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아
나는 파란 목도리를 두르고 서둘러 집 현관문을 열었다. 큰 소리가 날 줄 알았는데, 생각해 보니 우리 집은 가난해서 옆집처럼 전자 도어락을 사용하지 않았다. 우리 집은 열쇠가 구멍에 딱 맞은 후 돌려야 했다. 나는 문을 닫기 위해 주머니에서 집 열쇠를 꺼냈다. 하필이면 작은 열쇠 구멍이어서 휴대전화 플래시로 비췄다. 꼭두새벽이라 낮보다 더 조용히 닫았다. 다행히 코 골며 곤히 잠든 엄마를 열쇠 소리로 방해하진 않았나 보다. 만일 엄마의 코골이보다 더 컸다면 나를 미친 인간으로 생각할 것이 분명했다.
나는 등산길과 비슷한 가파른 언덕을 내려갔다. 항상 여길 내려갈 때마다 군데군데 있는 작은 돌을 밟지 않으려고 했다. 언제는 그 돌을 밟았더니 엉덩방아를 찧진 않았지만, 앞으로 굴러갈까 봐 종아리에 긴장을 늦춰선 안 됐다. 그렇게 한참 땅에만 신경 쓰다가 고개를 들면 신호등이 보였다. 아직 빨간불이었다. 원래 이 시간에는 술에 잔뜩 취한 채 무단 횡단하는 아저씨들이 있었다. 넥타이는 풀려서 목에 매달고 있었다. 흰 셔츠엔 빨간 입술 자국이 훤히 드러나 보였던 그들이 웬일로 오늘은 보이지 않았다. 사실은 그냥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 컸다. 그 아저씨들은 우리에게 자칫하면 이년 이놈아, 하고 시비를 건 적이 있었다. 그렇다 해서 원구와 아리아 천을 보러 가면 한낮에는 절대 가지 않았다. 무조건 저녁에 갔다. 횡단을 건너면 반대편 신호등 옆에 친구 역할인 듯 서 있는 전봇대가 있었다. 손만 대면 옆으로 쓰러질 것처럼 보였다. 볼 때마다 아저씨들은 전봇대를 잡고 밑에 토를 수십 번 하거나 친구라도 하고 싶었던 것인지 기대고 잤다. 원구는 신호등을 지나치면서 겁을 잔뜩 먹은 채로 새끼 원숭이처럼 내 옆에 달라붙었다. 나까지 무서워서 서로를 껴안고 걸어갔다. 그렇게 돌계단을 조금만 올라가면 바로 하천이 보였다. 물 안에서 요정이 사는 게 보였다. 물론 손전등을 비추면 얇고 기다란 물고기 여러 마리가 무리 지어 다니는 걸 본 것이지만, 원구는 그걸 보고 ‘아리아’라고 칭했다. 나는 참나, 하며 어이없는 듯한 목소리로 대체 그게 뭐냐고 물었다. 원구는 작은 손가락으로 물고기를 가리키며 당당하게 말했다.
“요정! 그것도 몰라?”
나는 고개를 옆으로 내리며 의아해했다. 원구는 답답했는지 손으로 새가 날아가는 시뮬레이션을 했다. 그러곤 아니든 맞든 ‘아리아’라는 단어가 예뻐서 그렇게 지었다고 말을 덧붙였다. 나는 원구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아리아를 찾아서 손전등을 비추며 놀았다. 하루도 빠짐없이 엄마 몰래 원구를 데리고 나갔다. 내 기억 속에 원구와 세상 즐거웠던 적이 이뿐만은 아니었다. 원구가 물고기 그려진 필통을 가지고 싶다고 말했을 때 나는 문방구에 가서 훔쳤던 적도 있었다. 그곳에는 내가 좋아하는 햄스터 인형도 팔았다. 같이 훔치고 싶단 생각은 들었으나 들킬까 봐 가져가지 못했다. 아쉬웠어도 금방 괜찮아졌다. 집에 가서 필통을 건넸더니 원구는 나를 껴안고 고맙단 말을 했다. 원구의 부탁이라면 못 할 게 없었다.
나는 추위에 정신이 들었다. 신호가 바뀐 것을 보고 걸어가면서 주머니에 햄스터 사체를 꺼냈다. 털은 머리를 쓰다듬었던 방향대로 뻗어있었고 쥐똥만 한 분홍색 꼬리는 어느샌가 하얗게 변해 있었다. 신기하게도 울지 않았다. 나는 원구도 울음 따윈 없겠지, 라며 혼잣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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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 엄마는 아빠와 이혼했다. 아빠는 집에서 던질 수 있던 건 모두 던졌다. 술에 취해서, 할 짓거리가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매번 엄마와 나, 원구가 보기 싫다고 소리쳤다. 항상 술에 취하면 거실 바닥에 구부정한 허리로 앉아 먹태 구이를 뜯어 먹었다. 아빠는 빨래 널고 있는 엄마에게 바깥 주방일은 여자를 더 잘 뽑는다며 소리치곤 했다. 엄마는 차마 계속 들을 수 없었는지, 아빠를 대신해서 일을 나갔다. 이른 아침에 나갔다가 저녁 열두 시가 돼서야 집에 들어왔다. 원구와 나는 배고파서 어쩔 줄 몰라 한 적이 많았다. 결국 어린 원구에게 울지 말라는 내 말에도 울음을 참지 못했다. 그럴 때마다 허기를 달래기 위해 주방으로 발을 돌리고 싶었다. 방 안에는 원구의 울음소리보다 배에서 나는 허기진 소리가 가득 채웠다. 뒤이어 배고픔을 참을 수 없었던 원구가 내 소매를 끌어 잡아당겼다. 주방을 가려고 하면 아빠한테 수도 없이 때려 맞았지만, 한편으론 원구의 허기를 달랠 수 있다고 생각했기에 문을 열고 나갔다.
