점잖은 성격에 열이 뻗쳐 일순간 달아올랐다. 나는 또박또박, 그리고 분명하게 말했다.

   -씨발.

 

   오전, 신문지 조각을 일일이 쓸어 담았다. 내친김에 대충 청소기를 돌렸다. 지저분한 생활의 흔적은 호스를 타고 빨려 들어갔다. 먼지 통 속 31의 털도 제법 많았다. 최근 들어 녀석의 상태가 좋지 못했다. 병에 걸린 건 아니었다. 피도 뽑고, 엑스레이도 찍고, 여러 검진 후, 의사는 이상이 없다고 했다. 31을 아프게 하는 건 시간이었다. 다른 개들의 하루가 31에겐 이틀이었다. 반려견의 평균 수명은 10살 초반이라는데 모두가 그런 건 아닌 모양이었다. 31은 시곗바늘의 변화에 조바심을 느껴 나는 아직 젊다고, 억지로 활발한 척을 하는 듯했다. 집에 돌아오면 31은 곯아떨어져 있었다. 최근에 부쩍 잠이 많아진 탓이다. 먹을 걸 들고 기웃거려도 좀처럼 눈을 뜨지 않았다. 혹여 무더위의 영향일까, 나는 매번 에어컨을 신경 썼다. 전기세는 끊임없이 나가고 31의 건강은 돌아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31을 흘끔 보고 옷장에서 조수석에 깔 방석을 꺼냈다.

 

   -이름이 왜 31이에요?

   승객 중 누군가 이런 질문을 할 때면,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

   -택시 번호판을 보세요.

   대답을 들은 승객들은 저마다 ‘아!’ 하고 무언가 깨달은 듯 짧은 신음을 내뱉었다. ‘31’이란 이름은 ‘31바 5550’의 앞쪽 두 글자에서 따온 거였다. 인터넷에 ‘개 이름 짓는 법’, ‘애완견 예쁜 이름’ 같은 검색어를 치며 여러 번의 고민 끝에 ‘31’을 택했다. 흔하지도 않을뿐더러, 이 세상에, 적어도 대한민국에서 유일한 듯, 아닌 듯, 그 미묘한 줄달리기가 마음에 들었다. 처음으로 넌 31이야, 하고 불렀을 때 불쑥 뭉클해졌다. 누군가에게 이름을 준다는 게 이런 거구나, 하고 처음 깨달았다. 31에겐 부부가 지어준 원래 이름이 있을 터였다. 31은 검은색 털이 특징이니 ‘깜둥이’나 ‘껌둥이’였을까, 아니면 겉모습과 전혀 관계없는 이름일 수도 있겠다. 31과 난 무척 닮았다. 우리에겐 버려진 이름이 있었다. 31, 하고 이름을 부를 때면 이따금 아버지가 생각났다. 또 내가 ‘해영’이 아니라 ‘태양’으로 살았다면 어땠을까, 하고 스스로 되묻곤 했다. 31은 원래 이름이 좋을까, 지금 이름이 좋을까. 아무리 물어도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뜨겁고, 차갑고, 비리고, 물컹거리고, 쓰고, 짜고, 맵고, 달고, 이름엔 알게 모르게 붙어버리는 이미지가 있었다. 그 성질에 따라 인생이 결정되는 건 아닌가 싶었다. 그럴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다. 그냥 그렇다는 거였다.

   예약한 손님은 젊은 여자였다. 그녀는 트렁크를 열어달라고 했다. 외국으로 여행을 떠날 모양인지 손에는 캐리어가 들려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여자는 인천 공항으로 가달라고 했다. 그녀의 복장은 두꺼웠다. 날씨에 맞지 않게 각각 손목과 발목까지 오는 옷을 입고 있었다. 더위를 피해 눈이 오는 지역으로 가는 듯했다. 떠나려는 사람이 많이 몰리는 곳은 가는 길도 복잡했다. 모퉁이를 돌자, 차들이 왕왕거렸다. 길게 뻗은 도로에서 아주 조금씩 전진했다. 느리게 전진하는 앞차를 노려보다가 라디오를 틀었다. 양쪽에 송송 뚫린 구멍에서 여러 사연이 흘러나왔다. 여자는 언짢은 표정으로 한숨을 쉬더니 이어폰을 꺼내 귀를 꽂았다. 그러다 보조석을 훑더니 별안간 비명을 질렀다. 하마터면 급브레이크를 밟을 뻔했다.

   -뭐야, 왜 그래요?

   -아니, 아니.

   여자는 믿기지 않는 듯 호흡을 가다듬고 한쪽 이어폰을 뺐다. 목소리가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저게 대체 뭐예요? 아니, 저거 개 맞죠?

   -네네, 이름은 31인데, 왜 그러냐면…….

   -아니 그러니까, 개가 왜 여기 있냐고요.

