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
햇볕이 오래 앉아
뜨거운 벤치
공원의 둘레를 따라
눌어붙은 시간이
걸음마다 찐득거린다
쉬기에도 걷기에도
적당하지 않아서
한 점의 그늘을 찾아
시곗바늘처럼
서성거리는 오후
저마다의 이유로
구름을 떠올려 보는 사람들 덕에
오늘도 구름은 떠 있다
마치 신기루, 찰랑거리는 빛의 거짓말같이
보란 듯이 떠 있다
천천히
옆으로
밀려가는
우연히 아름다운 우연
구름을
몇 마디 말로 퍼 담아 보지만
무슨 말을 꺼내도 그건
뜬구름 잡는 소리
형상을 견디지 못하는
한 스쿱의 아이스크림처럼
혀 위에서 녹아내리는 말을
서둘러 삼킬 수밖에
저기
우리가 만든 많은 말들이
올올이 풀려가는 것을 보라
바람이 일으킨 잔물결에
흘러가는 것을 보라
파도처럼 흔들리며 서로를 덮고
허공의 실루엣이 끝없이 흩어지는 것을
보고
어떤 말도 붙이지 말아라
혀끝에 끈적이는
진실하지만
진실 아닌 그 어떤 말도
하지 말아라
이런 말 빼고
그 어떤 말도
하지 말아라
보라
바람이 스친 자리마다
너덜거리는 상징의 넝마와
그 사이로 새어 나오는 빛을
한줄기의 침묵을
환상 교차로
우주로부터
우르르 풀려나와
한밤에 흐르는 낙타들은
존재도 부재도
문제 삼지 않고
행렬을 계속한다.
낙타의 나른한 눈꺼풀 아래서
그늘진 하늘에 눈곱이 별처럼 끼고
긴 눈썹이 부채질해대는 풍경은
유화처럼 빠르게 굳어버린다.
메마른 채로도 낙타는 흐른다.
한 모금의 질문도 머금지 않고
사막의 등줄기를 따라 흐른다.
제 자신을 헤아리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듯이.
사포 같은 밤하늘에서
갈려 나온 시간이
온 이마를 덮어도
기어코 별들은
빛의 도르래로
하루를 울컥울컥 퍼 올리는구나.
내일이면 다시 쏟아지고
뒤집어 반복될 하루하루를
허투루 쓴다, 삶이
단순히 시간에 불과한 것이었으면 좋겠어.
반복된 하루를 사는 것이 두렵지 않다면,
두렵지 않다는 사실마저 두렵지 않다면,
그렇다면 좋겠어.
갈 길이 훤히 내다보이는
황량한 미로, 그 위로
별들은 낯선 지도처럼 흔들리고
우리는 언제든 이 행렬을 멈출 수 있다,
이 사실이 문득 행렬을 멈춰 세운다.
우리는 길 잃은 척해 본다.
죽음으로 길게 이어진 터널 위에선
길을 잃지 않는 것을 알면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