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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희의 마법소녀야

 

 

 

   큰 굉음과 함께 도로가 갈라졌다. 갈라진 틈으로 거대한 칠흑빛 그림자가 스멀스멀 기어 나왔다. 악몽은 금이 간 자리 위에서 괴롭게 울기 시작했다. 악몽이 크게 울수록 다리 위 차들은 울음소리를 따라 위태롭게 출렁였다.

   사람들은 흔들리는 다리 위에서 비명을 질렀다. 버스 안은 순식간에 난장판이 되었다. 버스의 앞뒷문은 모두 열려 있었지만 나가야 한다고 소리치는 사람만 있을 뿐 제대로 빠져나가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밖에 나간다고 쳐도 악몽의 손바닥 위에서 몸을 피할 곳은 어디에도 없으니까.

   더욱이 시간은 아침 일곱 시 반. 아수라장이 된 도로는 출근하는 차들로 빽빽하게 차 있었다.

   나는 이곳을 빠져나갈 수 있다.

   무너져 가는 다리 위에서 살려달라 소리치는 사람을 무시하고, 하늘에서 떨어진 잔해에 맞아 정신을 잃어 가는 사람도 무시하고, 갈라진 도로 밑으로 추락해 허우적대는 사람까지 무시한 채 나 홀로 도망친다면…….

   나는 무사히 수능을 치를 수 있을 것이다. 그 후 귀를 틀어막고 오늘 일어난 일이 내 머릿속에서 빨리 잊히길 기도할 것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평범한 여학생에 불과하다고 말하며.

   ‘대신 여기 있는 사람들은 모두 죽게 되겠지. 이 다리 위에서 이도 저도 못한 채 차가운 강변 아래에 파묻히게 될 거야.’

   패딩 주머니가 옅게 진동했다. 나는 흙먼지가 묻은 손으로 주머니 깊숙이 처박아 두었던 은빛 펜던트를 꺼냈다. 펜던트는 멈추지 않고 뜨겁게 진동했다. 주도권은 내게 달렸다며 선택을 강요하는 것 같아 끔찍했다. 펜던트가 외쳤다.

   ‘선택해!’

   ‘선택해!’

   ‘선택해!’

   ‘사람들이야, 너야?’

   나는 결정해야 한다. 윤다혜로서의 나를. 아니면…….

   마법소녀가 되는 건 어렵지 않다.

   그저 다른 사람들과 다른, 약간의 특별한 운만 따라주면 될 뿐. 모든 마법소녀는 그렇게 만들어진다. 대상자가 선인인지 악인인지, 모범생인지 양아치인지는 변신 아이템에게 그리 중요치 않았다.

   고등학교 3학년, 나는 새롭게 올라간 반에서 변신 아이템을 발견했다.

   내 사물함 안에 들어 있던 독특한 문양의 은빛 펜던트.

   펜던트는 어릴 때 티브이에서 보았던 어느 마법소녀의 변신 아이템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적어도 평범한 사람들이 갖고 다닐 것 같은 모양새는 아니었다. 차라리 이십 년은 더 됐을 고전 완구와 더 비슷하다고 하면 모를까. 하지만 그런 장난감들처럼 조잡한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지지는 않았으니, 가격을 매긴다면 그 위를 훨씬 웃돌 법했다.

   반짝이는 펜던트를 보며 갖고 싶다는 욕망을 애써 숨겼다. 아마 펜던트의 주인도 애타게 찾고 있을 테니 괜히 걸려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 선생님께 가져다드리자. 선생님께 드린다면 주인은 알아서 잘 찾아주시겠지.’

   그러나 펜던트를 집은 순간, 처음 보는 장면들이 머릿속을 꿰뚫고 지나갔다. 전대 마법소녀들의 모습이 흐릿한 잔상처럼 눈앞에서 일렁였다. 마법소녀라 불러야 할지 무임금 자원봉사자라고 불러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은 전부 마법봉을 휘두르며 밤하늘을 날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멍하니 되새겼다. 마법소녀가 정말 있다고? 그러나 내 질문에 대답해 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제 내가 마법소녀야…….”

   그저 짧지도 길지도 않은 단조로운 긍정뿐. 나는 서둘러 펜던트를 마이 주머니 깊숙한 곳에 숨겼다.

   인간은 특별함을 바란다. 나 역시도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사람을 돕겠다거나 세상을 구하겠다는 것에 거창한 뜻은 없었다. 단지 마법소녀로서 악당을 무찌르는 게 당연한 순리라고 생각했다. 나만이 할 수 있는 일. 그래, 그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내가 한 가지 간과한 건, 마법소녀에는 유통기한이 있다. 운명은 선물처럼 찾아오지만, 선물은 한번 포장을 풀고 나면 단순한 물건으로 퇴색된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이전 마법소녀 선배처럼.