조금 전까지 티브이를 보던 아빠가 온데간데없었다. 그 틈을 타 냉장고로 향했다. 처음으로 아빠가 사라졌다는 마음에 기대하며 냉장고 손잡이를 활짝 잡아당겼다. 빈 페트병이 2번째 칸까지 널브러져 있었고 맨 위 칸에는 먹다 남은 순대가 투명 그릇에 담겨 있었다. 옆에도 다른 반찬이 있었는데, 키가 작은 탓에 잘 보이지 않았다. 원구에게 먹일 수 있는 음식이라곤 순대뿐이었다. 나는 식탁 의자를 끙끙대며 냉장고 앞까지 끌고 왔다. 짧고 가느다란 두 다리를 성인 의자에 올리는 일은 쉽지 않았다. 예전에 아빠가 코 골며 자고 있을 때 엄마는 조심스레 나를 의자에 앉힌 뒤 죽을 갖다줬다. 엄마가 없으면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나는 엄마나 아빠보다 의자 때문에 서러웠다. 발톱 안에 피멍이 든 것도 모르고 여러 번 힘껏 발로 찼다. 의자가 날 보는 것처럼 느껴졌다. 눈알도 없는 물건이 감히 날 얕보는 것 같았다.
한참 동안 의자에 화풀이하다가, 문밖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나는 원구의 귀를 막기 위해 서둘러 방으로 갔다. 여러 사람인 것 같았다. 분명 엄마는 아니었다. 처음 겪는 일이었다. 원구의 심장 소리는 윗집 소음보다 왠지 더 크게 들렸다. 나는 원구에게 옷장에 숨어 있으라고 말했다. 원구는 손을 떨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낡아서 반쯤 떨어져 있는 문을 들고 힘겹게 끼워서 닫았다. 다시 방을 나오는 순간 누군가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경찰인데, 문 안 여시면 저희가 들어갈 거예요.”
나는 곧장 문을 향해 달려갔다. 마치 듬직한 구원자가 구하러 온 것 같았다. 나는 냉장고를 열었을 때보다 더 힘차게 현관문 손잡이를 당겼다. 머리를 위로 묶은 여자가 놀란 듯 뒤로 물러났다. 그 뒤에 여자보다 덩치 큰 남자들이 날 향해 전기총을 들었다. 나를 한 번 보더니 급히 총을 숨겼다. 여 경찰은 내 눈높이와 맞추며 무릎을 꿇곤 아빠는 어디 있냐고 물었다. 나는 그 질문에 대답보다 원구가 옷장에 있다는 말부터 내뱉었다. 곧이어, 뒤에 서 있던 남자들은 집 안으로 들어왔다. 여 경찰은 제자리에서 일어나, 무전기를 입에 갖다 댔다.
“이미 도주했습니다. 며칠 전에 이혼은 했다고 하더라고요. 거실 서랍에 통장 가져가려고 온 거 맞는 것 같아요. 현재 아이 둘 발견했고, 집 안부터 보고 나서 하천 주변으로 수색 돌겠습니다.”
나는 엄마와 아빠의 이혼을 몰랐다. 이미 죄를 저지르고 엄마와 이혼까지 한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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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이른 아침부터 깃털이 튀어나온 두툼한 패딩을 입고 나갔다. 문을 열면서 들어오는 바람에는 어르신들이 입을 만한 패딩에서 날 법한 겨울 냄새가 났다. 엄마가 나간 뒤로 몇 분 더 잠을 자려 했지만, 추위뿐만 아니라 냄새로 정신을 차렸다. 나는 옆에서 곤히 자는 원구를 깨웠다. 원구는 어깨까지 덮었던 이불을 잡고 정수리까지 덮었다. 하지만 이대로 냅둬도 괜찮았다. 엄마가 만들어 놓고 간 된장찌개를 끓이기 시작하면, 맹수처럼 식탁에 앉았기 때문이다. 가스레인지 불 켜는 소리를 내자마자 원구는 냄새가 절로 나기도 전에, 주방으로 달려왔다. 원구는 냉장고에서 먹을 반찬을 꺼냈다. 항상 반찬 뚜껑을 열고 무언갈 관찰했다. 엊그제에 같이 담근 김치도 유심히 살폈다. 그러곤 밥 위에 어느 반찬이든 올려 먹었다. 나는 원구의 행동을 보고 이상한 애로 생각하지 않았다. 이상하다고 생각하면 더 이상했다. 나도 그랬으니까. 엄마가 새벽에 된장찌개를 만들고 뚜껑을 덮어 둔 채 보온했다는 걸 알고 있음에도 매번 살폈다. 혹시라도 상했으면 어쩌지, 하는 생각에 본 것이었다. 엄마를 믿지 못하는 게 아니었다. 그저 습관일 뿐이었다. 아마 된장찌개가 상했더라면, 나는 찌개에 들어간 모든 재료를 탓했을 것이다.
