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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셋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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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은 수없이 많지만 어쩐지 겹치는 부분이 없었다. 특별할 것 없이 평범한 존재들이 독자적으로 살아간다. 어떤 사람은 사랑에 너무 민감했고 그 영향으로 적당히 몸이 약했다. 그런 예민함이 삶을 힘들게 했지만, 오랜 삶에 익숙해졌기 때문에 당연시하며 살아갔다. 그런 부류가 모래알만큼 가득했다. 그럼에도 여자는 혼자였다. 자신과 같은 부류를 여럿 봤지만 절대 자신과 같을 수 없었다. 사람을 너무 사랑하고 사람한테 배신당한 뒤, 평생 이렇게 몸도 마음도 아프다가 죽을 인생이라며 하소연하는 사람들의 말에 공감했다. 하지만 여자는 마음 깊은 곳에서 그들에게 낯선 기분을 느꼈다. 아이를 가지기 전부터 낳을 때까지, 그 아이가 지금 제 나이가 될 때까지도 그렇게 아프기만 하다 죽을 운명이었다. 여자는 건강을 위해 따뜻한 차를 마시거나 클래식 음악을 듣는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 운동도 싫어해서 간혹 마트까지의 걸음을 운동 삼는 게 전부였다. 그렇게 몸도 마음도 건강할 수 없는 삶에 끼어든 남편은 나쁘지 않은 사람이었다. 기대가 크지 않았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의견을 적당히 맞춰갈 수 있었고 같이 있을 때 특별히 마음이 불편하지 않았다. 그런 사람과 인생이 가지기 어려운 행복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꽤 시간이 흐른 뒤였다. 여자는 신을 믿지도, 기도를 올리지도 않았지만 때로 원망했다. 아이를 가진 것은 예기치 못한 일이었다. 감사하지 않고 살아온 삶에 대한 벌을 받는 것으로 생각하기도 했다. 부부는 일찍이 아이 이름을 지었다. 여자의 의견이었다. 강할 강에 클 태를 붙인 이유는 일말의 유약함도 전해지지 않길 바랐기 때문이었다. 남자 이름 같다는 무례함이 차라리 나은 편이었다. ‘북한 사람 같다’, ‘할아버지 이름 같다’, ‘생태나 명태처럼 생선 이름 같다.’ 실체 없는 말 따위 믿지 않았지만, 행여 부정이 축적되면 어쩌나 하여 여자는 조심스러움으로 정성스레 아이를 보듬었다. 아이는 걱정이 무색하게 건강히 태어났지만, 불안은 끝나지 않았다. 부부는 아이를 정성스레 보살피면서도 끊임없이 걱정했다. 여자의 걱정이 대부분이었다. 길게 늘어뜨린 푸념이 끝나길 바랐지만 두껍게 쌓인 세월이 쉬이 마음을 놓아주지 않았다.

   강태는 태아였을 때를 매일 기억했다. 기분 좋은 따뜻함에서 느끼는 기쁨, 그리고 불안이 겹쳐 흥분되는 기분이었다. 어쩐지 따뜻함과 불안을 제외하고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잠이 오지 않는 날이면 강태는 그 따뜻한 기분을 떠올리고 뒤따라 떠오르는 불안이 무엇이었을까 한참 생각했다. 어느샌가 그 고민이 지루해질 때면 문틈에 슬쩍 귀를 대고 부모님의 대화를 엿들었다. 강태는 오래된 기억을 더듬었다. 1학년일 때 부모님은 강태가 아프지 않아 다행이라고 했다. 2학년에는 너무 안 아픈 게 아니냐며 걱정을 쌓곤 그래도 좋은 게 좋은 거라며 대화를 끝냈다. 3학년에서 4학년으로 넘어가는 겨울에는 병원을 데려가 볼까 하면서도 먹고 사는 문제로 무산되고 말았다. 5학년이 되어 별 쓸데없는 걱정을 한다는 외할머니 말에 여자의 걱정이 겨우 사그라들었다. 그리고 고등학생이 되고 나서야 강태는 통증을 느꼈다. 정신이 몽롱한 가운데, 뜨거운 피가 몸을 돌아 퍽 터진다고 말했다. 그 말이 비유인지 실제인지 이제 와서 알 수 없었다. 그저 강태가 느낀 그 감각만큼은 분명했다. 테이, 그 애가 강태에게 피의 온도를 느끼게끔 했다. 실은 테이가 저주를 내린 게 아닐까. 강태는 그 애를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엄마의 병과 같았다. 예측불허한 하루를 만들어서 사람을 지치게 만들었다. 평생을 짊어질 병, 어떤 기억은 병을 닮아있다. 테이의 가느다란 팔다리와 뼈 위에 얇은 가죽을 올려 완벽하게 빚어낸 모습, 그리고 분한 표정으로 우는 모습이 선하다. 그런 생각이 들면서 웃는 테이의 모습이 흐릿한 눈 너머로 보였다. 강태는 그 언행에 담긴 깊은 숨을 아직도 두려워한다.

   어느덧 두 자릿 수가 된 새학기를 맞이했지만 강태는 여전히 어색한 기분을 느꼈다. 어색한 긴장으로 언 손을 녹이기에 히터 바람은 가망 없이 약했다. 익숙하게 무리를 찾아 시발, 존나를 남발하는 질 나쁜 아이들이 바로 앞에 있었고 친한 친구는 복도 끝 반으로 떨어져 버렸다. 3시간만 더 자고 싶다, 시발, 자퇴하고 검정고시 치고 싶다. 시발, 여긴 닭장이야. 시발, 시발. 그런 불만으로 시간을 얼마나 태우고 있었는지, 어느새 반은 학생들로 가득 차 있었다. 혼잡한 군중 속에서 누구라도 봐달라는 듯 혼란한 표정을 짓는 한 아이가 강태의 책상에 손을 얹었다. 강태는 불쑥 다가온 얼굴을 올려다봤다. 테이를 똑바로 바라본 처음의 기억이었다. 테이는 당장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작게 읊조렸다.

   “너 그거 있어?”