   펜던트를 통해 보았던 그녀의 얼굴은 안개가 낀 것처럼 흐릿해 알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그녀의 마음만큼은 기억하고 있다. 졸업식 날, 그녀는 한 팔엔 깁스를 한 채 사물함 앞에 서 있었다. 그녀는 기뻐 보이지 않았다. 이제까지의 모험은 옷에 들러붙었던 더러운 껌 자국인 양 내려간 입꼬리가 모든 걸 대변해 주고 있었다.

   모든 마법소녀는 졸업식 날 힘을 잃는다. 펜던트를 계속 갖고 있고 싶어도 그럴 수 없었다. 억지로 펜던트를 가지려고 한다면 펜던트는 어느새 사라졌다. 누가 펜던트를 만들었는지조차 아무도 몰랐다. 내가 아는 건 펜던트는 성인이 되기 직전의 열아홉 살 학생만을 선택해 왔고 이 일은 학교가 세워지기 전부터 이어져 왔다는 사실이었다. 마법소녀로서 내가 할 일을 점지해 주는 정령이나 발탁된 새 마법소녀를 위한 국가 지원금, 소원, 동료 같은 건 없었다. 그럼에도 나는 이 일을 했다.

   세상에 큰 불행이 없는 이유는 전부 마법소녀 덕분이다. 사람들의 부정 에너지가 일정량 모이면 악몽이라는 재난으로 구현된다. 악몽은 새까만 그림자의 형태를 지녔다. 그건 인터넷에서 한 번쯤 보았을 법한 괴물의 형상일지도, 사람의 형상일지도, 아니면 동물의 형상일지도 모른다. 범접할 수 없는 악의가 그득그득 중첩된 것. 그것이 악몽이다. 마법소녀는 그런 악몽에게서 사람들을 구하고 물리치는 일을 한다. 그러나 일을 마치고 남는 건 싸움의 흔적뿐. 모든 게 끝나면 마법소녀와 악몽을 기억하는 이들은 없었다.

   악몽은 인과율을 깨는 존재다. 그렇기에 깨진 인과율을 제거했다면 세상은 다친 상처가 아물어 가듯, 둘의 존재를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지워버렸다. 악몽과의 마지막 전투가 끝난 뒤, 선배는 망가진 간판에 팔이 깔려 깁스를 했다. 사람을 구했다고 한들 그녀에게 남은 건 부모님의 책망뿐이었다. 졸업식 때도 여전히 얼굴은 침울했으니 내심 속이 많이 상했을 거다. 그러니 모든 마법소녀가 나처럼 이 일을 좋아했을 거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요즘 같은 시대에 좋은 일이라는 말 하나로 덥석 마법소녀 일을 할 바보는 이제 없으니까. 과거야 학교보다 어떻게 살아갈지가 더 중요한 세상이었고 지금은 세상을 향한 정의보다 생기부 한 줄이 더 중요한 세상이 되었다. 특히 마법소녀는 고3이잖아. 한눈팔 시간이 어디 있겠어.

   그래도 나는 이 일이 좋다. 나와 같은 열아홉 살 여학생은 대한민국에 넘쳐난다. 나보다 공부 잘하고 뛰어난 아이들은 그만큼 많을 거다. 그러니 비슷비슷한 여학생 중 내가 선택받았다는 게 얼마나 큰 행복인지.

   ‘다른 사람들이 모르면 뭐 어때. 지금 중요한 건 내가 마법소녀란 거고, 선택받은 ‘특별한’ 사람이란 거잖아.’

   특별함. 이 세상에 그보다 중요한 건 없다. 내 인생에 도움 되는 건 하나도 없었지만, 남들과는 다르다는 그 특별함이 심장을 뛰게 했다. 쓸모 있는 사람이 되자. 마법 주문 같은 그 생각을 되뇌이다 보면 나는 뭐든지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아니, 그 마음 하나로 시작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걸로도 만족할 수 있는 일이었다.

   ‘너희의 마법소녀야.’

   곧 세상 속에서 잊힐 한 마법소녀가 자신이 구해낸 소녀를 향해 한 말이었다. 그래, 우리는 너희의 마법소녀야. 그 인정 하나라면 지겨운 학원 수업도, 좋은 대학에 들어가야 한다는 부모님의 압박도, 겉으로는 늘 친구, 친구거리면서 시험 기간만 되면 눈을 부라리던 반 친구들의 은근한 견제도 이겨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야-!”