나는 원구 앞에 국그릇을 뒀다. 곧바로 원구와 마주 앉으며 말했다.
“다음 주 주말에 햄스터 들어오는 거 안 까먹었지?”
“벌써? 얼마에?”
“몰라. 한 사천 원에서 육천 원 정도 하겠지.”
원구는 입을 쩍 벌렸다. 입안에 잘게 씹힌 두부가 곧 밖으로 흘러나올 것 같았다. 나는 엄마 몰래 사 오자고 제안했다. 원구는 고민하는 듯해 보이더니, 금세 욕이라도 나올 것만 같은 표정으로 나를 째려봤다.
“너무 비싸. 차라리 그 돈으로 순대 사 먹겠다.”
“뭐야. 난 또 뭐라고.”
나는 원구 말에 조금은 동의했다. 어쩌면 엄마가 차린 순대 가게에서 사 먹으면, 최소한 돈 낭비는 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엄마는 이혼하기 전부터 가게를 차렸다. 이름은 그저 ‘순대’였다. ‘순대’라는 단어가 간판 중간에 붙어 있고 밤이 되면 파란 불이 빛났다. 나는 엄마한테 왜 이름을 단순하게 지었냐고 물었다. 엄마는 특별한 이유가 없다고 했다. 그저 단순한 게 좋아서, 차라리 이름도 단순하게 지어야 세대에 맞게 살아갈 것 같다고 말했다. 나는 처음에 이해하지 못했다. 팔자 주름, 눈웃음 주름이 보였던 엄마의 세대는 단순함이 아니라 모든 게 처음이었던 것이 아닐까 싶었다. 바로 옆에 붙어 있는 가게와 맞은 편에 자리한 가게의 이름은 전부 특별했다. ‘이상한 나라 엘리스가 먹는 샐러드’라든지 따옴표만 적어놓고 카페인 곳이 있었다. 나와 원구는 이곳에 전혀 가지 않았다. 배를 채울 목적이 아니라면 돈을 쓰지 않았다. 엄마가 순대를 팔아도 다른 곳처럼 넉넉하게 돈을 벌 능력이 없었다. 그런 능력이 없는데도 나는 햄스터를 키우고 싶었다. 한 달 전에 고등학교 입학을 기념으로 엄마는 나에게 이만 원을 건넸다. 그동안 햄스터를 키울 여건은 충분했다. 시장에서 파는 강아지와 고양이의 가격과는 달랐다. 곁에 원구만 있어도 괜찮았지만, 어떨 때면 집에서 가장이기에 외로움이 없을 수 없었다. 고독을 달래줄 동물은 싸게 파는 햄스터가 그나마 나았다. 이번 할인점에 처음으로 들어오는 동물은 햄스터였다. 나는 주체하지 못하는 기쁨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뻔히 속내를 보인다면, 원구는 조곤조곤히 내 말을 씹어 먹었을 것이다.
주말마다 쉬는 엄마는 낮잠까지 잘 기세였다. 거실 한 가운데에 두꺼운 이불을 깔고 그 위에 누워 코 골며 자고 있었다. 나는 동전 지갑에서 이만 원을 꺼냈다. 조심스레 거실 서랍 위에 동전 지갑을 두고 집 밖을 나섰다. 원구는 내 뒤를 따라 나왔다. 할인점은 순대 가게에서 열 걸음 채 되지 않았다. 오늘따라 그곳에 사람이 몰렸다. 입구로 들어가면 쌓여있던 장바구니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침을 삼키며 원구의 소매를 잡고 들어갔다. 할인점은 1층뿐이었다. 층수를 매길 것도 아니었다. 원래라면 가족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네 명 정도밖에 오지 않았는데, 오늘은 유명인이라도 왔나 싶었다. 가는 동안에도 많은 사람이 카트를 몰고 다니거나 장바구니로 치고 가거나 길을 막기도 했다. 나는 원구의 소매를 놓치지 않고 걸었다. 그렇게 가다가 ‘동물가게: 빛 물고기와 햄스터가 있어요!’라는 문구가 적힌 팻말을 봤다. 원구는 햄스터보다 빛 물고기라는 글에 먼저 반응했다.
“아리아? 사람들이 몰려든 이유가 있네.”
원구는 말하면서도 아기 같은 웃음을 냈다. 나는 팻말을 보고 빠른 걸음으로 지나갔다. 금세 도착한 곳에는 햄스터 유리장이 눈앞에 보였다. 햄스터를 보러온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그 옆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사람들 사이에 빈틈이라곤 어린이가 게걸음으로 지나다니는 공간뿐이었다. 오히려 저 수많은 사람이 햄스터를 사러 오지 않았다는 것에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여유롭게 골라도 먼저 채가는 사람이 없으니까. 나는 허리를 구부리고 유리장 안에 있는 작은 집을 섬세히 쳐다봤다. 아직 태어나고 덜자란 새끼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자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에 이를 꽉 깨물었다. 나는 원구에게도 보여주고 싶단 생각에 뒤를 돌았다.