   ‘와, 성대에 마이크 심었나.’

   무례한 생각이 들었다. 명찰이 눈에 들어왔다. 테이, 서테이 석 자 이름이 어찌 저리도 이국적이고 신비로운지. 강태는 다시 대화에 집중했지만, 저도 모르게 이상한 목소리가 났다.

   “무으슨 그거?”

   울렁거린 숨을 뱉은 강태의 늘인 말에 테이는 조급히 손바닥에 글씨를 적었다.

   ㅅ, ㅐ, ㅇ, ㄹ, ㅣ.

   손이 떨렸지만 길게 뻗친 글씨를 알아보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단지 부드러운 살결에 전혀 집중하지 못했을 뿐이었다.

   “미안 혹시 말로 해줄 수 있어?”

   “생리, 생리 말이야.”

   “나 생리대 없는데.”

   강태가 한참 읽던 만화에는 휴지를 둘둘 말아 엉덩이 사이에 끼우면 피가 세지 않는다는 내용이 있었다. 강태는 그 만화에서 누구에게도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만화 끝자락에 와서야 흘긋 보고 지나쳤던 아이에게 호감을 느꼈다. 특별한 시기를 보내는 애들보다 평범하게 살아가는 유진이, 그리고 그 애의 언행을 좋아했다. 만화에서 여러 차례 보였던 유진이의 담담한 다정함을 왜 기억하지 못하는 건지, 강태는 어째서 그런 다정한 말 대신 생리대가 없을 때 대처법을 기억했는지 모른다. 단지 강태는 그날 휴지를 가지고 있었고 테이를 따라 화장실에 갔을 때도 특별히 어떤 생각을 가지지 않았다. 강태가 느끼기에 10분은 짧았지만, 테이가 고마움을 쌓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강태가 기억했던 평범함은 어쩐지 스스로를 특별함으로 이끌었다. 그 날 강태는 특별함의 첫걸음을 때고 있었다. 그 옆에 테이가 슬며시 다가오는 줄도 모른 채.

   두 사람이 같은 반이 되었고 학교에 나왔다. 둘 중 하나가 학교에 나오지 못했거나 전학을 갔을 수도 있다. 강태가 끝 반에 있는 친구에게 가고 테이는 다른 사람한테 말을 걸었다면. 더욱 이루어질 수 없는 경우를 상상해서 학교 앞에 운석이 떨어지고 좀비가 나타나고 용이 혼란 속을 날아다녔다면 두 사람이 우리라는 말로 불리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느 세상 일이 그렇듯, 안좋은 방향으로 가기도 했다.

   “강태야. 학교 끝나고 우리 집에 놀러 와.”

   “뭐? 그렇지만, 그, 나 아직 너 이름도 몰라.”

   “너, 내 이름 몰라?”

   강태의 기억력이 나쁜 편은 아니었다. 단지, 강태가 테이의 이름을 들었던 곳은 60명 학생이 있던 보충 수업 중이었다. 테이의 표정이 무너지고 목소리조차 제대로 내지 못한 채 눈에는 눈물이 맺혔다. 강태는 그런 모습을 잘 알고 있었다. 엄마는 항상 그런 모습으로 슬퍼했다. 몇 번이고 느꼈던 주제에 감정이 낯선 듯 어쩔 줄 모르는 모습으로 혼란스러워했다. 어린 시절의 강태는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엄마를 안았다.

   “엄마 왜 울어? 무서워, 울지마…….”

   엄마의 대답은 대개 하나로 추려졌다.

   “으응. 엄마가 왜 우는 거냐면, 우리 강태를 너무 사랑해서 그래. 엄마가 울어버릴 만큼 강태를 사랑해서.”

   그런 대답은 어딘가 석연찮았다. 하지만 엄마는 힘겹게 말하고 있었다. 목이 꽉 메 그 말을 하는 것마저 부담이 되어 보였다.

   “나 조금만 사랑해도 되니까 안 울면 안돼?”

   엄마는 그 말에 그럴까, 우리 강태 요만큼만 사랑할까? 라며 장난스럽게 웃었지만, 강태는 여전히 어딘가 석연치 않았다. 강태가 진짜야, 진짜 그래도 돼. 그런 말을 몇 번이고 반복했지만 이후로도 엄마는 서럽게 울었다. 그리고 비슷한 대답이 돌아왔다. 엄마가 사랑한다는 말이 거짓말이 아니라며 새끼손가락을 걸고 맹세를 받아냈을 때야 강태는 안심할 수 있었다. 여전히 불안함은 마음에 묵혀있었지만, 그 시절은 엄마를 아주 많이 믿었던 때였으며, 사랑의 어두운 면을 잘은 모르고 있었기에 큰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런 학습이 있었기 때문에 강태는 테이가 자신을 사랑한다고 생각했다. 저 자신 때문에 타인이 운다. 모든 울이를 사랑이라고 할 수 없지만 그때 강태는 분명히 사랑을 느꼈다. 친구 사이에 사랑이라는 단어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사전을 찾아보니 사랑에는 세 가지 뜻이 있었다. 어떤 사람이나 존재를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마음, 어떤 사물이나 대상을 아끼고 소중히 여기거나 즐기는 마음. 첫 번째 뜻은 얼추 맞았지만, 두 번째 뜻은 아닌 듯했다. 실은 첫 번째 뜻에서도 어딘가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사랑의 마지막 뜻에는 남을 이해하고 돕는 마음이라고 적혀있었다. 강태가 친구 간의 사랑을 이해하지 못했던 이유라면, 사랑은 사귀는 사람에게만 쓰이는 단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세 번째 뜻을 보고 나서야 겨우 안심할 수 있었다. 강태에게 친구 간의 사랑은 그런 의미가 되었다. 테이가 처음으로 울었던 날, 강태는 테이의 말을 전부 들어주었다. 그 말에 섞인 분노나 슬픔, 배신감을 묵묵히 듣고 사과를 원하면 사과했고 위로를 원하면 위로했다. 강태의 사랑은 그런 행태를 띄었다.

