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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찬

 

 

 

   나는 매번 지나간 계절을 그리워했다. 봄에는 차가워진 손에 닿는 캔 음료의 따뜻함을, 여름에는 살랑살랑 흩날리던 벚꽃잎들을, 가을에는 매미가 울던 저녁에 먹던 아이스크림이, 겨울엔 내 발 아래에서 바스락거리던 낙엽들을……. 이런저런 것들을 그리워하다 보면 또 갑자기 사라졌던 엄마가, 이제는 목소리도 기억나지 않는 엄마가 나에게 소리 없이 말을 건네오려고 한다. 이럴 땐 어떻게 해야만 엄마가 이곳에 다시 오래 머무를까. 나는 계속 고민하다 또 엄마를 보내버린다. 그렇게 엄마를 여러 번 보내고 나서야 다짐하게 되었다. 이제는 정말 잊어야 할 때라고, 목소리뿐만 아니라 얼굴도 잊어버리자고. 그렇게 엄마를 점점 잊어야겠다고 다짐했을 때 즈음, 엄마가 우리 집 문 앞에 서 있었다. 갑자기 사라진 엄마가 갑자기 나타난 것이다.

   눈이 마주친 엄마와 나는 서로를 말없이 쳐다보았다. 낡은 셔츠, 색이 바랜 정장 바지, 끈이 다 해진 가방 등 자주 보던 옷차림인데, 전체적으로 보는 엄마의 모습은 어쩐지 내 안에 있는 엄마와 다른 사람 같았다. 어색했다. 그럼에도 무언가 울컥하고 튀어나오는 기분에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다시 엄마를 쳐다봤을 때, 엄마는 내 이름을 말했다.

   “동아야.”

   잊어버렸던 엄마의 목소리가 다시 떠올랐다. 내가 알던 그 목소리. 진짜 엄마구나. 엄마는 가만히 서 있던 내게 다가왔다. 그리고 나를 안고 등을 토닥였다. 나는 엄마에게 기대며 똑같이 팔을 뻗어 안았다. 그제야 눈물이 나오기 시작했다. 눈물은 부끄러운지도 모르고 내 눈에서 계속 흘러나왔다. 그동안 어디에 있었는지, 왜 사라졌는지, 어째서 다시 나타난 것인지, 그리고 사라진 시간 동안 내가 보고 싶기는 했는지. 묻고 싶은 건 너무 많았는데 막상 입 밖으로 나오는 것은 거친 숨밖에 없었다.

   엄마는 내가 진정할 수 있게끔 등을 연신 쓰다듬었다. 그리고는 내 얼굴을 바라보며 미처 흘러내리지 못하고 남아 있는 눈물을 닦아주었다. 그 손길이 너무 오랜만이라서 조금 어색했지만 싫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엄마는 나의 손을 잡았다. 나는 맞잡은 엄마와 내 손을 내려다보았다. 엄마 손에 있는 주름이 다 느껴지는 기분이었다. 그때 엄마가 물었다.

   “아빠는?”

   “아, 그, 아빠는…….”

   아빠는 예전에 작은 분식집을 운영했다. 그렇게 유명하지는 않았지만 자주 오는 단골이 많았다. 나는 학교가 끝나면 종종 아빠가 자주 머물러 있는 부엌 구석에 앉아 일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 그때의 아빠는 불의 열기에 뜨거워진 부엌에서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음식을 만들었는데, 그런 아빠가 짓던 뜨거운 미소를 좋아했었다. 그렇게 아빠를 보다가, 텔레비전을 보다가, 시간이 남으면 학교에서 준 숙제를 하고, 지쳐 잠에 들었다가 다시 일어나면, 분식집 운영이 끝난 지 오래인 늦은 저녁이었다. 그럼에도 부엌 불은 꺼지지 않았고 아빠는 여전히 음식을 만들고 있었다. 나는 빨리 집에 가고 싶어서 칭얼거렸지만, 아빠는 잠시만이라고 말하며 나를 보지도 않고 여전히 음식만 만들었다. 별것도 아닌 음식에 아빠는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그게 삶의 낙인 것처럼 굴었다. 그 별것도 아닌 음식이 아빠의 자존심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것이 문제였다.