원구가 보이지 않았다. 원구야, 라고 말하면서 근처를 둘러봤다. 빛 물고기 유리장 앞까지 비집고 들어갔다. 이곳 말고도 원구의 흔적이라곤 찾을 수 없었다. 여느 때보다 심장 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 없던 수전증까지 생긴 것처럼 손을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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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구의 사진이 없는 종이를 전봇대에 붙이고 나서 열흘이 지났다. 엄마는 이불 안에서 며칠을 나오지 않았다. 원구가 실종되고 나서 다음 날부터 가게를 영업하지 않았다. 물론 원구의 실종이 기사화가 됐지만, 사회에 큰 이슈화는 되지 않았다. 내게 그보다 삶에서 불행을 느낀 것은 따로 있었다. 엄마가 가게 문에 영업하지 않는다는 글을 대문짝만하게 써 논 후에 모르는 번호로 문자나 전화가 수도 없이 왔다. 그러나 아예 휴대전화 전원을 끌 수 없었다. 혹시라도 신고가 들어올 수 있었기에 작은 희망이라도 품었다.
나는 꼼짝 없이 누워 있던 엄마에게 막 끓인 된장찌개와 숟가락을 옆에 뒀다. 그러곤 다시 주방을 향했다. 원구와 함께 밥 먹었던 식탁을 쓸어 만졌다. 원구에게서 며칠 동안이라도 저 멀리 여행 갔다고 문자가 왔으면, 차라리 불안에 지친 엄마 얼굴을 보고 갔다며 안부 전화가 왔으면 했다. 생각하고 있던 와중에도 주머니에서 벨이 울렸다. 더 참을 수 없었다. 나는 휴대전화를 꺼내 욕이라도 당장 퍼부을 준비 했다. 이번엔 모르는 전화번호가 아니었다. 나는 갑작스레 떨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급히 여보세요, 라며 전화를 받았다. 신고했을 당시에 수사를 맡게 되었다는 형사의 목소리였다.
“원구 찾았는데…….”
형사는 처음 만났을 때보다 뭔가 풀이 죽은 듯 말했다. 곧이어, 사체로 발견되었다고 덧붙였다. 나는 잠시 말문이 막힌 채로 누워 있는 엄마를 쳐다봤다. 원구의 성만 말했을 뿐인데 엄마는 말린 대추처럼 앙상해진 몸을 이끌고 벌떡 일어났다. 그동안 내준 밥을 먹지 않아서 그런지, 침 흘릴 것처럼 입을 벌려놓고 눈에는 빛이라곤 보이지 않았다. 나는 형사의 말이 들려오는 대도 말하지 않고 엄마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엄마의 두 손을 움켜잡았다. 손등에는 상처가 보였다. 마치 그 자국은 지도에 그려진 나라 모양 같았다. 또 열 손가락 전부 끝에 굳은살이 보였다. 나는 두 손을 움켜잡은 상태로 말했다.
“옛날에 원구랑 나 어렸을 때 있잖아……, 엄마 몰래 밑에 있는 하천에 놀러 갔거든……. 근데 원구가 지금 거기 있대…….”
나도 모르게 울먹거렸다. 한편으로는 웃음도 났다. 곧장, 엄마는 문을 열고 맨발로 뛰쳐나갔다. 나는 뒤따라 나가기 전에 노랗게 변한 운동화와 패딩을 들고 챙겼다. 언덕길 바닥을 살피며 빠른 걸음으로 내려갔다. 내려가는 곳마다 빨간 무언가가 칠해져 있었다. 어느새 그곳에 집중해서 걷다 보면 돌계단 앞에서 끊겼다. 나는 서둘러 올라갔다. 구름 사이로 햇빛이 든 곳에는 원구가 있었다. 근처에 아는 얼굴은 보였지만, 워낙 사람들이 몰려 있었기에 눈을 찌푸리며 쳐다봤다. 다행히 원구는 그 틈 사이로 보였다. 나는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갔다. 형사는 나에게 다가오며 인사했다. 그 뒤에서 원구의 발바닥을 어루만지는 엄마는 목이 쉰 채로 흐느껴 울었다. 나는 인사를 무시하고 엄마에게 갔다. 원구가 하얀 천으로 덮여 있었다. 그래서 머리카락조차 보이지 않았다. 몇 걸음 물러난 곳에서 봐도, 만져 보지 않아도 발은 차가워 보였다. 나는 엄마 등에 살포시 패딩을 얹었다. 그러나 다른 한 손에 든 운동화는 그 옆에 두고 싶지 않았다. 왠지 모르게 우리 원구의 발이 추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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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졸업하고 나서도 엄마는 일을 나가지 않았다. 졸업하기 전에는 거실 바닥에 누워 있는 엄마에게 화내기도 했다. 그렇게 누워만 있으면 뭐 할 거냐고, 그런 식으로 살 거냐는 둥 모진 말을 섞어 가며 말했지만 움직일 기색도 보이지 않았다. 나 스스로도 엄마한테 말했던 말이 옳다고 생각했다. 겨울에는 난로와 핫팩으로 버텼다. 엄마가 일을 그만두고 나서 모아뒀던 돈이 금세 줄어들었다. 난로조차 쓰지 못했다. 며칠은 몸이 시려서 두꺼운 이불로 얼굴까지 덮어도 새벽마다 자주 깼다. 나는 이번에도 추위 때문에 잠을 설치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고깃집 아르바이트생이었다. 정직원들과 다르게 부족함이 많았다. 유리잔을 실수로 깨트리거나 손님이 먹을 고기를 태우면 거의 부모 욕을 들었다. 그럴 때마다 뒤에서 비웃음이 들리기도 했다. 그보다 더 나에게 수치스러운 것은 손바닥 화상 자국이었다. 주방에서 된장찌개를 끓여야 했기에, 가스레인지 위에 솥밥 그릇을 올려놓다가 손바닥에 불이 닿았다. 짧은 순간이었다. 그날따라 주방 가스레인지 불이 셌다. 찬물에 손을 두거나 연고를 발라도 붉게 올라온 자국은 사라지지 않았다. 나는 그 자국을 지워내고 싶어서 친구에게 화장품을 빌린 적도 있었다. 그러나 금방 지워졌다. 보기 싫어서 덧난 상처 껍질을 떼어내기도 했다. 그런 자국이 눈에 보이면 항상 뺨을 치는 것처럼, 손으로 내리쳤다. 아픔을 참고 핏줄이 터질 정도로 때렸다. 화상 자국이 날 비웃는 것 같았다.