   귀를 찢을 것 같은 윽박에 눈을 떴다. 새어 나오는 하품을 애써 참으며 주위를 둘러봤다. 어느새 1교시가 끝난 쉬는 시간이었다. 아이들은 제자리에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잠은 자도 자도 부족하다. 어제만 해도 악몽을 처리하느라 원치 않은 달리기를 해야만 했다. 악몽의 발생은 불규칙하지만, 나의 시간은 규칙적이다. 낮에는 학교에 있고 저녁엔 학원에 있으니, 마법소녀로서 내가 활동할 수 있는 시간은 밤뿐이었다. 아침잠이 많은 터라 잠을 쪼개가며 도시를 돌아다니는 건 힘들었지만, 갑갑한 학원을 벗어나 밤을 달리는 건 즐거운 일이었다.

   ‘물론 뒤이어 날아온 부모님의 잔소리 폭격만큼은 아니었지만…….’

   다시 스르륵 잠에 들려는 찰나, 무언가 무너지는 소리에 눈이 번쩍 뜨였다.

   나는 소리의 근원지를 쳐다봤다. 늘 그렇듯 그곳에는 설민정과 설민정을 지독히 싫어하던 그 애가 있었다.

   설민정은 그 애와 그 애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내가 설민정과 그 애 사이를 제대로 아는 건 아니다. 둘 다 올해 반에서 처음 만났다. 단지 들려오는 소문에 의하면 둘은 고등학교 입학 당시부터 저랬다. 선생님의 잔소리도, 반 아이들의 은근한 시선도, 그 무엇도 그 애를 막지 못했다.

   반 아이들은 언제 깨질지 모를 정적 속에서 서로를 주시했다. 누가 먼저 선을 밟을지 내기하듯 속닥였다. 제가 나선다는 선택지는 없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주머니에 든 펜던트를 손가락으로 톡톡 치면서도 눈앞에 꺼내는 일은 없었다.

   “야, 눈 안 깔아?”

   무리 중 한 명과 눈이 마주쳤다. 나는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겁을 먹어서는 아니다. 그저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들기 싫어서였다. 그래, 그것 때문이다. 아무리 마법소녀가 세상을 구하는 사람이라지만, 내게도 지켜야 할 철칙이란 게 있었다. 윤다혜로서의 나와, 마법소녀로서의 나. 그건 엄연히 별개의 존재였다.

   윤다혜로서의 나는 절대로 마법소녀 일을 하지 않는다. 마법소녀의 일은 오로지 악몽을 물리치고 사람들을 구하는 데만 쓸 뿐. 사사건건 사소한 일에 전부 신경을 쓰다 보면 내가 나로서 해야 할 일에는 힘조차 쓰지 못할 게 분명했다. 나는 많은 마법소녀가 그 선을 지키지 못해 망가져 버렸다는 사실을 안다.

   그럴 때면 90년대 노래방에서 술을 마시며 시시덕거리던 마법소녀가 떠오른다. 그녀의 기억 속에는 언제나 매캐한 담배 냄새가 묻어 있었다. 또한, 정의감을 불태우던 열혈 마법소녀도 기억난다. 그 둘의 공통점은 하나였다. 죽음. 하나는 술에 취해 악몽에게 뜯어 먹혀 죽었고, 나머지 하나는 힘이 돌아오지 않은 상태로 정의감을 펼치다가 죽었다. 그러니 기준은 명확해야 한다. 공과 사를 나누는 것처럼 특별한 나와 특별하지 않은 나를 분리해야 한다.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다. 결국 나도 평범한 여학생에 불과하니까. 그래, 그러니 도울 수 없다.

   ‘그래 봤자, 너희는 아무것도 아니야.’

   울분인지 걱정인지 심장이 두근거렸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을 말을 스스로 되뇌었다. 너희가 아무리 사람을 괴롭혀도 결국엔 나보다 약한 존재야. 내가 너희를 봐주고 있는 거라고. 그 애와 그 애 친구들의 얼굴을 하나씩 되짚었다. 그러나 마지막에 떠오르는 건 설민정뿐이었다.

   나는 입을 앙다물었다. 누가 뭐래도 난 설민정을 구하지 않을 거다. 마법소녀의 힘은 역시 대의를 위해서만 사용하는 게 옳다. 눈앞에 아이 하나 구하자고 힘을 쓸 수는 없었다. 그리고 대체 내가 뭘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녀를 괴롭히는 무리를 뒷골목에 불러내 주먹으로 패주는 것? 그건 내가 동경했던 마법소녀가 아니라 깡패다. 그리고 설민정 주변에는 악몽도 보이지 않는걸. 설민정을 위해 힘을 쓰는 건 단순히 나 좋자는 심산이었다. 학교에서의 나는 윤다혜다. 마법소녀가 아니라. 나는 마법소녀지만, 모두를 구할 의무는 없었다.