   아빠는 새로운 맛을 만들어내겠다고 많은 시간을 썼다. 집에도 들어오지도 않고 가게에만 있거나, 간혹 집에 들어와도 잠만 잤다. 우리는 가족끼리의 시간을 잊어버린 채로 그렇게 살아갔다. 그렇게 새로운 맛을 만들고 출시했던 날, 사람들의 반응은 나쁘지 않았으나 열렬하지도 않았다. 아빠는 몇몇 사람들의 칭찬만이라도 만족했다. 하지만 어느 날 들은 손님의 한마디가 아빠의 인생을 뒤엎기 시작했다.

   “이거 달빛 떡볶이랑 맛이 똑같네요?”

   그날 아빠는 달빛 떡볶이를 검색했다. 연관검색어 옆에는 아빠가 만들었던 떡볶이와 같은 이름의 떡볶이가 쓰여 있었고, 수많은 사람이 적은 후기들이 있었다. 아빠는 그 글들을 하나하나 다 읽어봤다. 원래는 아빠에게 갔어야 할 관심과 칭찬들이 다른 곳을 빛내주고 있었다. 아빠는 그렇게 다른 곳으로 향한 글들을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내 잃어버린 시간들은 도대체 어디서 보상받을 수 있을까. 고작 떡볶이가, 그러나 아빠에게는 인생의 절반이었을 떡볶이가 아빠의 인생을 망쳐버린 것이다. 사람들은 아빠에게 달빛 떡볶이에 관해 이야기를 했고 그때마다 아빠는 본인의 억울함을 이야기했다. 사람들은 그 말에 집중하지 않았다. 아빠의 억울함은 점점 잊혀 갔다.

   결국 아빠는 본인의 것을 되찾기 위해 소송을 시작했다. 빚을 지면서까지 유명한 변호사를 고용했고 이기기 위해 노력을 다했다. 하지만 재판장에서 등장한 오랜 단골로 인해 아빠는 무너져버렸다. 오랜 시간 동안 아빠의 떡볶이를 맛보고 칭찬했던 그 단골은 달빛 떡볶이의 직원이었다. 아빠는 알 수 없는 감정에 휩싸여 자신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오는지, 누가 어떤 말을 하고 있는지,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고 있는 건지 모르는 채로 재판을 끝냈다. 결국 아빠는 자신의 것을 지켜내기는커녕, 오히려 레시피를 빼앗기고 빚만 남아 차갑게 식어버렸다.

 

   그 뒤부터 아빠는 계속 잠만 잤다. 작은 방에 쭈그려 누워 바닥과 하나가 된 것만 같이 잠만 잤다. 그런 아빠를 흔들어 깨워봐도 아빠는 미동도 없이 죽은 사람처럼 굴었다. 나는 그럴수록 더 아빠를 흔들어 깨우려고 했다. 엄마는 그런 나를 저지했다. 방 밖으로 데리고 나와 아빠를 건들지 말라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매번 아빠를 깨우기 위해 몸을 흔들었다. 그래도 아빠는 여전히 죽은 듯이 잠만 잤다.

   집에서 경제적으로 많은 지분을 차지하고 있던 아빠가 무너지자, 우리 가족도 동시에 무너져 버렸다. 살고 있던 곳에서 더 좁은 곳으로 이사하고, 엄마가 이른 아침에 나가서 밤늦게까지 일하고 들어와도 우리는 계속 가난했다. 먹을 것이 부족했고, 입는 옷은 점점 맞지 않게 됐으며,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추웠다. 게다가 원래 친했던 친구들은 점점 나를 피하는 듯했다. 결국 울음이 터진 나는 아빠의 몸을 흔들면서 소리쳤다.

   “왜 이렇게 살아야 해? 언제까지 여기서 살아야 해?”

   “…….”

   “아빠! 일어나!”

   “…….”

   “일어나라고!”

