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
은
미
소
설
가
2008년 현대문학 신인상 등단
2014, 2015, 2017년 제5, 6, 8회 젊은작가상 수상
2018년 제26회 대산문학상 소설부문 수상
2021년 제66회 현대문학상 소설부문 수상
2021년 제54회 한국일보문학상 수상
작품
『마주』(2023)
『눈으로 만든 사람』(2021)
『아홉번째 파도』(2017)
『목련정전』(2015)
일시 : 2024년 11월 27일 16시 30분부터
장소 : 광주대학교 행정관 3층 301 스마트강의실
소설의 장소, 소설의 감정
“분노는 한 사람의 내면에서 촉발되는 감정이지만, 굉장히 외적으로, 사회적으로 해석되는 경우가 많다. 분노를 어떻게 표출하는지에 따라 그 사람의 정체성이 보이기도 한다. 분노는 분노 그 자체로 표출되기보다는 슬픔이나 우울, 히스테리, 짜증, 안달 등의 다른 감정으로 오인되거나 위장되어 표현된다. 그리고 사실, 우리는 ‘분노하는 사람’ 자체보다는 ‘누가 분노하는지’에 따라 다른 감상을 받는다.”
“그동안 제 자신을 투영해서, 투사해서 인물을 만드는 걸 좋아했다. 나 자신을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가 컸고, 당사자로서 목소리를 내는 것이 필요했던 시기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자기 자신을 투사해 어떤 인물을 그리면, ‘나’라는 영역만 커져 가고 인물의 영역은 줄어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물을 그 자체로 이해하고 바라보며 소설에 그려내는 것. 우리가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것은, ‘타인의 신발을 신어보는 것’이 아닐까.”
소설이 정서적인 감상에서 실체화된 감각으로 넘어오는 순간이 있다. 소설 속 인물이 느끼던 특정한 감정이 종이의 표면을 돌아다니다 내게로 옮겨 붙을 때. 그 감정들이 “일어났다 사라지고, 솟아났다 흩어지고, 눌리고, 찌그러지고, 터져 나와 천장에 파편처럼 박혀버”¹릴 때. 그래서 글을 읽는 내가 마치 ‘내’가 아니게 되고, 인물이 그저 ‘인물’로만 존재하는 게 아니게 될 때.
작가가 강연을 통해 소개한 폴 오스터의 『고독의 발명』에서는 이러한 문장이 나온다. “그 사진으로부터 온 세상이 나타나는 것처럼 보인다. 분명한 시기, 분명한 장소, 과거에 대한 지울 수 없는 느낌.” 그에게 있어 그러한 사진, 즉 공간은 주명덕 작가의 ‘사진Ⅱ-풍경’ 연작인 ‘대기리(디지털프린트, 2009)’이다. 자신에게 깊이, 오랫동안 정서적 자극을 주는 이미지. 어떤 연결감이 느껴지는, 출발이 되는 장소의 감각. 소설의 장소는 이와 같은 장소감과 동시에 장소 정체성과 기억을 주고, 그건 곧 소설의, 인물의 감정으로 이어진다. 최은미 작가는 이러한 장소감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작가다. 그리고 그가 이를 통해 표현하고자 하는 감정은 ‘분노’다.
“현실 세계에 대한 작가의 인식과 민감도가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작가는 자기 목적에 가장 적합한 것을 선택할 가능성이 있다.” 유도라 웰티의 말에 따르면, 최은미 작가에게 있어 ‘자기 목적에 가장 적합한 것’은 ‘분노’라는 감정이다. ‘최은미의 여자들’은 분노한다. 분노하고, 짜증내고, 울분을 터트리고, 미치고, 슬퍼하고, 다시 분노한다. 여러 방식으로 분노하는 인물들은 작가가 투사된 존재들이다. 그러나 작가가 지향하고자 하는 것은 투사가 아닌 ‘이해’다.
그런 그가 가장 최근 펴낸 『마주』는 인물을 이해하고자 하는 그의 마음이 실체화된 감각으로 다가오는 소설이다. 『마주』의 첫 문장은 작가가 그동안 생각해 온, 이해와 공감, 이입의 한 순간들을 응축하고 있다. “나는 다른 사람의 신발에 발을 넣어본 적이 있다.” 작가는 이 문장을 빌려 말한다.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것은, ‘타인의 신발을 신어보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자기 자신이 분열될 수 없는 하나의 존재라고 생각하지만, 실상 ‘나’는 매순간 변화한다. 수없는 변화의 틈에서 우리는 종종 특정한 사건을 맞닥뜨리고 변모한다. 최은미 작가가 “타인의 신발을 신어보”던 그 감각을 기억하고, 자신을 투사하던 글쓰기에서 인물을 이해하는 글쓰기로 나아가고자 했던 것처럼.
황정은 작가는 최은미 작가에 대해 말한 적 있다. “당신의 소설이 나를 어떻게 흔들었는지를 말하게 될까봐 말할 기회가 영영 없을까봐 초조했다.” 이번 강연을 통해 만난 그에게,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언젠가 당신의 소설이 나를 변모시키던 순간이 있었습니다.”
¹최은미, 「보내는 이」
w. 김유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