나는 첫 월급으로 전기세부터 냈다. 무조건 겨울날 보일러를 켜야 했다. 얼어 죽는 것보다 열기에 죽는 게 오히려 낫다고 생각했다. 번 돈은 관리비로 절반이나 나갔다. 남은 돈으로 할인점에서 운동화 두 켤레를 새로 샀다. 그러곤 밖을 나가려 하자, 기억을 떠올렸다. 나는 다시 뒤돌았다. 엄마가 먹을 음식을 사야 했는데 잠깐 잊어버렸다. 음식만 파는 곳은 맨 뒤쪽까지 가야 했다. 장바구니를 들고 급히 뛰어갔다. 가다가 화분과 꽃을 따로 입구에 진열해 놓고 파는 가게도 있었다. 나는 그곳보다 옆 가게에 눈이 들어왔다. 팻말을 보고 다급했던 마음이 사라졌다.
그 일이 일어난 당일의 팻말이 아닌, 사람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폴리스라인(경찰통제선)으로 막아놨었다. 지금은 동물가게의 이름이 새롭게 바뀌었다. 나는 숨을 몰아쉬고 들어갔다. 안에는 예전과 달라진 게 없었다. 이번에는 햄스터 유리장 안을 둘러봤다. 물을 마시러 나온 햄스터는 단 한 마리도 없었다. 허리를 굽히고 실눈을 뜬 채 작은 집 구멍을 쳐다봤다. 톱밥 위에 손과 발을 쭈그리고 자는 새끼 햄스터가 있었다. 나는 직원을 부르려고 옆을 쳐다봤다. 어항 앞에 누군가 서 있었다. 멀뚱히 빛 물고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검은색 가죽 장갑을 낀 손에는 술을 들고 있었다. 그를 향해 최대한 발소리를 내지 않고 다가갔다. 그의 팔이 내 몸과 가까워졌을 때 소리쳤다.
“도주해서 안 잡힌 걸 다행으로 여겼어야지, 왜 죄 없는 애까지 죽였어? 대체 왜 그랬어…….”
나는 그의 어깨를 잡고 거세게 흔들던 동시에 울었다. 당장 목을 졸라 죽이고 싶단 생각까지 들었다. 직원이 진정하라고 말려도 참을 수 없었다. 그는 놀랐는지, 발을 헛딛어 뒤로 넘어졌다. 그제야 내가 봤던 얼굴이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나는 그의 겁먹은 표정에 죄송하단 말을 고개 숙여 반복했다.
뒷산에서 소쩍새 울음소리가 들렸다. 반찬을 들고 겨우 현관문을 열었다. 자연스레 등이 켜졌다. 나는 손에 든 작은 상자를 봤다. 그 안에는 새끼 햄스터가 구석에 등을 대고 있었다. 수염이 마구 움직이면서 허공에 코를 내밀고 냄새를 맡았다. 혹여나 눈부실까 봐, 손으로 빛을 가렸다. 나는 주방 전등을 켜고 나서 벽걸이 시계를 봤다. 밤 열두 시에서 조금 지났다. 식탁에 상자를 올려놓고 거실에서 이미 잠든 엄마에게 갔다. 거실 안은 생각보다 더 따뜻했다. 거의 온돌 찜질방에서 몸을 데우는 정도의 적정한 온도였다. 엄마 옆에는 라면을 끓여 먹었던 양은 냄비와 받침대 역할인 공책, 김치를 먹었는지 고춧가루가 묻은 그릇이 놓여 있었다. 나는 그릇과 냄비를 치우려고 발꿈치를 들고 다가갔다. 순간 엄마는 안 하던 잠꼬대를 했다. 나는 놀라서 몸을 움찔했다. 급히 거실에서 나와, 공책은 상자 옆에 두고 나머지는 싱크대에 뒀다. 그러곤 의자에 앉았다. 한 번도 보지 못했던 공책이었다. 나는 엄마가 일기라도 써놨는지 궁금했다. 단순히 살아온 흔적을 남겼을 것 같았다. 나는 한 장 넘겼다.
용서할 수 없지만 미워할 수 없는 딸을 대하는 법.
