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번째 괴담
“그래서 오늘 괴담은 뭐야?”
성호는 관심 없는 척, 책상에 엎드려 얼굴만 들고 물었다. 방과 후에 친구에게서 매일 다른 괴담을 듣는 시간. 성호는 수업 중에도 쉬는 시간에도 언제나 이때를 기다렸지만, 왠지 친구에게 그 사실을 들키고 싶지는 않아 괜히 관심 없는 척 창문을 보며 말했다. 친구는 그런 성호를 향해 이상야릇한 웃음을 지어 보일 뿐이었다. 성호는 그럴 때마다 친구가 꺼림칙했지만 그걸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겁먹은 것처럼 보이고 싶지 않기에 그랬다. 친구의 이야기는 지겨운 수업이 끝난 후의 달콤한 쉬는 시간 같았기에 가끔 이상한 행동을 해도 굳이 지적하지 않는 것도 있었다.
“성호야. 그거 알아? 오늘 괴담이 100번째라는 거?”
“벌써? 하루에 하나씩 들었으니까 99일이나 됐다는 거네.”
언제나 그랬듯 성호와 친구의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고, 둘이서만 얘기를 나눴다. 교실은 수업이 끝나 떠들고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목소리로 시끌벅적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친구의 작은 말소리는 성호의 귀에 쏙하고 제대로 들어왔다. 분명 같은 교실에 있었으나 다른 아이들의 말소리는 저 멀리서 들려오는 것 같았고, 친구의 말소리는 귓가에 속삭이는 것 같았다. 무언가 이상하다고 생각할 법도 하건만, 성호의 머릿속은 괴담에 대한 기대감으로 가득 차 있을 뿐이었다.
“내일이면 101번째라는 말이기도 하지.”
“그래, 그래. 알겠으니 빨리 얘기나 해줘.”
“알았어. 100번째 괴담은 바로…….”
어찌 되었든 괴담은 시작되었고, 성호는 이에 푹 빠져들었다. 그러자 방금까지 신나게 놀던 아이들 전부 입을 다물고 동시에 성호와 친구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약속이라도 한 듯 다 같이 교실 밖으로 나가버렸다.
“어? 모두 갔네.”
주황빛 하늘이 검게 물들고, 괴담이 끝나고 난 후에야 성호는 비어버린 교실을 알아챘다. 문밖으로 뛰쳐나가 고개를 힘차게 좌우로 돌리며 둘러보았지만, 아이들은 복도에도 남아 있지 않았다. 하교하지 않은 아이가 있나 둘러보는 선생님, 수업이 모두 끝난 뒤 청소하는 청소부 아저씨조차도 보이지 않았다. 학교에는 성호와 친구 단둘만이 남아 있었다. 그 사실을 깨달은 성호의 목과 팔뚝에 소름이 돋았다. 복도 끝 쪽은 어둠에 잠겨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무언가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창밖에서는 까마귀들이 까악까악하고 울고 있었다. 그들의 검은 몸은 어둠에 잠겨 사라진 듯 새빨간 눈만이 둥둥 떠다니는 것처럼 보였다.
“아니, 가면 간다고 말이나 하고 가지!”
성호는 간다는 말조차 안 하고 돌아가 버린 반 애들이 원망스러워졌다. 친한 아이들조차도 아무 말도 안 해준 건 너무 서러웠다. 내일 학교에서 만나면 따질 거라고 다짐했지만, 어째선지 아이들의 이름도, 얼굴도 생각나지 않았다. 몇 개월 전만 해도 항상 같이 축구하던 아이, 급식 시간에는 무조건 옆에 앉던 아이, 그리고 친구를 보고 이상하다고 말해서 싸웠던 아이 모두.
‘어?’