   펜던트가 진동했다.

   ‘정말로?’

   그래, 정말로.

   나는 설민정을 곁눈질했다. 아이들의 치맛자락 사이 설민정의 물 묻은 머리카락이 반들반들 빛났다. 둘러싼 무리 틈새로 그녀의 얼굴이 얼핏 보이는 듯싶었지만, 어떤 표정으로 그 자리에 앉아 있는지는 끝내 알 수 없었다.

   여름인데도 밤공기가 찼다. 서늘한 바람이 목을 옥죄었다. 독서실에 간다며 멋대로 집을 빠져나왔지만, 아직도 어머니의 마땅찮은 눈빛이 등허리를 찌르는 것 같았다.

   그래도 사람은 구했다. 비록 악몽이 자동차 브레이크를 고장 내는 바람에 차가 도로변 가로등을 박는 건 면치 못했지만……. 적어도 사람은 구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남자는 악몽이 사라지며 내가 구해준 기억도 함께 날아가 망가진 차를 보고 분노했다. 그는 악몽의 소행을 타인의 소행이라 착각했다. 그는 괜히 주위를 지나가던 행인들을 향해 화풀이했다. 그가 주먹을 휘두른 대상에는 나도 있었다.

   악몽이 사라지면 변신은 자연히 풀린다. 인과율이 수복되는 한 시간 동안은 변신할 수 없었다. 나는 남자가 막무가내로 휘두른 주먹을 피하고자 제자리서 주춤댔다. 곧 뒤늦게 달려 온 경찰들이 남자를 제압했다. 그들은 남자에게 몇 가지 검사를 하곤 그대로 연행해 서로 데려갔다. 언뜻 들리는 고함 속에선 음주운전이란 말이 얼핏 들린 것 같았다. 나는 눈을 끔벅이며 그 모습을 지켜봤다.

   ‘내가 누굴 구한 거야.’

   머릿속이 복잡했지만 애써 떨쳐냈다. 난 잘못한 거 없어.

   ‘마법소녀로서 할 일을 했을 뿐이라고.’

   망가진 가로등은 몇 번이고 전깃불을 튀기며 힘겹게 깜박이다가 꺼졌다. 그제야 난 주위를 둘러보았다. 깜깜한 도로엔 나 혼자뿐이었다. 사람들은 어느새 자리를 떠난 뒤였다. 괜히 기분이 미워져 나도 재빨리 도로를 벗어났다.

   집에 돌아가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러나 몇 발짝 못 가 제자리에 멈추었다.

   ‘아, 오늘 학원 시험……. 지금쯤이면 문자 왔을 거 같은데.’

   그제야 어머니가 왜 집을 나서는 날 못마땅해 했는지 알아챘다. 독서실도 다니는 애가 성적은 점점 떨어지고 있으니 의심스러울 만했다. 집에 가면 어머니가 무시무시한 얼굴로 현관에 서 있을 게 뻔히 보였다.

   ‘지금이라도 뺑 돌아서 갈까.’

   저 멀리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가 보였다. 나는 괜스레 학교 앞에서 뭉그적댔다. 아, 진짜 돌아가기 싫다. 그러나 달만큼은 쓸데없는 생각 하지 말고 빨리 돌아가라는 듯이 앞을 환하게 비춰주고 있었다. 이를 무시한 채 학교 쪽으로 눈을 돌렸다. 깜깜한 학교에 있어서는 안 될 무언가가 보였다. 누군가 옥상에 서 있었다. 나는 흠칫 놀라 재빨리 교문 뒤로 숨었다.

   “왜 저기 있는 거지?”

   흐릿했으나 달빛이 비춰주고 있는 건 분명 설민정이었다. 나는 멍하니 그녀를 응시했다. 원래 저런 눈을 지녔었나.

   악몽을 처리하다 보면 끝내 지키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 재난 속 피해자들. 나는 내가 모든 사고를 막을 순 없다는 걸 안다. 나는 신이 아니고 한 명의 인간이니까. 그러나 한 마법소녀는 이를 알고도 지키지 못한 피해자들에 괴로워하다 자괴감에 죽었다.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모든 사고를 막을 순 없다. 분명 그녀도 알고 있었을 텐데.

   ‘머리로는 알지만, 마음으로는 안 되는 게 있어.’

   그녀를 기억하던 한 마법소녀는 이 말을 여러 번 되풀이했었다. 부디 다음 마법소녀는 그러지 않기를 빌며.

   ‘어쩌면 제게 하는 말이었을지도 모르지.’