강태는 태아였을 때 느낀 기쁨과 불안을 떠올리며 엄마는 무엇이 그리도 불안했을까 궁금했다. 식습관, 편식, 운동과 쇠약함, 사회성, 수면과 신체, 그런 전반적인 것. 강태의 엄마는 모든 것이 불안했다.

   ‘나처럼 달리기를 못하면 어떡하지, 나를 닮아 다리가 얇지 않을까, 달리지 못한다면, 잘 걷지도 못한다면, 어느 것도 할 수 없다면.’

   부지런한 걱정의 사이, 알게 모르게 그런 내용이 잔뜩 섞여 있었다. 그런 걱정은 강태를 낳고도 오랫동안 이어졌다. 그렇기 때문에 강태가 처음으로 육상 대회 메달을 딴 날, 엄마는 밤새도록 눈물을 흘렸다. 강태에게 너무 많이 사랑하기 때문이라는 말을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동영상의 강태는 투박했다. 스타팅 자세부터 어딘가 엉성했고 달리는 자세도 좋지 않았다. 그럼에도 아주 빠르게 달려갔다. 그날 강태는 사람을 앞지를 때 느끼는 생명력을 알았다. 바람을 맞으며, 어지러움 직전의 숨, 뜨거운 땀, 신발 밑창과 트랙의 마찰, 몸에서 벗어나는 나. 그렇기에 생명력 없는 것을 싫어했고 테이를 가엽게 여겼다. 불쌍하게도 테이를 비유할 대상이라고는 인형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강태는 공주, 여왕님, 대구 여신 따위의 호칭을 떠올려봤지만 하나같이 어울리지 않았다. 강태는 더 이상 호칭에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그저 테이의 좋아하는 부분을 요목조목 전해주었다. 마음은 거칠고 딱딱한 돌 같기도 또 어떨 땐 정강이를 타고 흐르는 물, 또는 작은 박동 같았다. 강태는 제가 가진 마음의 형태를 알려주고 테이는 그런 마음을 같이 확인했다. 전해졌다는 자각은 없었다. 대신 마음을 전해준 뒤 테이가 작게 미소를 지을 때 강태는 비로소 마음을 놓았다. 넘치려는 마음이 겨우 적정선을 찾을 때 느끼는 편안함이 따뜻하게 느껴졌다. 테이도 그런 말을 참 좋아했다. 가장 사랑하는 친구에게 좋은 모습을 보일 수 있음에 안심했다.

   “오늘은 꼭 우리 집에 와. 저번에도 못 왔잖아.”

   한겨울 추위가 가시는 월요일에 테이는 편지지를 책상에 올리고 반을 나갔다. 비장한 선언을 하는 모습처럼 보였다. 그런 태도와 어울리지 않게 편지지에는 달콤한 향기가 나고 있었다. 도로명 주소와 방과후에 오라는 추신이 정갈한 글씨로 작게 적혀 있었다. 장난일 것이라 잠시 생각했지만, 그날 테이 자리는 종일 고요했다. 강태는 사람의 부재가 심하게 어색했다. 허전한 마음에 쓸쓸함이 돌았다. 히터 바람이 따뜻하게 손을 녹였다. 손은 추위 알레르기 탓에 두드러기가 올라왔다. 발은 부드럽고 미지근했다. 땡땡하게 얼었던 귀도 녹은 지 오래였다. 어디 하나 차가운 곳은 없는데, 속에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추위와 비슷했다. 텅 빈 무언가의 사이로 바람이 느껴졌다. 수업이 다 끝나고서 테이는 종례 도중에 얼굴을 비췄다. 8시 반에서 6시. 채 반나절도 되지 않는 시간에 테이가 며칠 등교할 수 없다고 전해주신 선생님의 언질이 무색해지는 시간. 마스크를 쓰고 고작 패딩 교복 위에 패딩 하나 걸친 게 전부였다. 이렇게나 위태로운 모습으로 학교에 온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꽝꽝 언 손이 강태의 손을 잡았다. 강태의 손을 놓치면 주저앉을 정도로 온몸에 힘이 빠져있었다. 또한 맞잡은 손의 온도는 극단을 담고 있었는데 열이 올라 뜨겁다가도 추운 공기로 소름 돋게 식어버린 피부의 한기가 느껴졌다. 완주 이후에 식어가는 땀과 그 온도는 비슷했다. 하지만 무언가 달랐다. 그 중심을 채우는 커다란 무언가는 완전히 반대되었다.

   “진정해, 서봐. 테이야, 테이야..”

   학교 건물이 눈에서 사라지고 나서야 테이는 걸음을 멈췄다. 테이는 숨을 들이쉬었다. 호흡이 가쁜가 싶더니 읍, 하는 소리를 내곤 큰 숨을 천천히 들이쉬었다. 얇은 몸이 둔하게 움직였다. 몸을 움츠리더니 인상을 찌푸렸다. 무언가 견디는 표정이었다. 이내 테이는 서럽게 울기 시작하더니 눈물을 흘렸다. 뜨거운 눈물이 공기 중에 차갑게 식어가고 곧바로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테이는 강태의 팔에 기대어 힘든 숨을 쉬었다. 강태는 익숙하게 테이를 받쳐주었다.

   “강태야, 나는 네가 진짜 좋아. 나는 나한테 맨날 욕하는 년이나 얼굴만 보고 시시덕거리는 새끼들 밖에 못 봤는데. 네가 내 인생에 들어오더니 나를 행복하게 만들었어. 여기가 좋고 이래서 좋고 저래서 좋고, 내가 좋대. 이런 말에 기분이 이상해. 그런데 싫지 않아. 서로를 아끼는 게 너무 좋아.”

   강태의 눈에 두 사람이 겹쳐 보였다. 엄마가 너를 사랑하기 때문에, 내가 너를 많이 사랑하나 봐, 두 문장이 다른 듯 비슷했다. 강태는 사랑을 조금 더 생각해 보기로 했다. 테이는 강태를 첫 번째로 사랑한다. 강태는 테이를 세 번째로 사랑한다. 그래, 세 번째로 정의 되던 사랑이었다. 테이는 간절히 갈구했다.