분명히 친했던 반 애들과의 기억을 떠올리던 성호는 기억 속에 커다란 빈자리가 있다는 걸 알아챘다. 친구 때문에 싸웠던 기억은 있지만, 싸운 아이가 왜 친구에게 이상하다 했는지가 생각나지 않았다. 그리고 싸움이 어떻게 끝났는지도 생각나지 않았다. 성호는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떠올리려 했지만, 머리가 지끈거리도록 안간힘을 써도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교실에 남아 있을 친구에게 직접 물어보려고 교실로 돌아갔다.
“뭐야, 어디 갔어. 야! 장난치지 말고 나와!”
하지만 교실에는 친구는 없고 빈자리만이 남아 있었다. 성호는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당황하여 순간 어쩔 줄 몰라 했다. 늦은 시간에도 항상 교실에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친구였기에, 그런 친구가 먼저 돌아간다는 건 성호의 머릿속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돌아올 거라 믿고 기다렸지만, 친구는 나타나지 않았다. 기다림에 지친 성호는 화가 나기 시작했다. 아무 말도 안 하고 혼자 가다니. 친구의 배신은 아까 전 떠올리려 했던 기억들도 잊게 하기에 충분했다.
“아이 씨. 내일 오기만 해봐라.”
조용히 혼자 중얼거린 말이었지만, 아무도 없는 교실에서 울려 퍼져 마치 귀 옆에서 누군가 속삭인 것처럼 성호의 귀로 다시 들려왔다. 그게 성호의 분노를 두려움으로 바꾸어 버렸다. 같이 있던 친구조차 사라지고 이제 진짜로 혼자 남았다는 사실이 성호를 너무나 두렵게 만들었다. 성호는 놓여 있던 책가방을 멜 틈도 없이 손으로 쥐어 들고 복도를 뛰쳐나갔다.
‘쿵쿵쿵.’
뜀박질에 복도 시멘트 바닥이 울리는 소리가 뒤에서 쫓아오는 괴물의 발소리 같아 성호는 온 힘을 다해 뛰어서 학교에서 벗어났다.
“후우, 후우…….”
학교에서 조금 떨어진 거리까지 뛰어온 성호는 가로등 아래에서 몸을 숙인 채 무릎을 붙잡고 숨을 골랐다. 환한 가로등 불빛 아래에 서니 이제 안전하다는 생각에 온몸에 힘이 쭉 빠졌다. 성호는 등을 타고 엉덩이까지 흐르는 땀방울 하나하나까지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한 손으로 등을 매만지니 식은땀 범벅이었다. 잠시 뒤, 진정된 성호는 조금만 쉬다가 걸어서 돌아가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보자 그 생각은 순식간에 바뀌었다. 거리는 가로등 아래만이 동그랗게 밝을 뿐, 그 이외에는 아주 검은 물감으로 칠한 듯 어두웠다. 검은 도화지 위에 노란 원 하나만 그려져 있는 듯한 꼴이었다. 성호는 그런 곳에서 오래 있고 싶지 않았기에 아까 전처럼 뛰어서 집까지 쉬지 않고 가리라 다짐했다.
‘띠리리링, 띠리리링.’
그때 갑자기 휴대폰이 시끄럽게 울렸다. 가로등에 기대어 앉으려던 성호는 깜짝 놀라 그대로 뒤로 넘어져 버렸다.
“아으, 누구야.”
뒤통수가 가로등과 부딪친 성호는 짜증을 냈다. 그러면서 내심 늦게까지 돌아오지 않아 화가 난 엄마일 거라 짐작했지만, 아파서 짜증이 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잔소리를 듣겠다는 생각에 걱정스레 휴대폰의 화면을 켠 성호는 ‘엄마’라는 글자 대신 적혀 있는 낯선 전화번호에 당황했다. 그런 와중에 계속해서 울리던 벨 소리가 갑자기 멈췄다.
“여보세요? 성호야.”