   나는 아빠의 꿈속까지 목소리가 닿도록 소리쳤지만, 아빠는 미동도 없었다. 그때 엄마가 황급히 달려왔다. 나는 엄마가 온 줄도 모르고 아빠의 몸을 흔들다가 밖으로 끌려 나왔다. 엄마는 나에게 화를 냈다.

   “너 왜 이래! 아빠 건들지 말라고 했잖아!”

   나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리지도 않을 만큼 크게 울었다. 그러자 엄마가 더 언성을 높였다.

   “왜 그러냐고 정말!”

   “아빠가 잠만 자고 일하러 안 나가잖아! 그거 때문에 나 너무……!”

   나는 엄마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내가 겪는 힘듦을 말하고 싶었다. 그런데 엄마가 얼굴을 찡그려서 그런 걸까? 예전보다 엄마의 주름이 더 깊어진 것 같았다. 눈물이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나는 숨을 헐떡이면서 달라진 엄마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엄마는 본인의 얼굴을 손으로 가리면서 말했다.

   “진짜 힘든데 왜 너까지 그러는 거야!”

   그러게, 엄마 힘들어 보이네……. 나보다 훨씬 힘들어 보이네……. 나는 그 뒤로 아빠를 깨우려고 하지 않았다. 엄마에게 소리치지도 화내지도 않고, 그냥 조용히 살았다.

   엄마가 새로운 직장을 얻은 후로부터 우리 가족은 그나마 안정을 찾기 시작했다. 엄마는 여전히 이른 아침에 집을 나섰지만 전보다는 덜 늦은 시간에 들어왔고, 충분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부족하지도 않은 식사를 했으며, 몸에 맞는 옷들을 그때그때 겨우 사서 입을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 그동안 나는 이 상황에서도 충분히 만족할 만큼 참을성을 길렀고, 엄마와 나는 어떻게든 일상 속에서 작은 행복들을 찾으려고 애썼다. 집에 아빠와 단둘이 있는 게 싫었던 나는 엄마가 퇴근할 때쯤 집 근처 정자에 앉아 엄마를 기다렸다, 엄마가 퇴근하면 대신 짐을 들고 같이 집에 갔다. 봄에는 흩날리는 벚꽃잎을 보며, 여름에는 가끔 슈퍼에서 아이스크림을 사 먹으며, 가을에는 낙엽들을 짓밟으며, 겨울에는 어쩌다 자판기에 있는 따뜻한 캔 음료를 사 먹으며 그 길을 걸었다. 그 시간 동안 나는 엄마에게 많은 이야기를 했고, 엄마는 그런 나의 말을 다 듣고 있다는 듯이 맞장구를 쳐줬다. 나와 엄마는 진한 유대감이 생기는 기분을 느꼈다, 아빠와 우리 사이에는 없는 그 유대감을.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와 다름없이 엄마와 같이 길을 걷고 있을 때, 엄마는 나에게 먹고 싶은 것이 있냐고 물었다.

   “딱히 없는데 왜?”

   “반찬이나 그런 거 다 떨어진 거 같길래 새로 해두려고.”

   “응, 그렇구나…….”

   “동아 너, 어묵볶음 좋아하잖아. 그거 해줄까?”

   “응!”

   엄마는 나에게 무슨 반찬을 해줄지 줄줄이 말했다. 먹기 싫은 몇 가지 반찬 때문에 싫은 티를 냈더니, 엄마는 건강하려면 먹어야 한다고 나를 타일렀다. 어차피 남겨 두면 언제 일어나는지 모를 아빠가 다 먹어버릴 테니 알았다고 했다. 반찬을 다 먹게 되면 엄마가 또 새로운 반찬을 해줄 테니까. 그날 엄마는 마트에서 나와 함께 장을 봤다. 반찬을 만들기 위한 재료를 담고, 혹시 모른다며 라면 몇 봉지와 내가 먹고 싶다고 한 과자들을 카트에 담았다. 나는 즐거웠다. 오랜만에 즐기는 군것질에 신이 나서 엄마를 제대로 쳐다보지 않았다. 엄마는 그때 어떤 표정을 짓고 있었을까.