   처음엔 사람 죽어가는 것만으로도 헛구역질이 났는데 어느 순간부터 담담해졌다. “어쩔 수 없지.”로 말을 돌린 지 얼마나 됐더라. 그 사람은 운이 나빴을 뿐이라며 무시하다 보면 하루가 지나간다. 어차피 얼굴도 모르는 타인이기도 하고.

   그러나 이번만큼은 지나칠 수 없었다. “지금 뭐 하는 거야?”라고 물을 수도 없었다. 나는 윤다혜인가, 마법소녀인가. 저 애를 도와야 하나, 말아야 하나. 몸은 제자리에서 움찔거리기만 할 뿐.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그래, 나중에 도와도 늦지 않을 거야. 도움이 필요하다면 진작 말했겠지.’

   나는 불안을 괜한 착각이라 단정 지은 채 제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어차피 이 상태면 변신도 못 하니 설민정이 어떤 선택을 할지 지켜보는 게 다였다.

   그 순간 주머니가 진동했다. 깜짝 놀라 몸을 떨었다. 펜던트인가 싶어서 펜던트를 만졌지만, 아무 반응도 없었다. 그제야 잊고 있던 휴대폰에 문자가 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너 학원 시험 성적이 이게 뭐야. 빨리 안 들어와? ]

   문자에서부터 어머니의 분노가 느껴졌다. 나는 설민정과 휴대폰을 번갈아 쳐다보다 몸을 돌렸다. 지금 설민정이 죽는 걸 걱정할 게 아니었다. 내가 죽는 걸 걱정해야지. 그녀에게서 시선을 떼니 발길은 생각보다 쉽게 떨어졌다. 나는 다시 한번 펜던트를 만졌다. 펜던트는 여전히 아무 응답도 없었다.

   다음 날, 학교에 가니 설민정은 자기 자리에 엎드려 있었다.

   ‘봐봐, 사람은 쉽게 안 죽어.’

   말은 이렇게 했지만, 사실 그날 밤은 제대로 자지 못했다. 집에 도착하자 어머니는 내게 휴대폰을 내던지며 미친 거냐고 화를 냈다. 아버지 역시 현관에 가만히 서서 혀를 찼다. 이상하게도 눈물은 나지 않았다. 화를 내다 지친 부모님이 “방에 들어가 자기나 해!”라고 말할 때까지 내 머릿속에는 혼이 덜 났다는 기쁨보다 내일 벌어질 일에 대한 우려뿐이었다.

   ‘왜 펜던트는 가만히 있지?’

   펜던트는 몇 번을 만져도 차갑게 식어 있었다. 예전처럼 ‘정말로?’를 반복해 물으며 진동하지 않았다. 기우겠거니 생각하고 침대에 눕자 그제야 펜던트는 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내게 응답했다. 사람을 지키지 못해 후회하는 마법소녀들의 모습이 눈앞에 비처럼 세차게 쏟아져 내렸다. 나는 기겁하며 침대에서 일어나 펜던트를 집었다. 이번에도 펜던트는 응답하지 않았다. 나는 초조함에 입술을 물어뜯었다. 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 거야. 펜던트가 보여준 기억 속 한 마법소녀는 죽은 친구를 부둥켜안고 울고 있었다. 그녀는 이미 차갑게 식은 제 친구보다 더 시체처럼 보였다. 나는 펜던트의 다음 대답을 기다리며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그러나 여전히 펜던트로부터 들려오는 대답은 아무것도 없었다.

   어느새 새벽이 밝아 왔다. 나는 학교 갈 준비를 하라는 어머니의 말에도 굼뜨게 미적댔다. 내 머릿속은 여전히 어젯밤에 머물러 있었다.

   ‘설민정이 정말로 옥상에서 뛰어내렸다면 어떡하지? 아니, 애초에 내가 걱정할 자격이 있나?’

   학교에 가는 내내 뒤늦은 자책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러나 내가 상상하던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다. 다행히 설민정은 하던 걱정이 무색할 정도로 멀쩡해 보였다. 평소와 같았고 나도 그랬다.

   그래, 그랬어야 했다.

   그날도 그 애는 설민정에게 왔다. 설민정은 옥상에서 심경의 변화라도 있었는지 처음으로 용기 내 그 애에게 화를 냈다. 설민정의 목소리를 처음 들은 날이었다. 많이 더듬거렸지만, 나는 그 모습을 보고 ‘말할 줄 알았구나’하고 놀랐다. 그 애는 반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망신당했다고 생각했는지 수업이 시작하기 전에 설민정을 끌고 옥상으로 향했다. 남은 아이들은 멀어져 가는 둘을 보며 어떻게 할지 눈만 굴리고 있었다. 나 역시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아무 일 없겠지. 어제도 아무 일 없었으니까.’