성호는 끊긴 줄 알고 휴대폰을 집어넣으려다 저절로 받아진 전화에 놀라 흠칫했다. 자기 맘대로 전화를 받은 휴대폰에서 나오는 소년의 목소리는 성호가 잘 알고 있는 목소리였다.
“야! 너, 가면 간다고 말해야지! 왜 이제야 전화하는데!”
분명 성호를 어둡고 무서운 학교에 버리고 간 친구의 목소리였다.
“성호야, 내가 처음 괴담 들려준 날 기억해?”
“지금 나 무시하냐? 사과부터 해라.”
“기억하냐고.”
“이 씨…….”
성호가 화를 내고 있음에도 친구는 전혀 들리지 않는다는 듯이 뜬금없는 말만을 내뱉었다. 성호는 그 사실에 더욱 화가 나 도저히 말을 이어갈 수가 없었다. 하지만 어째선지 친구의 말을 따라 자연스레 친구를 처음 만났던 날을 떠올리게 되었다. 지금뿐만 아니라 다른 때에도 그랬다. 조용하면서 낮은, 그리고 왠지 축축한 친구의 목소리를 들으면 성호는 원하지 않아도 결국은 친구의 말을 따르게 되었다. 친구가 처음 성호에게 괴담을 얘기해 준 날은 친구를 처음 만난 날, 100일 전. 성호가 오늘 100번째 괴담을 들었으니 딱 그때였다. 그리고 그날은 성호의 5학년이 시작되는 날이었다.
전부터 친했던 아이들끼리는 같은 반이 되어 기뻐하고, 처음 만나는 아이들과는 어색하게 서로를 알아 가는 5학년 첫날이었지만, 친구는 그러지 않았다. 아직 누가 앉을지 정해지지도 않은 교실 맨 구석 자리에 앉아 누구에게도 다가가지 않고 고개 숙인 채 앉아 있었다. 그런 친구에게 먼저 다가가는 아이는 아무도 없었다. 아이들은 심지어 친구 쪽으로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성호야. 5학년도 잘 부탁해.”
“오, 종우, 같은 반이네?”
“성호야! 종우야!”
처음에는 성호도 다른 아이들처럼 친구를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예전부터 많은 아이와 친했던 성호는 아이들과 인사를 나누고 다른 반이 된 아이들과는 아쉬움을 나누느라 바빴다.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교실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그런 성호가 친구를 보게 된 건 우연이었다. 교장 선생님의 훈화를 듣기 위해 선생님이 반에 있는 모두를 이끌고 갔을 때, 마침 성호는 화장실에 갔었다. 그리고 하필이면 학년 첫날이라 바빴던 탓인지, 선생님은 그날 하루만 인원수를 세는 걸 까먹었다. 화장실에서 성호가 돌아왔을 때 이미 아이들은 모두 교실에 있지 않았다. 단 한 명, 친구만 빼고.
“어라, 왜 아무도 없지.”
“저기, 친구야. 애들 다 어디 갔는지 알아?”
사실 그때, 성호는 친구에게 말을 걸고 싶지 않았다. 모두가 떠났는데도 혼자 교실에 남아 있는, 성호가 들어와도 쳐다보지도 않는, 심지어 그때까지 있는지도 몰랐던 아이. 처음 보는 아저씨에게도 거리낌 없이 말을 거는 성호라도, 그런 아이에게 먼저 말을 거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교실에 남아 있는 사람이라곤 친구밖에 없었기에 성호는 친구에게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나? 나? 나?”
“어, 그래. 너.”
친구는 분명 혼자 남아 있었음에도 괴상한 말투로 되물었다. 성호는 그런 기괴한 행동에 모른 척하고 싶었지만, 꾹 참고 대답했다. 성호는 그때 처음으로 친구의 얼굴을 마주 보았는데, 그 순간을 잊을 수가 없었다.