   좋게 대화를 이어가려 해도 쉽지 않았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여자는 털 알레르기가 있다고 했다. 지금까지 받은 승객은 처음엔 놀라도 목적지의 중반쯤 갔을 때 나름 무심해졌다. 31의 이름이나 견종, 소셜 미디어에 올려도 되냐며 묻곤 했는데, 여자는 모두 아니었다. 그녀는 여러 감정이 섞여, 뭐라 형용할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기가 찬 얼굴이었다.

   -미쳤네.

   여자가 나지막이 말했다. 뭐라 대꾸할 말이 없었다. 나는 입을 다물고 분위기를 풀 노력을 꺼트렸다. 짜증이 났다. 날이 더워선지, 손에 밴 땀이 신경 쓰여 그랬는지, 잘 모르겠다. 안절부절, 여자의 눈치를 살폈다. 그녀는 모든 게 질렸다는 듯, 31을 보고 코를 막는 시늉을 했다. 순간 모든 게 여자의 탓인 듯 느껴져 내 안의 무언가 끊어졌다. 전에도 이런 적이 있었다. 무더운 날들이, 31이 숨을 헐떡이던 시절이, 시간이 갈수록 고약해지는 냄새, 흩날리는 털과 미터기의 숫자가, 그러니까 길고 무더운 여름이 갑자기 싫증 났다.

   -잠시만요.

   갓길에 차를 댔다. 목줄을 챙겨 31을 품에 안아 밖으로 나왔다. 가로등 아래 31을 묶었다. 공항은 여기서 금방이었다. 여자만 데려다주고 곧바로 다시 올 생각이었다. 31의 짖음을 신경 쓰기엔 비지땀이 불편했고, 매미 소리가 시끄러웠다. 나는 운전석에 타 여자를 향해, 왠지 통쾌해져 말했다.

   -이제 됐죠?

 

   ……‘31’, 나는 그 이름을 외쳤다. 아무리 주위를 둘러봐도 녀석의 실루엣은 보이지 않았다. ‘딸칵’ 문을 닫고 밖으로 나왔다. 바닥엔 목줄만 떨어져 있었다. 끊긴 매듭엔 31의 이빨 자국이 있었다. 발걸음을 재촉했다. 가슴이 아려왔다. 믿을 수 없었다. 도로를 제대로 쳐다볼 수 없었다. 31은 이름의 푯말을 따라갔을 터였다. 서서히 멀어져 가는 ‘31바 5550’을 따라 바닥을 딛고, 뛰고, 차의 행렬을 피하면서, 다른 건 모르겠다. 끔찍한 공상이 머릿속을 덮쳤다. 설마, 아닐 거야, 나는 힘없이 목줄을 챙겨 택시로 돌아왔다. 등받이에 기대 세수하듯 눈가를 비볐다. 노을은 도심을 빨갛게 물들였다. 대시보드에 붙여놓은 인형이 춤을 췄다. 태양열을 받을수록, 서둘러 좌우로 허리를 흔들었다. 한참 보고 있자니 이쪽, 저쪽, 몸을 마구 흔들었을 크레인 위의 누군가 생각났다.

 

   내가 태어날 무렵, 아버지는 공사판에서 일했다. 구호에 맞춰 헤프게 다리를 벌리고, 오므리고, 자제를 들고 지상에서 멀어질수록 아버지는 검게 탔다. 수분은 금세 휘발되고 피부를 쪼그라들게 했을 터였다. 같은 하루가 반복될수록 아버지는 지쳐갔다. 그를 지탱하는 건 젊은 아내와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자식이었다. 아버지는 크레인 위에서 태양을 보며 더욱 분주히 움직였다. 오른팔을 높이 들고, 태양을 한 번 보고, 왼팔을 뻗고, 또 태양을 보고, 함성을 지르고, 태양을 생각하고, 물을 마시고, 여전히 움직였을 아버지는 어땠을까. 열사병으로 죽어갈 때도 나에게 이름을 붙인 걸 후회하진 않았는지, 묻고 싶었다.

 

   내게 붙여준 이름. 그리고 내게 이름을 붙여준 누군가를 생각하자 눈시울이 붉어졌다. 도로 위 온갖 종류의 헤드라이트가 아른하게 빛났다. 푸른 갓등과 노란 갓등은 여전히 반짝였다. 차가 오고 간 자리, 번호판 아래 무언가 있었다. 31은 미동이 없었다. 나는 피투성이 녀석을 조수석에 앉혔다. 31의 첫 번째 이름을, 어떻게 정의할 수 없는 그 언어를, 처음으로 긍정했다. 창문을 열고 바람을 쐤다. 매를 맞은 듯 온몸이 화끈거렸다. 난데없이 여름의 이름을 묻고 싶었다. 내일은 오늘보다 더울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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