   “나는 평생 이러면 좋겠어. 서로 사랑하고 행복하고, 그냥 시발 그렇게 살고 싶어.”

   “테이야, 괜찮아. 내가 괜찮게 할 거야.”

   강태는 테이의 말에 대답했다. 엄마가 울 때마다 머릿속으로 그렸던 내용을 드디어 입 밖으로 꺼냈다. 그럼에도 여느 사람이 그렇듯 강태는 사람을 떠나보낸다. 언젠가는 테이를 크게 아끼지 않는다고 결론짓게 된다. 어리석은 철학으로 마음을 죽여가면서도 수천 년간 그 누구도 이해할 수 없던 사랑이었다. 그러니 결국에 인간의 당연한 인생과 같은 일이었다. 의식하지 않은 채 둘은 무거운 사랑을 했다. 연이은 기상악화를 보도하는 겨울 속에서 손이 뜨거워진 이유도 침묵하는 공기에서 처음으로 사랑의 말을 꺼낸 이유도 모른 채, 콘크리트에 앉았다. 만약, 테이의 마음을 알았다면, 우리가 조금 더 성숙했다면 어땠을까. ‘만약’이 현실이 되고 조금씩 비켜 나간 하루, 이틀은 기억 속에서 우리를 우리로 남게 했다면. 저 자신이 테이를 닮아가던 시기. 강태는 테이를, 그 병을 잘 알고 있다. 느닷없이 불길함을 느꼈지만 정리되지 않았다. 강태의 사랑 아래 묻힌 문제가 속에서 천천히 불어나기 시작했다.

   며칠이 지나고도 강태는 계속 테이를 찾아갔다. 학교 정문에서 테이의 집을 향하는 왼쪽 길을 대신, 오른쪽으로 돌아 버스를 탔다. 무리하게 움직였던 날의 영향인지 며칠이 지났지만 테이는 여전히 아파 보였다. 환자복 때문일지도, 그게 아니라면 보호병동의 분위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말투는 퉁명스러웠고 불만스러워 보였다.

   “아직 많이 아파?”

   “뭐가, 정신이 아니면 몸이?”

   말에 날이 서려 있다. 테이의 말로는 엄마한테 딱 한 번 반항했을 뿐이었다고 한다. 정신병자가 아니야, 정신적으로 건강해, 문제없어. 그런 말이 간절하게 들렸다. 그래서 정말 테이가 억울한 건지 자신의 상태를 부정하고 싶은 건지 알 수 없었다. 강태는 그날 학교에서 배운 내용을 가르쳐주었다. 가르쳐 봤자 영어 정도였다. 그마저도 테이는 지루하다며 몸을 돌릴 때가 많았다. 억지로 이어가던 영어 공부에 강태가 슬슬 지쳐갈 때쯤, 테이는 뜬금없이 책을 읽고 싶다고 했다. 며칠간의 병문안에서 테이가 처음으로 제안한 일이었다. 강태는 대중적인 소설, 신간 소설, 야한 묘사가 나오거나 도서관 구석 책장에서 키스하는 남녀의 삽화가 수록된 책을 빌려왔다. 테이는 일반적인 소설에 여전히 뚱한 표정을 짓다가도 야한 묘사가 나온 장면에서 깜짝 놀라 입을 막았다. 슬쩍 눈치를 보더니 제목을 확인하기도 했다. 제목을 확인하다 눈이 마주쳤을 때 서로 약속이라도 한 듯 웃음이 터져 나왔다. 만약 테이가 정말 아픈 상태였다고 가정하면 그 때를 기점으로 상태가 좋아지고 있었다. 소설을 읽지 않을 때면 강태는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지만, 테이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매미 허물을 찾은 이야기, 길고양이가 텃밭에 똥을 싸고 화장실 칸에 꽃매미와 갇힌 이야기를 듣고 웃었지만 사람 이야기가 나오면 급속도로 기분이 나빠졌다. 강태는 그런 반응이 조심스러워져 말을 골랐다. 테이는 기분이 좋다가도 나빴고 어느 날은 뜬금없이 면회를 거부하기도 했다. 그러기에 강태는 말을 더 조심히 했다. 하지만 몇 번 반복하니 피곤한 일이었고 결국 대부분의 면회 시간 동안 책에 관해 이야기했다. 강태는 전래동화는 구시대적이며 실은 <운수 좋은 날>을 무척이나 싫어한다고 말했다. 테이는 평소와 달리 격한 반응을 보였다. 테이는 흥분한 채 김첨지를 욕하고 <선녀와 나무꾼>에 관해서는 뭐 저딴 쓰레기 새끼가 다 있냐는 말로 글을 함축했다. 신나게 책을 욕하는 테이의 표정, 그 표정은 작고 담담한, 예의로 만들어진 웃음과 달랐다. 문학 뒷담화 소재가 더 이상 떠오르지 않을 때면 함께 사랑을 주제로 쓰인 시를 읽었다. 강태가 처음으로 테이를 보러 갔던 날에 테이는 곧 죽을 사람처럼 보였다. 예측할 수 없는 상태가 계속되니.

   테이가 퇴원했을 때는 6월 중순이 되어있었고 아이들은 하복을 입었다. 학교에 나왔을 때 테이가 자리에 있었다. 그 자연스러운 모습이 누구한테도 어색하게 느껴졌다. 강태는 좁아진 시야가 어색했고 테이는 오랜만에 앉는 자리가 낯설었다. 선생님도 자꾸 ‘서테이, 병결.’까지 말하고 나서야 아차, 하고는 동그라미를 쳤다. 출석부 테이의 이름 옆, 띄엄띄엄 그린 완전한 동그라미를 두 개를 제외하고는 전부 긋다 만 선이 있었다.

   “추운데 에어컨 끄면 안 되나? 얘들아, 너네 많이 더워? 여기 너무 춥다…….”

   하복 치마를 접어올린 양아치 몇몇이 눈치를 주며 에어컨을 껐다. 금세 냉기가 사그라들고 불쾌한 더위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추우면 담요 빌려줄까? 이거 오늘 가지고 와서 깨끗한데.”