   나는 초조하게 손톱이나 뜯으며 두 사람을 생각하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했다. 그 순간 반 아이 중 누군가가 선생님을 모시러 다녀오겠다고 말했다.

   “나 선생님께 다녀올게.”

   한 명이 나서자 다른 아이들도 기다렸다는 듯 그 아이를 따라나섰다. 나는 따라가지 않았다. 따라가면 설민정의 모든 게 내 잘못이 될 것 같았다. 무슨 잘못인지는 나도 알지 못했다. 그저, 더는 관여하고 싶지 않았다. 설민정을 신경 쓰고 싶지도 않았다.

   ‘내가 걔 때문에 왜 불안해야 해?’

   계속 내 잘못이 아니라 곱씹다 보니 나중에 가서는 설민정에 대해 없던 화까지 치밀었다.

   나는 책상에 머리를 박았다. 어제 못 잔 잠이나 보상받고 싶었다. 그러나 눈을 감아도 주위의 소리는 더 선명해질 뿐 나아지는 건 없었다. 반에 남은 아이들은 서로 숙덕댔다. 그 이야기가 설민정과 그 애에 대한 건지는 알 수 없었으나 모두 조심스러웠다.

   한숨만 푹푹 나오던 그때, 밖에서 쿵 하는 진동과 함께 비명 소리가 들렸다. 교실에 남은 아이들은 일제히 우르르 창문으로 향했다. 나도 그들을 따라 자리에서 일어나 창밖을 쳐다봤다. 창 밑에 설민정이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혼자가 아니었다. 곁에는 그 애가 있었다. 속이 울렁거렸다. 설민정의 선택은 홀로 쓸쓸히 추락하는 게 아니었다. 모두의 눈앞에서 자신을 괴롭혔던 이와 함께 추락하는 것. 그게 설민정의 바람이었다. 어쩌면 어젯밤 옥상에서부터 그럴 생각이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그 사실을 깨닫고 나니 속이 울렁거렸다.

   ‘나는 왜 죽음이 익숙하다고 생각했지?’

   소란스러운 교실을 뒤로 한 채 나는 다시 책상으로 돌아갔다. 머릿속이 새하얬다. 마법소녀라도 등장해 이 악몽을 처리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가벼워야 할 발걸음은 몇 번이고 제자리에 멈춰 섰다. 학교는 아수라장이었다. 악몽이 출현했던 상황과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5분도 채 안 되는 사이, 구급차가 와 둘을 데려갔고 선생님은 비명을 질러대는 아이들을 조용히 시키느라 진땀을 뺐다. 후에 선생님은 설민정과 그 애 모두 생명에는 문제가 없다고 말씀하셨지만, 설민정이 다시 학교로 돌아오는 일도, 그 애가 돌아오는 일도 없었다.

   “어쩔 수 없었어……. 만약 밤에 뛰어내렸다면 그때는 내가 도왔을 거야.”

   누구한테 하는 변명인지 모르겠다. 단지 쓰린 속을 잠재우려 펜던트를 쳐다봤다. 펜던트가 진동했다. 내 마음과는 동떨어져 울렸다. 손이 데일 것처럼 뜨겁게 진동하는 것이 아니라 속을 긁듯 차갑게 식어 악몽의 출현만을 알렸다. 빨리 변신하라며 독촉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이번에야말로 내게 ‘정말로?’라고 되물었을지도. 나는 펜던트를 들어 올렸다. 윤다혜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든 나는 마법소녀다. 사람을 구하는 게 나의 일이었다.

   한 해가 끝나가면 마음이 편해야 하는데 사람들의 마음엔 여전히 불안뿐인지 악몽은 더 자주 출몰했다.

   ‘이제 공부해야 하는데.’

   난감함이 머릿속을 헤집어 놓았다. 요란하게 울리는 펜던트에서 시선은 떨어뜨려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악몽을 처리하고 새벽 2시가 다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중간에 학교에도 들렀다. 추락 사건이 흐른 지 몇 개월은 되었지만, 나는 집에 갈 때마다 학교를 거쳐 갔다. 그리고 그때마다 내 시선은 옥상을 향했다. 그날 이후로 악몽 처리에 얼마나 집착했는지 모르겠다. 예전처럼 ‘빨리 해치우고 가자’란 마음은 이제 없었다.

   ‘확실하게 처리하자. 더 큰 인명 피해가 일어나기 전에.’