   집에 돌아온 엄마는 늦게까지 반찬을 만들고 잠이 들었다. 나는 그런 엄마를 돕다가 중간에 잠들었다. 그래서 그런지, 원래는 엄마가 출근하기 직전에 잠에서 깼는데 그날은 조금 늦게 일어나서 지각까지 할 뻔했다. 그걸 제외하면 그날 하루는 다른 날과 비슷했다. 수업 시간에는 공부하다가, 점심시간에는 운동장에서 뛰어놀았으며, 하교하고 나서는 집에서 엄마가 해준 반찬들로 밥을 먹고, 공부를 할까 고민하다가 결국은 하지 않고 텔레비전만 보다가, 엄마가 올 시간이 됐을 때는 집 근처 정자에 앉아 엄마를 기다렸다. 그러나 원래라면 도착하고도 남았을 시간에 엄마가 오지 않았다. 나는 그런 엄마를 계속 기다리다가 지쳐, 집으로 돌아갔다. 집에서도 엄마를 기다리다가 전화를 걸었는데, 엄마는 받지 않았다. 여러 번 전화를 걸었는데도 받지 않는 건 여전했다. 나는 결국 잠에 들었다.

   다음 날, 엄마가 돌아오지도 않은 아침을 맞이했다. 평소처럼 일어나 씻은 나는 밥을 먹으려고 엄마가 해준 반찬들을 꺼냈다. 반찬은 마지막으로 먹었을 때보다 조금 줄어 있었다. 아빠가 먹은 모양이었다. 이러다가 엄마가 해준 반찬을 아빠에게 다 뺏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가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이 점점 실감이 났다. 나는 그 생각이 들자마자 냉장고에 있는 반찬을 전부 꺼냈다. 그리고 하나하나 다 먹어 치우기 시작했다. 밥이랑 같이 먹었다가는 전부 먹지 못할 것 같아서 그냥 반찬만 먹었다. 엄마가 더 이상 집에 돌아오지 않는 거라면, 결국은 이게 엄마가 해준 마지막 반찬이라면, 우리를 이렇게 만든, 엄마를 결국 집에서 나가게 만든 아빠에게 이 반찬들을 뺏기고 싶지 않았다. 어묵볶음을 먹고, 콩자반이 들어 있는 통을 들어 입 안으로 콩자반을 탈탈 털어 넣었다. 깻잎김치를 하나하나 떼어 먹다가 그냥 통째로 들어 한 번에 씹어 먹었다. 그렇게 먹기 싫던 멸치볶음과 시금치도 한입에 넣어 우걱우걱 씹어 먹었다. 나는 먹으면서 생각했다. 엄마는 당연한 존재가 아니었음을 왜 이제야 깨달았을까. 음식을 담던 엄마의 손길을, 반찬 재료를 고르던 엄마의 눈길을 나는 왜 자세히 살피지 않았던 걸까. 그때 엄마의 표정은 어땠는가. 마지막으로 집을 나서던 엄마는……. 그날 엄마의 반찬을 다 먹어 치우고 학교에 갔다. 그 많은 양을 견디지 못한 내 몸은 먹은 것을 전부 토해냈지만, 나는 그것이 또 아까워 토한 것들을 주워 담아 먹으려고 했다. 사람들은 그런 나를 말리고, 경멸하고, 피했지만, 멈추지 않았다. 엄마의 마지막을 오래오래 간직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돌아온 엄마는 내게 근황을 물었다.

   “어떻게 지냈어?”

   “그냥 잘 지냈어. 대학도 들어갔는데, 지금은 잠깐 휴학하고 생활비 벌려고 일하고 있어,”

   “그래? 우리 아들 졸업했을 때, 엄마가 옆에 있었어야 했는데…….”

   “괜찮아, 할머니가 와주셨었어. 게다가 그날은 졸업식 끝나고 친구들이랑 노느라 바빴어. 엄마가 있었어도 비슷했을 거야.”

   “그래도…….”