‘그래, 맞아. 그때 본 친구의 얼굴은, 얼굴은……’
성호는 친구의 얼굴이 생각나지 않았다. 잊을 수 없었지만 기억나지 않았다. 분명 그때 친구의 얼굴을 보았고, 100일 동안 괴담을 들으며 매일 마주 보았음에도 그랬다. 얼굴을 본 순간은 또렷하게 기억났지만, 얼굴은 기억나지 않았다. 성호는 당황하여 친구의 이름을 부르려 했지만, 이름 또한 떠오르지 않는다는 걸 깨달을 뿐이었다. 얼굴도, 이름도 없는 무언가를 100일 동안 친구로 두고 있었다. 성호가 그 사실을 깨달은 순간, 여태껏 아무 말도 하지 않던 친구가 다시 말을 하기 시작했다.
“기억해 냈나 보네? 그러면, 당연히 오늘 말해준 100번째 괴담도 기억하겠지?”
“너 누구야. 도대체 뭐야!”
“지금은 그런 것보다 100번째 괴담이나 신경 쓰는 게 좋을 거야.”
성호의 손이 태풍이 부는 날의 여린 나뭇가지처럼 마구 흔들렸다. 성호는 친구의 정체를 다시 묻고 싶었지만, 아무 말도 꺼내지도 못했다. 마치 누군가 입을 틀어막고 있는 듯했다. 성호가 할 수 있는 건 떨리는 손으로 휴대폰을 꽉 쥐고 오늘 들은 이야기를 떠올리는 것뿐이었다. 다행히도 첫 번째 괴담을 들었던 날과 반대로 바로 떠올릴 수 있었다.
재촉하던 성호에게 친구가 들려준 괴담의 이름은 ‘괴담에 잡아먹힌 아이’였다. 이야기의 주인공인 아이는 괴담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마치 성호처럼. 어찌나 좋아했는지 무려 99개나 알고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괴담을 믿지는 않았다. 그렇기에 아이는 괴담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심지어 우연히 만난 ‘괴담’과 친구가 되기까지 했다. 아이는 아무것도 모르고 새로 친구를 사귀어 그냥 좋아했지만, 괴담은 달랐다. 친구가 된 괴담은 유일한 친구인 아이와 하나가 되어 영원히 함께하고 싶었다.
“그래서 어떻게 했는데?”
이야기가 잠시 멈추자 성호는 뒤의 내용이 궁금해서 안달이 났다. 친구는 입이 찢어질 듯 크게 웃음을 지었다.
“아이의 세상을 괴담으로 가득 채워서, 그 마음까지 공포로 가득 채웠어. 그리고 삼키는 거야. 공포랑 아이를 한꺼번에.”
그렇게 100번째 괴담을 다 듣고 난 후, 성호는 실망했다. 성호가 원했던 건 등골이 오싹해지는 무서운 이야기였는데, 그렇지 않았다. 성호가 느끼기에 이건 무서운 이야기라기보다 이상한 이야기였다. 전혀 무섭지가 않았다. 여태껏 들었던 ‘그림자 살인마’, ‘배 갈린 고양이’, ‘두 명의 엄마’와는 달랐다. 무려 100번째 괴담이었기에 기대하고 있던 성호를 완전히 실망시켰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다. 괴담 속 아이의 이야기가 성호의 이야기가 되고 있었다. 겁이 난 성호는 휴대폰에다 대고 소리쳤다.
“난 달라! 괴담을 좋아하면서 믿지도 않지만, 무서워하지 않은 적은 없어!”
성호는 이대로 있으면 눈물이 나올 것 같아 일부러 크게 소리쳤다. 그렇지만, 그 목소리는 잔뜩 떨리고 있었다.
“아니, 넌 그랬어.”
“아니라고!”
“날 처음 만났을 때, 말을 걸었잖아? 무서웠다면 그럴 수 없었겠지.”
성호는 계속해서 부정하고 싶었으나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었기에 잠깐 망설였다.