첫 줄에 쓰여 있었던 이 문장은 한두 개가 아니었다. 뒷장에는 썼다가 지운 흔적도 보였다. 그 아래 줄에는 어디서 봤는지 모를 정신과 전화번호가 적혀 있었다. 나는 뒤에 무언가 더 있을 것 같단 생각에 계속 넘겼다. 마지막 장까지 넘기다가 찢어진 종이가 붙어 있었다. 마치 물에 담갔다가 말린 것 같은 종이를 풀로 붙인 것 같았다. 그곳에는 분홍색 색연필로 ‘누나 햄스터 사주면 고맙습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공책을 덮고 눈을 질끈 감았다. 골똘히 생각하는 것보다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다. 나는 내 목을 졸랐다. 침을 삼킬 수 없을 정도로 목 가운데를 더 세게 눌렀다. 얼굴 전체에는 피가 통하지 않는 것처럼 열이 올랐다. 숨통이 끊기기 직전까지 졸랐더니 공책이 흐릿하게 보였다. 손을 풀고 기침을 여러 번 했다. 나는 목을 조르는 순간에도 화만 났다.
그날,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신고하고 나서 경찰서에 갔다. 엄마는 경찰이랑 마주 앉아서 얘기했고 나는 따로 담당 형사를 만났다. 비슷하게 마주 앉아서 대화했다. 말을 늘어놓거나 무관심의 태도가 전혀 보이지 않았던 형사는 나에게 사진 한 장을 내밀며 말했다.
“손에 술 들고 있는 남자 보이제? 카메라에 찍혔는데, 눈지 아나?”
대놓고 찍힌 것이 참 이상하다며 말을 이었다. 나는 도주범이요, 라고 대답했다. 형사는 의자에 등을 붙이며 팔짱 꼈다.
“네 아빠란 사람이 참…… 그제?”
한숨이 절로 나오던 형사는 나를 불쌍히 여기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미동도 없이 사진만 뚫어져라 쳐다봤다. 사실 형사의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 원구는 아빠보다 나를 더 증오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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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햄스터만 데려오지 않았다. 가게에서 사 온 2층 형식의 집과 쳇바퀴, 화장실과 간식도 있었기에 키울 준비를 끝냈다. 새로운 집에 들어간 햄스터는 아직 익숙하지 않은 듯해 보였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서 쳇바퀴 위에 올라갔다. 금세 적응한 것 같았다. 나는 그런 햄스터에게 딱히 뭐라고 부르기 싫었다. 생각나는 이름도 없고 흔히 쓰는 이름은 더더욱 부르기 싫었다. 의미 없는 이름을 만들어 준다는 것은 고유의 단순함과 특별함을 짓밟는 행위일 뿐이었다. 나는 이름을 지어주지 않고 햄스터에게 밀웜을 내밀었다. 물론 살아있는 밀웜은 아니었다. 만약 숨이 붙어 있는 생물체라면 꼼지락거리며 어떻게든 손가락 위에서 기어가려고 애쓰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었을 것이다. 볶아서 죽인 밀웜은 일자로 굳어서 햄스터가 들고 먹기에 좋았다. 햄스터는 냄새를 맡기도 전에 먹어 치웠다. 새끼라 해도 못 먹는 음식이 없었다. 모양 별로 다양한 사료와 밀웜을 섞어서 주면 그릇을 깨끗이 비웠다. 사실 사료만 골라내서 볼주머니에 넣었던 것이었다. 나는 또다시 밀웜을 주면서 조심스레 손가락으로 머리를 쓰다듬었다. 간식에 집중했는지 손가락에는 눈길조차 없었다. 들고 먹던 햄스터가 손가락을 보더니 양쪽 팔을 번쩍 들고 소리를 냈다. 순간적으로 손가락을 접었다. 앞니를 드러내고 눈은 화난 듯 보였다. 나는 그 모습에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턱 밑에 볼록하게 무언가 나 있었다. 위에서 봤을 땐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잘못 본 건가 싶어서 다시 손가락을 폈다. 그러자 햄스터는 똑같이 성질을 냈다. 턱 밑에 뾰루지 같은 염증이 보였다. 처음 데리고 온 날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는데 말이다. 나는 케이지를 통째로 들고 밖을 나갔다. 근처에 동물병원이 없었다. 버스를 타고 시내까지 나가야만 했다. 나는 정류장에 도착한 버스를 보고 언덕길을 뛰어 내려갔다. 버스 기사가 나를 봤는지, 그대로 멈춰 있었다. 타자마자 움직인 버스 안에서 빈자리를 찾아 앉았다. 기모가 있는 양털 후리스 안에 브래지어만 입어도 금방 땀이 났다. 손으로 부채질하면서 케이지를 봤다. 햄스터는 작은 집에 들어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동물병원은 생각했던 것보다 멀지 않았다. 동물병원 입구 앞에 버스정류장이 있었다. 곧바로 내렸다. 고민할 틈도 없이 병원에 들어갔다. 나 말고 다른 손님이 한 명도 없었다. 그 덕에 기다리지 않고 진료실로 들어갈 수 있었다. 진료방에 앉아 있던 의사가 햄스터를 꺼내 봐도 되겠냐고 물었다. 나는 새끼니까 살살 꺼내 달라고 부탁했다. 의사는 작은 집을 잡아 올리더니 한 손으로 햄스터를 잡아 꺼냈다. 저항하지 못하도록 뒤집었다. 아등바등하던 햄스터를 보니, 의사한테는 부질없는 행동이라고 생각했다. 의사는 햄스터 턱에 난 뾰루지를 만지며 한숨을 내쉬었다.