   “괜찮다니까. 그러지 말고 엄마, 나 배고픈데 밥해주면 안 돼?”

   “어? 그래그래. 오랜만에 엄마랑 같이 마트 갈까?”

   “좋지.”

   나와 엄마는 오랜만에 같이 마트로 갔다. 예전에 엄마랑 같이 갔던 곳으로 갈까 했는데, 그 마트는 망해서 그 자리에 다른 가게들이 들어서 있었다. 아쉬웠지만 다행히도 근처에 다른 마트가 있어, 그 마트를 가기로 했다. 엄마는 밥을 만들 재료들을 카트에 담았다. 나는 그런 엄마를 빤히 바라보았다. 엄마는 익숙한 손길로 카트에 재료를 담고, 카트를 끌며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장을 보고 계산을 해보니 종량제 봉투 두 개 양이 나왔다. 옛날 같았으면 내가 하나를 겨우 들고 나머지 하나는 엄마가 들어서 둘이 남은 손을 잡고 걸어갔을 텐데, 지금은 내가 두 개를 다 들고 엄마는 빈손으로 집까지 걸어갔다. 내 손은 짐을 들고 있느라 여유가 없어서 예전처럼 손을 잡고 걸을 수는 없었다. 차라리 그게 다행이었다. 아무리 엄마여도 너무 오랜만에 만나서 그런지 손까지 잡는 건 조금 어색하다고 느껴졌다. 그렇게 우리는 아무 말도 없이 걸었다.

   그러다 엄마를 기다렸던 그 정자에 도착했을 때, 나와 엄마는 약속한 듯 그 자리에서 멈춰 섰다. 나는 그 정자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엄마가 사라지고 나서도 종종 습관처럼 앉아 있었던 그 정자. 다 커서는 엄마를 잊으려고 쳐다보지도 않았다. 우리는 그 자리에 말없이 가만히 서 있었다. 그런 정적을 깬 건 엄마였다.

   “오랜만에 아이스크림 사 먹을까?”

   “…….”

   “저 슈퍼는 아직 남아 있길래…….”

   “좋아요.”

   우리는 슈퍼에 들러 아이스크림을 샀다. 예전에 좋아하던 팥 맛 아이스크림을 고를 줄 알았던 엄마는 멜론 맛 아이스크림을 골라 카운터에 내려놓았다. 그새 취향이 바뀌었네……. 나도 엄마를 따라 예전부터 좋아하는 아이스크림 말고 다른 아이스크림을 고르려다가, 다른 건 딱히 먹고 싶지 않을 거 같아서 맨날 먹던 캐러멜 맛 아이스크림을 골랐다. 우리는 정자에 자리를 잡아 앉았다. 가을인 지금 먹기에는 조금 쌀쌀한 날씨였지만 그냥 조용히 아이스크림의 포장지를 깠다. 오래된 슈퍼에서 팔던 아이스크림이라서 그런지 살짝 녹아 있었다. 우리는 아무런 대화도 나누지 않은 채로 아이스크림만 먹었다. 다 먹고 나서도 몇 분은 아무 말도 꺼내지 않았다. 사실 하고 싶은 말은 너무 많았는데 말하면 괜히 불편할까 싶어, 그냥 조용히 앉아 있었다. 그러다 엄마가 먼저 말을 꺼냈다.

   “엄마는 그동안 다른 세계에 가 있었어.”