“내일 학교에서 보자. 도망가도 소용없으니 포기하는 게 좋을 거야.”
그러는 사이, 자기 할 말은 다 했다는 듯 친구는 전화를 끊어버렸다. 성호는 다시 전화를 걸려고 했지만, 휴대폰에는 아무런 통화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았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전화번호를 기억해 내려 했으나, 가로등 그림자가 갑자기 격하게 일렁거리기 시작하자 그럴 여유조차 사라졌다. 좌우로 마구 흔들리는 그림자가 성호가 잠깐 넋 놓고 있는 사이에 칼을 든 사람의 모습으로 변했다. 성호는 그것이 무엇인지 이미 알고 있었다. 성호가 갑자기 뛰기 시작하자 그림자도 당연하다는 듯 성호를 뒤쫓아 갔다. 그림자가 한 손에 들고 있는 칼은 그림자로 만들어졌지만 아주 날카로워서 빛도 베어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도망을 치다 절벽 아래로 떨어진 연쇄살인마가 그림자로 되살아나 다시 사람을 죽이고 다닌다는 ‘그림자 살인마’ 괴담이었다.
그림자는 성호가 조금이라도 가까워졌다 싶으면 마구 칼을 휘둘러 댔다. 다행히 그럴 때마다 간신히 피해냈기에 성호는 크게 다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러다가 성호의 팔 그림자가 그림자 칼에 스쳤을 때, 성호의 진짜 팔에도 칼에 베인 듯한 상처가 났다. 성호는 그때부터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아도 참고 더 열심히 뛰었다. 그림자도 닿으면 안 되었기에 더 빠르게 뛰어야 했다. 어느새 성호의 눈에서는 참지 못한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성호는 바로 뒤에서 쫓아오는 괴담이 너무 무서웠고, 피가 쉬지 않고 흐르는 팔이 너무 아프게 느껴졌다.
“엄마아! 엄마아!”
어디까지 왔는지도 모르고 그저 앞만 보고 뛰던 성호는 저 멀리 보이는 자기 집을 보고 소리쳤다. 그러나 아무리 소리쳐도 집에서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이러다가는 따라잡힐 것 같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도저히 생각나지 않았다. 그때, 대문 앞에 앉아 있는 커다란 무언가가 보였다. 조금 더 가까워지자 성호는 그게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그건 옆집에 사는 성호만 한 덩치의 개, 몽이였다. 성호는 마지막으로 힘을 짜내어 몽이를 향해서 몸을 던졌다. 평소에는 믿지도 않던, 개가 귀신 같은 것들을 쫓아내 준다는 미신이 떠올라서 그랬다. 그리고 다행히도 그 미신이 맞았는지, 뒤를 돌아봤을 때 그림자 살인마는 어디론가 사라진 상태였다.
“고마워, 몽이야. 네 덕분에 살았어.”
성호는 감사 인사를 하며 몽이를 끌어안으려다 뭔가 이상해 그대로 멈추었다. 평소 몽이는 성호가 가까이 가면 바로 달려들어 핥아댔는데 지금은 죽은 듯이 가만히 있었다. 그때 몽이의 배가 불룩 솟아오르더니 양쪽으로 갈라졌다. 그러더니 안에서 피에 젖은 검은 고양이 한 마리가 기어 나왔다. 그 고양이의 배는 몽이처럼 갈라져 무언가 삐져나와 있었다. 간신히 도망친 성호는 또 다른 괴담을 마주하게 된 것이었다. 아이들의 장난에 배가 갈라져 죽은 고양이가 원한을 품고 아이들을 찾아 자신과 똑같이 만들어버린다는 내용의 괴담, ‘배 갈린 고양이’였다. 고양이는 아주 느릿느릿하게 기어 오고 있었지만, 분명 성호를 향하고 있었다. 다가오는 배 갈린 고양이의 날카롭게 빛나는 발톱을 본 성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집을 향해 달려갔다. 성호가 대문을 열고, 현관문도 열어 집 안으로 뛰어들 듯이 들어갔을 때, 바로 뒤에서 ‘야옹’하는 울음소리와 ‘끼기긱’하며 칼로 쇠를 긁을 때 나는 소리가 들려왔다.