“혹이네요.”
햄스터를 다시 케이지 안으로 놓아준 뒤 엑스레이를 찍어야 할 것 같다며 말을 이었다. 나는 더듬거리면서 말했다.
“혹시 그…… 얼마 정도…….”
의사는 약값보다 조금 더 든다고 말했다. 고작 사람 입 크기만 한 햄스터여도 약값이면 팔천 원이나 나올 거라 예상했다. 그렇다면 엑스레이 검사는 돈 낭비였다. 나는 혹이 왜 났는지 물어보고 싶지 않았다. 애초에 동물가게에서 산 게 잘못이었다. 급히 의사에게 다른 질문을 했다.
“약 먹고 어느 정도는 살 수 있는지…….”
“새끼라서 약으로 버틸 수 있을진 두고 봐야 하고요. 보통 혹이 생기면 바로 와야 하는데, 지금 혹을 봐서는 조금 오래된 것 같아요. 보호자께서 수술하지 않겠다고 하는 이상, 가만히 두면 혹이 커지면서 목구멍을 누를 수도 있어요. 그렇게 되면 혹에 차 있는 물질 때문에 감염돼서 일찍 죽게 될 거예요. 일단 수술 진행 어려우시면, 약이라도 처방해 드릴 테니까 너무 그렇게 걱정하지 마세요.”
나는 감사하다는 말과 동시에 애써 웃었다. 진료비와 약값은 하루에 나가는 비용보다 훨씬 넘었다. 밖을 나오려던 참에도 오직 돈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가만 생각해 보니 햄스터는 내 인생에 악 덩어리일 뿐이었다.
엄마는 다시 순대 가게를 열었다. 햄스터에게 병이 생겼다는 말을 한 뒤로부터 일 나가기 시작했다. 나는 햄스터에게 병이 생겼다는 이유만으로 엄마가 변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새 운동화를 신고 나간 걸 보면, 상담하고 나서 나를 용서한 것 같았다.
나는 고깃집을 그만뒀다. 그만둔 것도 아니었다. 잘렸다. 손에 오백 원 동전만 한 흉터를 보면 볼수록 일하러 들어가기도 전에 불쾌했다. 나는 일하는 동안 흉터에만 신경 썼다. 고기를 세 번이나 태워버렸다. 심지어 정직원이 씻어 놨던 술잔들을 옮기다가 바닥에 깨트렸다. 정직원들은 한숨과 욕을 섞으며 눈치를 줬지만, 점장은 괜찮다며 곳곳에 널린 유리 조각들을 태연하게 쓸었다. 그 순간에도 화를 참을 수 없었다. 발 앞에 떨어진 유리 조각을 들고 흉터를 그었다. 점장은 바닥에 피가 묻은 것을 보고 나에게 다가왔다. 옆에 있던 정직원에게 소리치며 약을 갖다 달라고 했다. 유일하게 나를 봐줄 수 있는 사람은 점장이었다. 그런 사람이 나에게 연고를 발라주면서 그만두라고 말했다. 나는 주방 신발을 신은 채로 나왔다. 한편으로는 해방된 기분이 들었다. 대학을 다니지 못해도 학생이 된 것 같았다. 걷는 중에도, 생활비나 집 관리비는 엄마가 낼 수 있단 생각에 따로 걱정하지 않았다. 나는 집 문을 열고 들어갔다. 예전처럼 좁은 신발장에 운동화가 보이지 않았다. 드디어 전처럼 지낼 수 있단 희망을 조금이나마 가졌다. 나는 거실에 둔 케이지 앞으로 다가갔다. 작은 집 안에서 몸을 숨기고 자야 할 햄스터가 집 앞에 누워 있었다. 케이지 문을 열고 햄스터를 들었다. 서서히 눈을 뜨더니 코로 숨만 쉬고 있었다. 몸은 무말랭이처럼 허리가 구부정했다. 일어설 힘도 없는지, 억지로 발을 땅에 세우자마자 옆으로 쓰러졌다. 나는 처방받은 약을 물에 타서 먹였다. 정해진 양보다 더 많이 먹였다. 숟가락에 담긴 물이 작은 몸에 다 들어갈 생각을 하니, 오히려 배에 물이 차서 죽을 것 같았다. 햄스터는 먹다 말고 입에서 노란 액체를 내뱉었다. 나는 순간적으로 멈췄다. 병원을 갔다 온 뒤로, 몸에 난 털이 비실 해 보였다. 나는 해바라기 씨를 까서 입에 갖다 댔다. 그렇게 잘 먹던 밀웜까지 말이다. 반응이 없자, 코에 갖다 대도 수염조차 움직이지 않았다. 햄스터는 눈을 뜬 채 숨을 쉬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추울까 봐 당장 보일러를 켰다. 곧이어 하얀 손수건으로 배만 덮고 불빛을 비췄다. 힘차게 일어섰으면 하는 마음에, 가만히 앉아서 지켜봤다.