   그곳은 지구가 아니었어. 일을 하려고 문을 열고 나서니 그곳에 도착했지. 갑자기 처음 보는 곳에 와 당황해 하니까 사람들이 나에게 도움을 줬어. 사람들은 처음 보는 나에게 매우 친절하게 대해줬지. 사실 알고 보니 이 사람들도 전부 본인이 원래 있던 곳에서 이곳으로 갑자기 와버린 사람들이었어. 나보다 먼저 온 사람들은 이미 모두 적응해서는 새로운 마을을 만들었대. 나는 그 마을에 살기만 하면 된다고 했지. 하지만 나는 동아 너를 두고 혼자서 이런 곳에서 살아가는 게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돌아가고 싶다고 했어. 그러나 사람들은 아직은 돌아갈 수 없다고 하더라. 돌아가고 싶은 사람들끼리 오래전부터 연구를 진행해 왔는데, 아직 돌아갈 방법을 찾지 못했대. 마을 사람들은 말했어, 이곳에 머물면 더 늙지도 않고, 여기에는 나쁜 마음을 가지는 사람도 없으니, 영원히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거라고. 손해 볼 것이 없는 조건이었지만 한편으로는 너의 생각이 계속 났어. 그래서 다시 살던 곳으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바로 돌아가기로 마음을 먹었어. 돌아갈 수 있을 때까지 나는 동아 너에게 어떤 말을 해줘야 할지, 또 어떤 것을 해줘야 할지 계속 생각했어. 그리고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그동안 너를 떠올리며 했던 생각들을 정리도 하지 못한 채 지구로 오게 되었어. 심지어 이미 다 큰 너를 보니 그 생각들은 떠오르지도 않더라. 그렇지만 이것 하나는 확실히 말해주고 싶어. 나는 네가 싫어서 사라진 게 아니라는 점을, 엄마는 여전히 동아 너를 사랑하고 있다는 점을.

   말이 끝나자마자 나는 엄마를 슬며시 바라보았다. 엄마의 올곧은 눈빛은 나를 똑바르게 향해 있었다. 만약 다른 사람이었다면 말도 안 되는 이야기하지 말라며 외면했겠지만, 나는 엄마의 진실한 눈빛을 알기 때문에 믿을 수 있었다. 나만이 엄마의 진심을 알아줄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는 그런 나를 보면서 살짝 웃어 보였다. 나의 믿음을 알아주는 기분이었다.

   집에 돌아와서는 엄마가 해주는 밥을 먹고 그동안 하지 못한 이야기를 나눴다.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그 학교에서 어떻게 생활했는지. 수능 때 혼자 도시락을 싸다가 늦을 뻔한 이야기와, 결국은 어떤 대학에 오게 되었는지. 엄마는 그런 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초반에는 미안하다는 말을 많이 했지만, 후반으로 가면 갈수록 미안하다는 말 대신 웃으면서 나의 말에 맞장구를 쳐주었다. 예전에 같이 손을 잡고 걸어가면서 대화를 나누던 그 시간이 떠올랐다. 그러다 엄마가 물었다.

   “아빠는 어떻든……?”

   아, 또 할 말을 잃었다. 나는 엄마의 질문에 제대로 된 대답을 못 하고 계속 얼버무렸다. 그런 엄마는 말했다.

   “동아야, 너 아직도 아빠 미워하는 거야?”

   “……아니.”

   “아빠 너무 미워하지 마.”

   “나 이제 진짜 안 미워해…….”

   “진짜?”

   “죽은 사람 미워해서 뭐해…….”

   “뭐?”

   “아빠 1년 전에 죽었어, 엄마.”

   나와 아빠는 엄마가 사라진 시간 동안 서로의 존재를 계속 무시했다. 아빠는 여전히 그 자리에 누워 있었고, 나는 그런 아빠를 보지 않으며 대부분 시간을 집 밖에서 보내려고 했다. 그렇게 아빠를 피해 집 밖으로 나오니, 돈도 없고 친구도 몇 없던 내가 할 수 있는 건 야자 시간에 학교 구석에 틀어박혀 공부만 하는 것이었다. 공부가 재미있지도 흥미롭지도 않았지만 그냥 집 밖을 서성거리려니 밖은 너무 춥고, 학교에서 그냥 잠만 자자니 심심하기도 하고 눈치도 보였다. 심지어는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래서 공부를 시작했더니 공부를 한 만큼 성적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살다 어느 날, 학교가 일찍 끝났던 날. 나는 다른 때와 다르게 집에 일찍 들어갔다. 그때 집에서 누군가 움직이는 소리가 났다. 집을 조심스럽게 들어가 보니 아빠가 밥을 먹고 있었다. 아빠는 본인이 직접 끓여 먹은 듯 냄비에 담긴 라면을 먹고 있었다. 아빠가 이렇게 움직이는 모습은 너무 오랜만이었다. 매번 내가 있을 때는 가만히 잠만 잤으면서, 내가 없을 때는 또 굶기는 싫어서 라면까지 끓여 먹는 모습에 나는 헛웃음만 나왔다. 엄마랑 내가 있을 땐 손 하나 까딱 움직이지도 못하는 척해서 우리를 본인이 자처한 바닥으로 같이 끌고 갔으면서, 그렇게 죽고 싶어 하는 것처럼 굴었던 주제에 뒤에서는 비겁하게 굶기 싫어서, 살고 싶어서 자리에서 일어난 것이지. 아빠가 우리가 없을 때 움직이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막상 아빠가 움직이는 꼴을 보니 화가 났다.