성호는 떨리는 몸이 멈출 때까지 현관에 앉아 양팔로 자기 몸을 끌어안았다. 그리고 떨림이 멈췄을 때, 지금 가장 보고 싶은 사람을 불렀다.
“엄마! 나 왔어. 엄마아!”
그리고 엄마들이 대답했다.
“이성호! 뭐 한다고 이제 들어와.”
“그래, 성호야. 왔니?”
팔에 난 상처를 보여주며 지금까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하고, 오늘만큼은 어리광을 부릴 거라 마음먹었던 성호는, 이제 엄마마저 믿을 수 없게 되었다. 두 명의 엄마는 각자 다른 곳에서 성호의 이름을 불렀다. 한 명의 목소리는 안방에서, 다른 한 명의 목소리는 거실에서 들려왔다. 둘 다 성호가 아주 잘 알고 있는 엄마의 목소리였지만, 성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두 명의 엄마’ 괴담. 누가 진짜인지 알 수 없었다. 두 명 다 가짜일 수도 있었다. 어디로 가도 진짜 엄마를 다시는 못 볼 수도 있었다. 성호는 이제 그냥 다 포기하고 쓰러져서 어린아이처럼 울고 싶었다.
“이성호. 빨리 이리로 와!”
“성호야. 여기 좀 와줄래?”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여기서 성호가 포기한다면 엄마는 괴담인 채로 남게 될지도 몰랐다. 몽이도 그랬다. 성호는 다시 힘을 내서 일어나 조용히 2층으로 올라갔다. 조심스레 자기 방문을 열고 들어가 문을 잠갔다. 그리고 방 안의 그림자가 일렁이는 걸 보고는 바로 불도 꺼버렸다. 1층에서는 성호를 부르는 두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창밖에서는 고양이 울음소리가 났다. 성호는 어두운 방 안에서 두 귀를 막고, 혹시 그들이 문을 열려고 할까 봐 두 눈을 크게 뜨고 지켜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그들은 성호를 향해 오지 않았다. 성호 근처에도 오지 못하고 있었다. 두 명의 엄마는 성호가 무시하고 있으니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배 갈린 고양이는 닫힌 현관문 앞에서 울기만 했다. 그림자 살인마는 그림자가 없으니 모습조차 보이지 못했다. 그러자 성호는 괴담을 어떻게 상대하면 되는지 알 것만 같았다. 괴담은 그게 어떤 존재인지만 알면 상대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두려워만 한다면 그들에게 당하기만 할 뿐이었다.
“이성호! 언제까지 잘 거야. 빨리 내려와!”
“성호야. 아침이야. 어서 밥 먹어.”
뜬눈으로 밤을 새운 성호는 두 명의 엄마가 아침을 알리는 소리를 듣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제 너무 많은 일을 겪은 탓인지 온몸이 축 늘어지는 것만 같았다. 그렇지만 해야 할 일이 있었기에 성호는 여기서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문밖에서 고양이는 보이지 않았고, 그림자도 제멋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그들은 괴담에 따르면 햇빛 아래에서 나오지 못했다. 성호가 아침까지 기다린 이유였다.
“꼭 되돌려 드릴게요.”
대문을 나선 성호는 고개를 돌려 집을 바라보고 작게 중얼거린 뒤, 학교를 향해 뛰어갔다.
성호가 교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자리에 앉아 있던 친구가 일어났다. 그리고는 성호를 향해 천천히, 아주 천천히 다가왔다. 친구를 보고 마주 선 성호는 친구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머리카락 없는 동그란 머리에 눈이나 코, 입술같이 생긴 괴상한 무늬가 얼굴 대신 흐르고 있었다. 친구가 ‘무엇’인지 알게 되어 볼 수 있는 것이었다. 성호의 바로 앞까지 온 친구가 멈춰 서더니 얼굴에 있는 입까지 무늬를 쩍 벌렸다.