고개를 들고 창밖을 봤다. 이미 노을이 졌다. 햄스터는 아까와 달라진 게 없었다. 햄스터 말고 달라진 것은 주변이 어두워진 것뿐이었다. 휴대전화 플래시를 비춘 곳에는 덮어주지 않았던 발이 눈에 띄었다. 원구가 떠올랐다. 나는 스스로 뺨을 가격했다. 몇 번을 때렸는지, 볼살이 뜨거웠다. 그러나 머릿속에 원구는 떠나질 않았다. 나는 화를 참다못해 비명까지 지르면서 주먹을 쥐고 머리를 때렸다. 뇌를 망가뜨리고 싶었다. 차라리 원구한테 가고 싶었다. 나는 소매로 눈물을 닦으며 다시 햄스터를 봤다. 손가락으로 숨만 붙어 있는 작은 콧구멍을 막았다. 다른 손가락으로 입을 벌리지 못하도록 막았다. 막으면서도 그만둬야 할 짓이라고 생각했다. 속으로 일 분을 세고 난 뒤에야 손가락을 뗐다. 나는 숨을 쉬는지 코에 손가락을 다시 갖다 댔다. 숨 쉬는 것이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긴장이 풀렸는지 콧물을 입에 머금으면서 말했다.
“진짜로…… 내가 진짜 미안해.”
나는 화덕처럼 바닥이 뜨거워도 손수건을 치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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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햄스터 사체를 들고 ‘아리아 천’으로 왔다. 옆에는 산책로가 하천을 따라 이어져 있었다. 근처에 나무는 없었다. 고추바람만 부는 휑한 길이었다. 돌계단을 올라가다 보면 바람이 세게 불어서 눈이 내릴 것처럼 추웠다. 엄마는 한참 원구와 내가 어렸을 때 산책하려고 데려왔다. 엄마는 바람이 세게 불면 감싸 안았다. 품속에서 원구와 눈을 마주치곤 웃었던 날이 생생하게 기억났다. 엄마가 아빠랑 이혼하고 나서 원구를 챙겨줬던 사람은 나뿐이었다. 내가 받지 못했던 것들을 원구에게 주고 싶었다. 혼자 슬리퍼를 신고 계란빵을 사서 원구한테만 먹이기도 했다. 원구한테 못 해준 것이 없도록 곁에 남고 싶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과욕을 불렀다. 엄마가 원구를 위해 된장찌개를 끓여준 이후부터였을까. 나는 원구와 함께 지냈던 시간을 잊으려 했다.
원구가 누워 있던 자리에 땅을 팠다. 손목까지 다 들어갈 만큼 판 곳에 사체를 넣었다. 덮어 놨던 손수건은 그대로 뒀다. 그러곤 작은 삽으로 모래를 덮었다. 작은 돌과 섞인 모래여서 잘 묻히진 않았다. 나는 있는 힘껏 내리치면서 자연스럽게 땅을 메꿨다. 누가 이곳을 밟고 지나가도 모를 정도로 말이다.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올라가야 할 언덕길은 예전처럼 쉽게 올라가지 못했다. 한 걸음씩 올라가면서 입김이 반복해서 나왔다. 유독 다른 날보다 더 힘겨웠다. 나는 얼마 가지 못했다. 무릎을 땅에 대고 주저앉았다. 갑작스레 언제부터 원구를 소유물로 생각했는지 의문이 들었다. 또 내 과욕이 악심이었다는 것을 숨길 것인지 고민했다. 그때 원구를 데려가지 않았으면 아무런 일 없이 잘 지냈을 것이다. 원구의 소매를 놓지만 않았어도 죽지 않았을 것이다. 겨울이 되면 항상 빠짐없이 원구를 가슴에 담고 지냈다. 아끼고 보듬어 줘야 했던 사람을 떠나보내고 나서, 나 자신을 지나치게 원망했다. 그럴 때마다 무조건 나를 가했다. 원구는 이것보다 더 고통스러웠을 것 같았다. 원구가 시체로 발견된 이후 부검하고 나서 형사에게서 연락이 왔었다. 몸 전체가 불에 탔는데, 고스란히 또 다른 흔적이 남겨져 있는 게 발견되었다고 말했다. 어떤 물체로 인해 생긴 멍 자국과 유리병으로 머리를 가해서 생긴 상처가 남아 있었다고 했다. 나는 원구가 실종된 그날 후로 종이만 전봇대에 붙이고 다닌 일밖에 하지 않았다. 나는 원구가 죽어가고 있는 동안, 집에서 전화만 기다렸다. 발견된 곳에서는 원구가 알몸으로 누워 있었던 자리에 휴대전화가 놓여 있었다. 형사는 멀쩡히 켜졌던 휴대전화에 왜 같이 찍은 사진이 없냐고 물었다. 그러고 보니, 원구와 찍은 사진이 하나도 없었다. 원구에게 휴대전화가 생기고 나서 같이 사진 찍자는 말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사진이 없었기에 장례식장에서 원구의 영정 사진을 올려놓지 않았다. 위패만 안치해 두고 보냈다. 나는 옆에서 우는 소리가 들려도 울지 않았다. 원구가 없는 곳에서 울기 싫었다.
나는 제자리에 일어나서 다시 아리아 천으로 갔다. 물에 손전등을 비췄다. 여전히 빛 물고기가 헤엄치고 다녔다. 나는 신발을 신은 채 발을 담그며 원구와 놀았다. 추위 따위는 견디기 쉬웠다. 원구가 날 맞이하는 것이 아니라 해도, 왠지 추운 것보다는 따뜻했다.
언젠가 꿈에서라도 만난다면 말하고 싶다.
이제는 따뜻함에 속아 차갑게 살고 있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