   “배는 고픈가 봐요, 아빠.”

   “…….”

   “라면도 다 끓여 드시고.”

   “…….”

   “라면도 끓여 드실 의지가 있었으면 우리를 이렇게까지 힘들게 만들면 안 됐죠.”

   “…….”

   “그렇게 움직일 줄 알았으면 최소한의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은 했어야죠.”

   “…….”

   “적어도 엄마가 집에 안 돌아올 만큼 최악의 상황은 만들면 안 됐죠, 아빠!”

   나는 아빠 앞에 있는 냄비를 들어 싱크대로 던졌다.

   “아빠는 이것도 먹을 자격 없어요. 드시고 싶으면 적어도 지금, 이 상황에 책임을 지세요. 돈을 벌어 오던, 엄마를 찾아 오던 해야 할 일을 하고 그때 드세요.”

   나는 그렇게 집 밖을 나왔다. 아, 뭘 해야 하지. 하고 싶었던 말을 다 뱉어냈지만 그렇다고 속이 시원하지도 않았다. 하릴없이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결국은 예전에 엄마를 기다리던 정자에 도착했다. 나는 정자에 앉아서 생각했다. 내가 괜히 이런 말을 한 걸까, 엄마. 감정이 격해져서 생각도 거치지 않고 막 화를 낸 거 같아. 하지만 그래도 언젠간 꺼냈어야 하는 말이었을 거야. 엄마도 그렇게 생각하지? 엄마는 당연하게도 답이 없었다.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정자에 있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갔을 때, 아빠는 여전히 누워 있었다. 나는 그런 아빠를 여느 때와 똑같이 무시하고는 잠에 들었다.

   그러다 다음 날 일어났더니 매번 똑같은 자리에 누워 있던 아빠가 안 보였다. 어제 내 말을 듣고 자극을 받은 건지, 아니면 깨달은 것이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아빠는 그날 이후로 누워 있는 모습보다는 깨어 있는 모습이 더 많았다. 그런 아빠의 모습에 진작 말할걸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아빠가 무엇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책임을 지려고 하는 것일 거라고 생각하면서 내 할 일을 했다.

   나는 그동안 계속 공부를 했다. 선생님은 그냥 지금 수시를 넣어서 대학에 가라고 했지만, 나는 더 노력하다 보면 정시로 더 좋은 대학에 갈 수 있을 것 같아서 수능 공부에 집중하기로 했다. 고등학교 3학년 동안 매일 아침 일찍 등교해서 밤늦게 하교했다. 주말에는 학교에 가듯 독서실을 갔고, 밤 늦게 들어간 집에서는 정말 잠만 잤던 것 같다. 그렇게 수능 당일, 나는 직접 만든 도시락을 들고 수능을 보러 갔다. 그날 수능을 보는 동안은 느낌이 아주 좋았다. 실수 하나 하지 않았다. 직접 차린 도시락은 맛이 좋았다. 그냥 모든 것이 좋은 느낌이었다. 이대로라면 나쁘지 않은 대학을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기분 좋은 발걸음으로 집으로 갔다. 집에 도착하니 나도 모르게 하고 있던 긴장이 풀렸다. 졸음이 몰려와서 바로 잠에 들었다. 그렇게 몇 시간이 지나고, 하늘이 까매진 시간이 돼서야 겨우 눈을 떴다. 나는 기지개를 켠 뒤 가방을 정리했다. 버릴 문제집들을 전부 문 앞에다 놔두고, 빈 도시락 통은 싱크대에 놔뒀다. 씻고 나머지들을 정리하려고 화장실 문을 연 순간, 무언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바닥에 물이 가득 고여 있었다. 그 물은 욕조를 꽉 채우다 못해 바닥으로 흘러넘치던 것이었다. 욕조 안에는 아빠가 누워 있었다. 아빠는 죽어 있었다.