   “아, 나 딴 사람 물건 좀 싫어해서……. 좀 지저분할 것 같애.”
   그 말은 다시 생각할 것도 없이 무례했다. 그럼에도 대놓고 말을 꺼내기에는 눈치가 보였다. 질 나쁜 아이에게 찍혀 좋을 것이 없었기 때문에 강태도 여느 누구처럼 불편한 웃음만 슬쩍 보였다. 이제야 따뜻하다고 좋아하는 아이들 뒤로 다시 에어컨이 켜졌다.

   “에? 친구야. 우리 덥다고 말했는데.”

   “담요 준다고.”

   “아, 나 더러운 거 싫어한다구. 친구야, 혹시 눈치 없어?”

   “춥다고 해서 담요 준다고 하는데 네가 안 받는다며. 그러면 그냥 견뎌야지. 평소에도 사복 잘만 입고 다니던데 오늘은 왜 안 가져왔어?”

   상대적으로 키가 큰 한 명은 할 말을 잃고 입을 다물었지만, 앞머리에 브릿지 염색을 한 한 명은 싫은데? 라며 시비조로 되받아쳤다. 그 나이대의 흔한 양아치처럼 테이의 말을 물고 늘어졌다. 욕은 당연하게 섞이고 분에 찬 조롱이 대다수였다. 조롱 하나가 잊히고 가시기도 전에 다시 조롱이 나온다. 그 조롱에 익숙해질 무렵에는 부담스러울 만큼 과장을 섞은 마찰음으로 욕한다. 씨이발, 븡신새끼 따위의 단어가 그랬다. 브릿지는 옆에 서 있는 양아치보단 상대적으로 키가 작았다. 그렇다고 해서 절대로 작다고 할 순 없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나 절대적으로나 참 작은 테이 앞에서 브릿지의 몸집은 더 불어났다.

   “응? 친구야, 니가 싫으면 뭐 어쩔 건데.”

   브릿지는 에어컨을 끌 수 없다. 테이를 이길 수 있다고 해도 선생님이 에어컨을 켤 때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다. 결국에 권위에 도전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에어컨은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았다. 결국에 브릿지는 학생이었고 테이도 같았다. 뒷일을 생각할 머리가 없었다. 심각한 상황을 피하고 싶은 짙은 피곤이 없었다. 그렇기에 인내하지 못했고 할 생각조차 않았다. 어른과 완벽히 반대되었다. 어른들의 무지한 함축을 빌리자면 너희는 어리니까, 그 정도로 얕게 요약할 수 있는 싸움이었다. 강태는 두 손을 맞잡았다. 꾹 누른 채 힘을 실어 비비고 주물렀지만 따뜻해지지 않았다. 단 새 학기 첫날처럼 엄마의 뱃속을 떠다니고 살아가는 모든 순간처럼 긴장과 불안에 몸이 굳어 불안이 피부에 따끔거렸다. 괜한 불똥이 튈까 불안하면서도 테이가 싸움에 말려들지 않길 바랐다. 이기적인 걱정을 했다. 테이가 다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지만 생각 속에는 평화주의도 사랑도 없다. 제 물건에 매직을 칠한 동생에게 화를 냈던 때와 같았다. 뒷말도 폭력도 싫은 건 누구도 당연하다. 강태는 다수의 생각에 겨우 불안을 억눌렀다. 보편적인 행동도 생각도 옳으리라 생각하며 테이 앞에 섰다. 브릿지는 무어라 씨불이는가 싶더니 더 이상 테이에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브릿지 쪽으로 온 신경이 쏠려있던 탓에 강태는 테이의 표정을 보지 못했다. 그 표정은 정말 아주 잘못된 사랑을 갈망하는 사람의 표정과 닮아 있었다. 다음 쉬는 시간이 되고 테이가 또 저지를 일, 옳았던 저의 행동이 잘못된 사랑 앞에서는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면 강태는 도망쳐버렸을지도 모른다. 얌전히 수업에 집중한 테이가 브릿지를 보며 사과를 요구한 일은 강태로서 예상할 수 없었다. 브릿지가 테이를 정말 때릴 기세로 손을 쳐들었다. 테이는 순간 눈을 감았지만 물러서지는 않았다. 단정한 눈썹과 숱이 적은 앞머리 뒤로 얼굴 근육의 움직임이 보였다. 생각해 보면 기분 나쁜 표정은 아니었고 화가 났다기에도 애매했다. 엄숙하고 당당한 모습에 가까웠다. 둘의 동태에 스무 쌍 되는 눈이 두 명을 향했다. 테이를 바라봤고 눈을 돌리고 브릿지를 살피며 바삐 돌아가고 있었다. 그 기분은 불길함이라기보단 서커스를 보는 관중의 눈이었다. 테이가 결심하고 목소리에 의지를 담았음에도 단지 흥밋거리로 보던, 그래, 당연한 눈. 테이는 그 눈을 전혀 개의치 않았다. 브릿지 또한 다르지 않았다. 의자가 나동그라졌고 단단한 것들이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더 이상 유희로 지켜볼 수 없는 모양새가 되었다. ‘선생님 부르자’, ‘진짜 때렸어?’, ‘쟤네 왜 싸워?’라고 속삭이는 대화가 들리지 않았지만 그 스무 쌍의 눈은 분명히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강태는 그런 속삭임에 환멸을 느꼈다. 마음 깊은 곳에서 화를 냈다. 결국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강태도 매한가지였다. 한 명이라도 나서주라는 간절함이 마음 밖으로 빠져나오질 못했다.

   “아, 씨이발 진짜!”