“성호야, 먹힐 준비는 됐어?”
“아니.”
“네가 날 무서워하는 한 도망칠 수 없어. 영원히.”
“나는 네가 무섭지 않아.”
“거짓말!”
그렇게 소리친 친구의 몸이 교실의 천장에 닿을 듯이 부풀어 올랐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반의 아이들은 아무도 그런 친구를 신경 쓰지 않았다. 그걸 본 성호는 왜 어느새 자신이 반에서 ‘친구’가 아니면 대화를 하지 않게 되었는지 알게 되었다. 친구는 성호에게만 모습을 보여, 원래 성호가 친했던 아이들과 멀어지게 만들었다. 그리하여 자신만이 성호의 친구가 되었던 게 분명했다.
“100번째 괴담은 별로야. 실패라고. 무섭지도 않아.”
“거짓말, 거짓말, 거짓마알!”
친구는 커다랗고 날카로운 이빨과 손톱을 성호에게 들이댔지만, 성호는 하나도 겁나지 않았다. 100번째 괴담에서 친구는 자신을 무서워하는 아이를 삼킨다. 그건 즉, 성호가 무서워하지만 않으면 친구는 성호를 삼킬 수 없다는 얘기였다.
“아이를 잡아먹는 괴물이라니 너무 식상해. 그러니까 내가 새로운 괴담을 말해줄게.”
성호가 정말로 무서워하지 않고 도리어 자신 있게 말을 하니, 어느새 친구가 원래의 크기로 줄어들었다. 친구는 뭔가 불안하다는 듯이 고개를 좌우로 돌리고 다리를 떨어댔다.
“이건 괴담을 잡아먹는 아이 이야기야.”
완전히 겁을 먹은 친구에게 성호는 속삭이듯이 말하기 시작했다. 마치 친구가 성호에게 괴담을 얘기해줄 때처럼.
“작고 약한 괴담이 자기를 무서워하지 않는 아이를 보고, 무서워하다 잡아먹히는 이야기지.”
“그건 말이 안 돼. 아이를 무서워하는 괴담은 어디에도 없어!”
친구는 다시 몸을 부풀리며 소리쳤지만, 아까와는 달리 성호를 쳐다보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런 친구를 본 성호는 커다란 친구를 향해 한 걸음 다가서며 물었다.
“진짜로?”
그러자 친구는 성호만큼 작아졌다.
성호는 또 한걸음 친구에게 다가섰다.
“정말로?”
그런 성호를 피해 뒤로 한 걸음 물러선 친구는 어느새 성호의 반도 되지 못할 만큼 작아져 있었다.
“잡아먹지 못할 거 같아!”
두 손을 허리에 얹은 성호가 무서운 얼굴로 외치자, 깜짝 놀란 친구가 제자리에서 뛰어올랐다가 뒤로 발라당 넘어졌다.
“친구야. 내가 너의 101번째 괴담이야.”
성호는 자신의 손가락보다 작아진 채로 도망치는 친구를 잡아, 입에 넣고 삼켜 버렸다.
100번째 괴담은 끝이 났고, 성호의 세상은 원래대로 돌아왔다. 학교에서는 다시 아이들과 친해졌고, 몽이는 건강하게 뛰어다녔으며, 엄격하면서 상냥한 엄마는 단 한 명뿐이었다. 성호는 이제 아무것도 두렵지 않았다. 성호는 이제 평범한 아이이자 괴담을 삼키는 괴담이었다. 무엇인지 안다면 무엇이든 삼킬 수 있었다. 이제 겁먹어야 할 쪽은 성호가 아니라 괴담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