   변신이 풀려도 제자리에 한참을 서 있었다. 덕분에 학교와 학원에서 조는 게 다반사였고 성적이 떨어지는 건 당연했다. 수능 날이 다가오는데 나아지긴커녕 점수가 더 떨어지자, 부모님의 잔소리도 심해져 갔다.

   “우리 집 형편에 재수는 안 된다.”

   여느 때와 같은 아침 날, 조용한 아침 식사 자리에서 툭 던지듯 이르는 아버지의 말이 얼마나 무섭던지 숨이 턱 막혔다. 나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 남지 않은 수능 날과 가면 갈수록 많아지는 악몽에 눈앞이 몽롱했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내가 다른 마법소녀들 꼴이 안 나려고 얼마나 노력했는데…….’

   심지어 이전 선배도 공부하면서 악몽을 때려잡았다. 아니, 대부분의 마법소녀가 성공적으로 임무를 끝냈다. 근데 나 혼자 그걸 못한다면 그건 특별한 게 아니다. 미숙하고 미련한 거지. 그 사실을 상기하니 숨이 턱 막히고 머리가 지끈거렸다. 이제 펜던트 반납까지 삼 개월밖에 안 남았다. 나는 평범해질 날을 뒤로 미룬 채 자신을 다독였다. 할 수 있다. 해야만 하고.

   “실수하지 말고, 한 번뿐인 기회니까.”

   도시락을 건네는 어머니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어깨를 토닥이고 남은 자리가 마치 돌덩이를 올려놓은 기분이었다. 애써 가방 속 문제집들에게 탓을 돌렸다. 수능 날까지 끝내야 할 공부는 완료했으나 마음 한편에는 불안이 스멀스멀 기어 올라왔다. 하필 시험을 치러야 할 장소가 원래 다니던 고등학교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었다. 집을 나서는 발걸음은 어느 때보다 더 무거웠다. 그래도 한편으로 후련하기도 했다.

   ‘정신 차리자. 오늘이면 수능도 끝나니까 남은 시간 동안 맘 편히 마법소녀 일을 할 수 있어.’

   나는 버스에 올랐다. 아침 시간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붐볐다. 빠르게 도로를 달리던 버스는 강 다리를 지날 때쯤부터 차츰 느려졌다. 어느새 도로는 출근길 차들로 빽빽했다. 아직 수능까지 한 시간이나 더 남은 상황이었지만 마음은 초조하기 짝이 없었다. 내 상황은 하나도 고려해 주지 않은 채 펜던트가 진동하고 있었다.

   ‘이번만큼은 안 돼. 이번만큼은 안 돼.’

   말이 끝나기 무섭게 땅이 진동했다. 도로 난간에 검은 무언가가 기어 올라오는 게 보였다. 난 이 불길한 불청객을 안다.

   악몽이다.

   눈을 뜬 버스 안은 아수라장이었다. 큰 굉음과 함께 악몽의 팔에 맞아 버스가 전복되었다. 어떻게 살았는지가 더 신기할 정도였다. 이제껏 마법소녀의 입장으로 악몽을 마주했었지, 윤다혜의 입장으로는 처음이었다. 아픈 머리를 부여잡고 자리에 주저앉았다. 흙먼지가 콧속으로 들어가 기침이 났다.

   ‘수능장까지는 얼마나 남았지?’

   고개를 돌려 버스 시계를 쳐다봤다. 깨진 시계는 불규칙하게 깜박이며 일곱 시 반을 가리켰다. 학교가 무너지지 않는 이상 수능은 지속된다. 시험장에 가지 못한 나 같은 수험생이 불쌍한 거지, 사고가 난 학생들을 위한 대책은 없었다. 사회는 개인의 불행을 돌봐줄 정도로 친절하지 않으니까.

   펜던트가 위험하게 웅웅거렸다. 그제야 나는 악몽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강 밑에서부터 기어 올라온 악몽은 내가 이제껏 상대해 왔던 악몽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크기도 거대했고, 힘도 강했다. 다리 난간을 우그러뜨리는 것만 봐도 보통은 아니었다.

   수능이냐, 사람들이냐.

   ‘내가 수능을 못 치면 부모님이 실망할 텐데. 지금의 나는 윤다혜여야 하는데.’

   실망은 두렵다. 특별한 사람은 뭐든지 척척 해내니까.

   ‘지금은 이기적이어도 되는 거 아니야? 사람은 늘 이기적이잖아.’

   고장 난 카세트처럼 되풀이해도 와닿는 건 없었다. 그 순간 다리가 기어코 두 동강이 났다.