   강태는 그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사촌 오빠가 저 말을 할 때면 사촌 동생들은 겁을 먹고 소리 내 울었다. 강태는 아직 테이를 사랑했다. 굳어 움직이지 않는 몸이 빠직, 빠직 힘겹게 움직이며 브릿지를 막아섰다. 몸이 왜 움직이지 않는 것인지, 의식하지 못했지만 강태는 전보다 테이를 덜 사랑했다. 걷기보다 조금 더 빠른 속도, 어정쩡한 자세로 테이를 감싼 모습이 엉성했다. 달리기였다면 부상당하기에 최적인 자세였다. 정말로 화가 나 분을 이기지 못하고 쓰러진 의자를 발로 차는 브릿지의 모습에 강태는 몸에 더 힘을 주었다. 아끼는 마음으로 시작한 행동의 지속이 이제 와서 빠지기에는 뻘쭘하다는 마음이 됐다. 선생님의 개입으로 어중간하게 끝난 일에 애들은 슬쩍 메모지를 주고받다 혼이 난다. 10분 정도의 흥밋거리를 제공한 브릿지는 이 일에 더 이상 관심을 두지 않는다. 매점에서 과자를 훔치다 걸린 1학년, 화장실에서 담배 피우다가 걸렸다는 소문과 쟤 그 남고 3학년이랑 그거 했대 따위 말이 돌았던 반. 이런 일 따위에 관심을 두기에 브릿지는 너무 큰 사람이었다. 강태는 브릿지가 부러웠다. 정말 우습게도 사고 칠 수 있는 모습이 부러웠다. 그리고 이내 당황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실망시키고 기대를 품지 않도록 하는 모습, 그리고 쉽게 사랑하고 쉽게 끊어내는 그런 관계를 부러워하고 있었다. 은연중에 든 생각이 죄악감을 더 불어넣었다. 심장이 큰 소리를 내며 느리게 뛰었다. 세상이 흐리게 보였다. 그 흐릿함 너머에 작은 목소리가 강태를 불렀다. 테이의 큰 미소가 아주 달게 만연하고 있었다. 그런 미소에도 강태는 불안했다. 엄마와 걸었던 새끼손가락에도 안심할 수 없던 기분과 닮아있다. 슬슬 과거의 행복이 수명을 다하고 있다. 아직 완전히 알 수 없었지만, 토기가 올라올 만큼 달디단 미소 뒤로 흐리게 이유가 보였다. 그런 것을 앞에 둔 채, 강태는 애써 모른 척하며 그 미소를 한 입 삼켰다. 속이 더부룩했다.

   뉴스 1면에는 며칠째 미세먼지 없는 깨끗한 날이 계속되고 있다는 소식이 적혔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쨍한 색이었다. 하늘색과 파란색의 중간을 찍은 색은 세상이 멈춘 듯 보였다. 구름이 움직이고 있던 날이면 엄마는 세상이 움직이고 있다고 말했다. 사실 구름은 흘러가지 않고 세상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간다며, 그리고 그렇게 알게 모르게 돌아가다 보면 언젠가 저는 유럽 사람들이 살아 숨 쉬던 곳을 지나고 있을 것이라고. 강태는 두 사람이 다름을 점점 느끼고 있었다. 목요일 5교시는 한참 따뜻한 기운으로 뒤덮여있다. 아직 익숙하지 않은 온기에 몽롱해지고 깊은 생각은 할 수 없게 되면 강태는 태아 시절을 다시 떠올리고 눈부심에 다시 정신을 차리고 그러다 보면 쉬는 시간 종이 들렸다. 강태는 눈을 감고 따뜻하고 몽롱한 기분을 느꼈다.

   태초부터 제가 살아가는 지금에 와서까지도 사람들은 조금 비겁하게 사는 것을 좋아한다. 강태도 적당히 피하고 유연한 그런 삶을 살았다. 조금 참더라도 갈등을 피하는 편을 좋아했다. 터틀맨은 쉽게만 사는 게 재미 없댔지만 누가 과연 어려운 삶을 살고 싶을까. 합리적인 삶만큼은 확실히 아는 나이였다. 그날 쉬는 시간, 테이는 선구자 격의 사람처럼 행동했다. 언젠가 각광받고 그 행동이 옳다고 여겨지며 많은 사람들은 그 행동을 따라 한다. 하지만 선구자는 살아있는 동안, 죽음 이후 몇 년, 몇 세기와 역사가 흐르는 동안 아주 오랜 시간을 비난받는다. 테이는 시작을 열었지만 결국에 아무것도 남기지 못하는 사람처럼 행동하고 있었다. 어떤 사소함이 테이를 진흙탕에 뛰어들게 했을까. 테이는 왜 브릿지와 언쟁을 벌이고 있을까. 강태는 힘을 뺐다. 더 이상 말리고 싶지 않았다. 단순히 생각하면 강태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강태는 테이를 사랑하는 마음이 줄어들고 있음을 점점 느끼고 있었다. 터져나가던 마음은 조금씩 공허해졌다. 그리고 한 움큼 사라진 생각에 더 이상 테이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가능성이 섞였다. 대립은 간단히 보이고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복잡함에 정말 큰 골치였다. 싸움은 무섭다. 상대는 그저 잘못 걸렸을 뿐이다.

   ‘근데 저렇게까지 할 일인가?’

   그래, 이제 머릿속에서 드는 생각에 더 이상 죄책감조차 생기지 않는다. 저렇게까지 하는 게 무엇인지 모르지만 아무튼 그 말에 백번 공감한다. 선구자는, 테이는 배척당한다. 이해할 수 없는 모습에도 좋아하는 마음은 어째서 더디게 사라지는지. 강태는 테이의 삿대질을 바라봤다. 그것에서 바람을 느꼈다. 점점 사랑하는 마음이 작아지고 있다. 그간 테이를 억지로 사랑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복도 작은 창문으로 희미한 바람이 들어오고 있었다. 강태는 달리기 시작했다. 정확히 달리기라기 보단 빠른 걸음에 가까웠다. 그럼에도 달리기가 완전히 느껴지고 있었다. 선두를 달리는 걸음에서 생명을 느꼈다. 바람을 맞으며, 복잡하게 싸우는 마음에 호흡은 어지럽다. 식은땀의 온도, 실내화 밑창과 매끈한 돌바닥의 마찰, 몸에서 벗어나는 나. 군더더기 없이 완전히 늘어난 근육에서 따스하고 부드러운 기분을 느꼈다. 강태는 원래도 원하는 대로 살았다. 학교에 나갔고 방과후에는 아이스크림 하나를 문 채 노을을 보며 걸었다. 엄마한테 100m에서 1등 했다며 희희낙락하는 저녁, 티비에서는 내일 날씨를 알려주고 있었다. 그럼에도 마음이 답답했던 이유, 강태는 사랑도 미움도 조금씩 빠져나간 마음의 틈에 자유를 느꼈다. 작은 손이 강태의 팔을 붙잡았다.