   보통 자살하면 보험금이 나오지 않는다고 하지만, 정신적으로 아픈 사람의 경우에는 보험금이 나온다고 했다. 아빠는 지속해서 정신병원에 갔었고 그곳에서 처방해준 약을 먹었는데, 그 약 중에 하나가 자살 충동을 느끼게 하는 부작용을 가진 약이라고 했다. 아마도 그 약 때문에 아빠가 그런 선택을 했을 것이라고 했다. 나는 아빠의 장례식을 치르는 사흘 동안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아빠는 정말 끝까지 무책임하게 가는구나. 돈을 주면 뭐해, 자기 자식을 이기적이고 잔인한 사람으로 만들었는데. 사흘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몰랐다. 정신을 잠깐 잃어버린 듯했다. 아빠를 화장시키는 마지막 날, 영상으로 나오는 화장 장면을 나는 가만히 바라보았다. 아빠가 활활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살이 타고 뼈가 탔다. 아빠의 뜨거웠던 날들이 떠올랐다. 나는 그것들을 지켜보며, 이 모든 불행에 대해 끝까지 아빠 탓을 하고 싶었지만 결국은 나에게도 잘못이 있었다는 것을 인정해 버렸다. 내가 아빠를 외면해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이다. 나는 이제야 아빠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싶어졌지만, 아빠는 이미 듣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엄마는 더 이상 아빠에 대한 질문을 하지 않았다. 우리는 예전과 마찬가지로 행동했다. 어렸을 때처럼 같이 누워 잠을 청했다. 엄마는 하늘을 쳐다보면서 누웠다가 다시 나를 등지는 자세로 바꿔 누웠다. 나는 그런 엄마의 뒤통수를 바라보았다.

   “엄마.”

   “응.”

   “엄마.”

   “응.”

   “이제 계속 여기서 사는 거야?”

   “아마도…….”

   “응…….”

   예전 엄마의 뒤통수에는 흰머리가 조금 나 있었는데, 지금은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그 세계에서 엄마는 하나도 힘들지 않았나 보다. 우리 가족이 그 세계에 살았더라면 아주 행복했겠지. 그랬더라면 우리 가족은…….

   알람 소리에 잠에서 깨니 옆에는 엄마가 없었다. 나는 이불을 정리하고 아침 먹을 준비를 했다. 냉장고를 열어 보니 엄마가 해줬던 반찬들이 가득했다. 그 반찬들을 꺼내 식탁 위에 올려 두었다. 그리고 식탁에 앉아 밥을 먹었다. 예전에 어린 마음에 한 이기적인 행동이 갑작스럽게 떠올랐다. 그때, 내가 다 먹지 말고 아빠가 먹을 반찬을 조금 남겨 둘 걸 그랬다. 어차피 억지로 먹어서 다 토해버렸는데, 그때는 정말 왜 그랬을까.

   식사가 끝나고 밥그릇을 싱크대에 담았다. 설거지는 미루고 싶어서 그냥 바로 일터로 나갈 준비를 했다. 나는 나가기 전에 서랍장을 잠깐 봤다. 아빠의 보험금이 들어 있는 통장을 숨겨 둔 서랍장이었다. 지금 그 안에는 아마도 통장이 없을 것이다. 엄마는 이제 아무도 불행하지 않은 그 세상으로 잘 갔겠지? 나는 모든 것을 다 털어낸 기분을 느끼며 집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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