다시 한번 귀를 찢을 것 같은 비명이 울렸다. 어느새 악몽은 다리를 기어올라 케이블을 끊어내고 있었다. 거대한 철골이 이리저리 휘며 사람들을 덮쳤다. 버스를 향해 케이블이 날아왔다. 날아온 케이블은 그대로 버스를 쳐 무너진 난간 끝으로 보냈다. 버스 뒷문에 가까이 앉아있던 여학생이 비명을 지르며 창 너머로 떨어졌다.

   풍덩-.

   물 소리와 함께 문제집이 가득 든 가방이 강에 빠졌다. 생각할 시간은 없었다. 이미 몸은 앞으로 튀어 나가고 있었다. 나는 여학생의 팔을 잡고 위로 끌어올리려 안간힘을 썼다. 이를 본 어른들이 내 뒤로 다가와 여학생의 팔을 함께 끌어당겼다. 끌어올려진 여학생은 많이 놀랐는지 하염없이 울었다. 중간중간 엄마를 부르는 모습에 나도 눈물이 났다. 나는 주머니에서 펜던트를 꺼냈다. 왜 하필 그 순간에 여학생의 얼굴 위로 제대로 본 적도 없는 설민정의 얼굴이 겹쳤는지…….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내가 펜던트를 열자, 은빛 거품이 몸을 감쌌다. 사람들이 나를 주목했다. 찰나의 시선에 불과하겠지만 더는 예전처럼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싸움이 끝난 뒤의 세상엔 마법소녀를 향한 박수도 함성도 응원도……, 감사도 없었다.

   나는 강에 빠진 다른 사람들과 함께 구조되어 담요를 껴안고 있었다. 구조해야 할 사람들은 악몽을 처리하며 전부 다른 구조선에 태우거나 무너지지 않은 다리 건너편으로 보낸 후였다. 변신도 풀려 홀로 남은 다리 위에서 내가 가장 자연스럽게 구조받을 방법은 직접 강에 뛰어드는 것뿐이었다.

   단순히 다이빙한다고 생각하더라도, 마법도 없는 맨몸으로 삼십 미터가 넘는 다리 위에서 뛰어내리려 하니 오금이 저렸다. 추락하면서 맞은 바람은 금방이라도 날 갈기갈기 찢어버릴 것만 같았다. 구조선에 구조받은 후엔 실수로 들이켠 물에 토까지 했다. 차 없이 당한 교통사고가 있다면 이런 게 아닐까.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은 공포에 눈물이 났다. 사람을 구한 것에 후회는 없지만, 두려움은 별개의 문제였다.

   한겨울이라 몸이 오슬오슬 떨렸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인지 두껍지도 얇지도 않은 담요로 몸을 꽁꽁 싸매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다 보니 손끝이 차갑게 식었다.

   ‘마법소녀가 아닌 윤다혜는 이제 뭐가 되는 거지?’

   이 와중에도 특별함을 찾고 있는 나의 모습에 헛웃음이 나왔다. 아니, 지금 그딴 게 중요한가. 나는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봤다. 어디선가 학교 종소리를 들은 기분이었다. 그사이 배는 강 한 바퀴를 더 돌고 뭍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소식을 듣고 달려온 기자들과 다친 가족들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곳엔 나의 부모님도 있었다. 요리하다가 온 건지 풀지 못한 앞치마를 찬 어머니와 흐트러진 정장 차림으로 땀 범벅인 아버지가 보였다. 이상하게도 눈물은 나지 않았다. 그러나 말은 반사적으로 튀어나왔다.

   “죄송해요…….”

   결국 수능 못 봤어요.

   입에서 나온 말은 “보고 싶었어요.”나 안도의 울음이 아니었다. 단지 정수리부터 흘러내리는 물방울을 따라 고개를 숙였다. 어떤 반응이든 이제 내 책임이니 받아들여야 옳았다.

   “지금 그게 중요하니?”

   어머니의 말에 놀란 눈으로 고개를 들었다. 부모님은 “다행이야.”라고 연신 말을 내뱉으며 날 꼭 끌어안았다. 그제야 나는 울음을 터뜨릴 수 있었다.

   졸업식이 한창인 학교는 저마다 각양각색의 꽃다발을 든 학생들로 가득했다. 나는 1년간 나와 함께한 사물함을 열었다. 가득했던 교과서가 사라지고 그 안은 텅 빈 사각형뿐이었다. 나는 마이 주머니에서 펜던트를 꺼냈다. 펜던트는 늘 그렇듯 햇빛 아래서 고요히 반짝였다. 그리고 전대 마법소녀들이 그랬던 것처럼, 나는 그 사물함 안에 펜던트를 집어넣었다.

   “너는 우리의 마법소녀야.”

   다음 마법소녀에게 희망을 빌어주며.

   나는 흐릿한 안개 너머에서 웃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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