   “왜 그냥 가버렸어? 왜 안 도와주고 가버렸어?”

   강태는 그 질문이 반가웠다. 그 말로서 엄마와 테이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강태는 엄마와 나눈 대화를 떠올렸다. 엄마의 말, 그리고 그 말속에 담긴 것들을 되새겼다.

   “만약 세상 모두가 엄마를 싫어하는데 딱 한 사람만 엄마를 엄청 사랑해 주면 어떻게 할 거야?”

   엄마는 강태의 머리카락을 매만지며 대답했다.

   “혼자 살아야지. 세상이 나를 싫어한다는데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이 정상일리가 있나. 그런 식의 사랑은 사랑이라고 할 수 없어.”

   “그 사람이 정상이라는 가정하에.”

   “그래도 혼자 살 거야. 내가 사랑에 목말라서 소중한 사람 상처입히면 어떡해.”

   강태는 그런 대답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사랑으로 상처를 줄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없었다. 테이를 보며 불안을 느꼈을 때, 제 마음에 상처가 생긴지도 모르고 있었다. 강태는 한참동안 엄마 이야기를 들었다. 사람한테 배신당했던 이야기, 아빠와 만난 이후의 이야기와 아이를 가지고 키우는 과정, 그 안에 느꼈던 불안. 50년 인생의 함축이 완전히 와닿지 않았다. 차라리 나았다. 강태는 사랑에 매몰되지 않은 사람의 강함을 알고 싶었다.

   왜 테이를 돕지 않았을까, 왜 사랑을 배신했냐는 물음에 대해 강태는 가장 적당한 대답을 했다.

   “그냥.”

   강태는 더 이상 이해하고 도우려는 마음이 들지 않았다. 테이의 행동에 더 부응할 방법. 더 이상 친구, 우정, 사랑을 나열할 수 없는, 절대로 위아래가 있고 어느 쪽도 위가 아니고 아래도 아닌 관계. 두 눈에 꽉 차게 들어오는 테이를 보고 있을 때 그 애는 모르는 사이 엇나가도록 걷고 있었다.

   “아니, 그런데.”

   강태는 목소리를 냈지만 이내 다물어 버렸다. 이 말로 시작된 대화에서 존중되는 내용은 티끌만큼도 없을 것이다. 기분 나쁘지 말라는 말에 기분 나쁘고 근데로 시작한 대화에서 부정이 모든 가능성을 없앤다. 어느새 여기까지 와버린 관계의 대화에는 존중을 담을 수 있는지도 담아도 괜찮은지도 모르겠다. 테이는 웃는다. 그 미소가 희뿌옇게만 보여서 입이 찢어져라고 입꼬리를 올리는 미소인지, 저를 위했던 예의 바르고 작은 미소였는지, 비로소 사랑하게 된 이후에 지은 달디단 미소인지. 분간도 되지 않는 그런 미소를 짓는다. 더 이상 이상한 곳으로 엇나갈 여지도 없이 우리에게 선명한 초점이 맞춰져 있다.

   터지기 일보 직전 불길함을 앞에 둔 채, 강태는 테이를 만나기로 했다. 짝을 지어 한 달간 달의 변화를 관찰하라는 숙제가 있었다. 김연주와 황승현은 번호순으로 하는 법이 어디 있냐며 볼멘소리를 냈다. 그리고 서테이, 신강태. 우리는 같이 달을 보기로 했다. 강태는 팬터시나 커들리, 러브스트럭 따위의 단어를 올리던 캘리그래퍼의 인스타그램 게시물을 떠올렸다. 달이 아름답네요. 갈색빛 종이에 만년필로 적은 글씨. 생소한 영어가 적힌 모니터 화면 앞에 잔뜩 흥분했다면 거친 종이 질감 앞에는 마음이 차분했다. 밤, 달이 밝고 둥글게 뜬 밤에 더 이상 그런 종이 질감에도 차분할 수 없었다. 오늘 하늘에는 달이 선명하게 떠 있었다. 기상캐스터의 깔끔한 목소리, ‘내일 수도권 날씨는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이 되겠습니다.’ 완벽한 프로의 미소에 풀이 죽었다. 알지 못하는 사이 쌓이고 쌓인 관계의 결핍이 마음을 조급하게 만들었다. 관계를 바꾸고 사람이 사람을 올바로 사랑하고, 그렇게 일반적인 사랑을 만들 수 있다면. 사람을 돕는 마음은 절대로 사랑이 될 수 없으리라, 강태는 어색하게 몇 번이고 말을 되세겼다. 그러면서 세상은 어쩜 이렇게 독자적일까, 그 답이 궁금했다. 엄마의 쇠약함이나 테이의 기복은 별다르게 보이지 않았는데 또 다시 보면 둘은 완전히 달랐다. 하지만 한 걸음 떨어져 보는 것만으로도 같아 보이는데, 어느 쪽이 진실일까.

   달을 보러 테이의 집에 갈 때, 강태는 옷에 괜히 신경을 썼다. 잠옷 차림으로 와도 괜찮다는 말에도 반팔집업을 걸치고 함께 세트로 산 바지를 입었다. 작은 구름 몇 조각이 하늘을 떠다니고 있었다. 하지만 움직이지 않았고 움직였다고 해서 달을 가릴 정도도 아니었다. 달은 완전한 구 형태로 그 위의 크레이터까지 선명했다. 아름답다. 누가 봐도 아름다웠다. 불길한 빛이 났다. 강태는 몇 번이고 심호흡하고 나서야 초인종을 누를 수 있었다.

   “들어와.”

   테이는 파자마 차림이었다. 주황색 거실 등, 흰색 등, 방의 푸른 기가 섞인 등이 제각각으로 원피스에 스몄다. 불이 꺼진 방에서 달을 봤다. 관찰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달을 그리고 크레이터와 곰보 같은 질감을 칠해도 채 5분도 걸리지 않았다. 실은, 따로 관찰해도 괜찮았지만 언제 또 달이 아름다울지 모를 일이었으며 다음 주는 흐린 날이 계속된다는 명료한 기상캐스터의 발음을 분명히 들었기 때문이었다. 테이는 계속 웃고 있었다. 강태는 숨을 죽인 채 바닥만 바라봤다. 사랑받길 기다렸다. 들여다보면 슬픔이나 분노가 배신감에 버무려진, 사랑 없는 사랑, 상처입히는 사랑을 기다렸다. 그리고 이내 테이의 손이 닿았다. 테이는 네가 나를 따라오리라 생각했다. 테이가 강태를 아주 많이 사랑했기 때문에, 사랑에 어떻게 나쁜 결말이 있을 수 있을까 생각했다. 이내 손이 떨어진다. 다시 손을 잡았다. 다시 손이 떨어지고 떨어진 손을 이번에는 힘을 주어 잡았다. 이내 손이 떨어진다. 테이는 강태의 얼굴을 마주했다. 강태의 표정은 당장이라도 울 것같았다. 강태는 이런 이상한 기분을 무어라 말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이렇게 손쉽게 뿌리칠 수 있는 손을 왜 몇 번이고 뿌리치지 못한 건지, 어쩌면 제가 먼저 손을 내밀었을지도 모른다. 가볍게 준 힘으로도 테이의 손이 떨어진다. 강태는 더 이상 긴장하지 않는다. 천천히 잠에 드는 듯 심장은 점점 느리게 뛴다. 박동 없는 심장에서 생명력을 느꼈다. 강태는 차분했다. 어떤 움직임도, 스스로가 몸을 벗어나는 느낌 없이 생명을 느낀다. 테이는 그제야 깨달은 듯 표정이 점점 굳어졌다.

   “내가, 싫어진 거야? 나는 또 배신당하고, 왜, 또 그럴까. 다들 나를 이상하게 봐. 정말로 생각하고 싶지도 않지만 내가 정말 이상한 사람인걸까.”

   테이는 따뜻하다. 그래, 테이의 사랑을 통해 뱃속을 떠다녔던 그 시절의 기분을 느끼고 있다. 저를 가장 사랑해 주는 친구였고 앞으로도 나를 사랑하는 친구,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테이. 우리는 한없이 우리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강태는 이 관계를 끊는다.

   갓 어른이 되어 과제가 힘들다며 푸념을 늘어놓고 취업을 하면 전보다 자주 만나지 못하게 되겠지. 가족을 일구고 엄마 친구라며 아이에게 서로를 소개한다. 그러다 60대가 넘게 되면 다 늙어빠져 버렸다며 주름진 손등을 괜히 쓰다듬는다. 강태는 그런 테이의 푸념을 듣는다.

테이를 생각하면 이상하게도 그런 행복이 그려지지 않았다. 평생을 이대로 살아갈 것만 같다. 늙지 않고 평생 철들지 않으며 오늘이 내일이고 내일은 오늘인 삶. 영원함도 사랑도 무서웠다. 영원한 사랑은 더더욱 무서웠다. 강태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테이를 첫 번째 뜻으로 사랑하기로 했다. 행복, 첫 번째 사랑, 사랑이 필사적인 너, 세 번째 사랑의 배제, 그리고 신강태. 네가 느끼는 슬픔을 보며 더 이상 인형이 될 수 없는 감정으로 사람을 바라본다. 이 생각을 테이에게 전할까 고민했지만, 무어라 말할지 정리되지 않았다. 어떤 말과 행동을 하게 되어도 결국에 울이를 내는 사람에게 전해질 수 없다. 그저, 나를 사랑한다고 말하겠지. 테이는 엄마를, 유약한 시절의 결핍을 아주 닮았으니까. 강태의 눈에 두 사람이 흐릿하게 겹쳤다.

   “사랑에 목말라서 소중한 사람을 상처입히면 어떡해.”

   강태는 테이에게 자신에게 말을 전했다. 그 말을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테이는 숨죽여 울고 있다. 강태는 더 이상 눈을 마주치지도 무릎을 꿇지도 않는다. 바깥의 달은 부담스럽게 밝아서 바라볼 수 없었다. 눈을 감은 채 고개를 들었다. 하, 외마디로 저도 모르게 긴장풀린 한숨이 나왔다.

   강태는 가볍게 다리를 풀고 달렸다. 어떤 것도 느끼지 않은 채 팔다리를 완전히 쭉 뻗는 데만 집중했다. 피가 뜨거웠다. 식지도 않고 뜨거운 피가 계속 몸을 돌아 터질 듯했다. 인생의 첫 아픔으로 그때를 기억한다.

   좋아하는 남자애라도 있나 보네. 딱 이 나이대 애들이 한참 상사병 때문에 오더라.

   엄마는 그 의사 선생님을 두고두고 욕한다. 아이가 정말 죽는 게 아닐까, 떨고 있던 부모 앞에서 그런 농담을 할 수 있냐는 이유였다. 의사 선생님의 눈을 보며 강태는 씨익 웃어 보였다. 그럴 리가요.

   허허, 많이 안 아픈 거 보니 그렇게 좋아하는 건 아닌가 보다.

   예, 별로, 많이 안 좋아해요.

   증오나 슬픔 따위는 사랑이 될 수 있다. 쫑난 인연을 누구의 잘못이라 말한다면 어느 쪽이라   고 확언할 수 없다. 오로지 너의 잘못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내 잘못이 될 수 없다. 한 편으로 우리는 아무것도 잘못하지 않았다. 결국 사람이 만나고 헤어진 안타까운 이야기. 누군가라도 할 수 있는 사랑을 했다. 결국에 쫑난 인연도 사랑도 잘못되고 잘못되지 않았다. 단지 세상 속에는 너무 많은 사랑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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