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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화

 

 

 

   시포트리 마을은 한적한 곳이다.

   제국의 어디를 가든지 보이는 조용하고 유동성이 적은 시골이라 불릴만한 곳.

 

   기사는커녕 내부에 자그마한 교회 하나가 있는 것이 기적이라 여겨질 정도로 조그마한 마을이다.

 

   그런 마을에 일개 기사 지망생도 아닌 기사.

   그것도 붉은 사자 기사단에 소속되어 있는 기사가 온 것이 순전히 우연은 아니었다.

 

   히히힝.

 

   기사, 레힐로는 타고 있던 말에서 내린 뒤 바닥에 무릎을 꿇고선 흔적을 살폈다.

 

   이 근처에서 트윈헤드 오거가 나타났다는 신고를 들은 참이다.

 

   처음에는 오보라 생각했건만 마을 근처 숲에 박힌 발자국을 보니 거짓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이 거대하고 묵직한 발자국은 분명히 트윈헤드 오거의 것이다.

 

   본래라면 이 영주의 기사가 임명한 기사 둘이 왔어야 했으나 어쩔 수 없는 영지 내 사정으로 인해 그가 직접 발걸음을 옮겨야 했다.

 

   “트윈헤드 오거가 둘이나 움직였다라. 근방에 무슨 일이 있기라도 한 건지.”

 

   본래는 얼굴 한 번 보기 힘든 놈이다.

   산기슭 깊은 곳에 처박혀선 그 산의 왕 노릇이나 즐기는 녀석이 어째서 한 마리도 아니고 두 마리씩이나 인간이 사는 곳으로 내려온 건지.

 

   그 탓에 영주의 기사 두 명이 나서고도 일손이 부족해 영주 본인이 직접 레힐로에게 부탁을 해왔다.

 

   제발 힘을 빌려달라며.

 

   그렇지 않아도 용건이 있어 영지에 객으로 있는 입장이다. 영지의 피해를 걱정하는 영주의 부탁을 거절할 순 없었다.

   특히나 트윈헤드 오거가 두 마리나 나타나는 위급 상황이라면 더더욱.

 

   “이 근처인가.”

 

   흔적을 따라 이동한 레힐로는 숲 근처에서 커다랗게 밟힌 발자국을 발견했다.

   분명히 트윈헤드 오거의 것이다.

   그것도 비교적 최근의.

 

   문제는 놈의 발자국 옆에 놓여 있는.

   인간의 것으로 추정되는 자그마한 발자국이다.

 

   레힐로는 발자국을 가볍게 훑었다.

   확신할 수 있다.

   이만한 크기라면 분명 어린아이이다.

 

   그것도 기껏해야 10살 남짓의.

 

   타닷.

 

   레힐로의 발걸음이 빨라진다. 둘의 발자국이 같이 있는 것으로 보아 꼬마가 오거에게 쫓기고 있다는 판단이 들어서였다.

 

   발자국이 생긴 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10살 남짓의 꼬마가 거대한 오거에게서 오랫동안 도망쳤을 리는 없었다.

   아마 갈기갈기 찢겨 죽었겠지.

 

   그럼에도 레힐로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혹시나 하는 가능성을 위해서다.

 

   그렇게 빠르게 달려간 곳에서 레힐로는 목도했다.

 

   거대한 오거의 목 두 개가 마치 낙엽처럼 쓰러지는 모습을.

 

   “이건…… 대체?”

 

   경악스러운 광경이었다.

   시골 촌구석에서 이런 광경을 볼 줄 몰랐기에 더욱 놀라웠다.

   쓰러져 있는 오거의 사체를 보며 레힐로는 당황을 금치 못했다.

 

   트윈헤드 오거가 어떤 존재이던가.

 

   나기를 이레귤러나 다름없이 태어난 놈이다. 웬만한 장검은 통하지도 않을뿐더러 일반적인 병사는 아무리 모인다고 해도 놈을 잡을 수 없다.

 

   그렇기에 기사가 필요한 것이다. 그것도 오러를 다룰 줄 아는 기사가.

   그것도 두 명이나.

 

   그게 아니라면 성을 부수는 공성 병기에 버금가는 크기의 발리스타를 끌고 와서 놈의 몸에다 박아 넣거나.

 

   “발리스타를 사용했을 리는 없으니까……”

 

   최소 오러를 사용하는 기사 둘.

   아니면 기사 둘에 버금가는 경지의 검사가 있어야 가능한 짓이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당장 레힐로 본인조차 트윈헤드 오거와 일 대 일로 싸우라고 한다면 완전한 승리를 보장할 자신이 없었다.

 

   그만큼 트윈헤드 오거가 몬스터 중에서도 상위 계열에 속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놈에겐 사각이 없기 때문이었다.

 

   두 머리가 각자의 시야를 보완하며 움직이는 모습이 그 단단한 육체와 합쳐진다면 놈을 토벌할 생각이 싹 사라지곤 했다.

 

   ‘깔끔하군.’

 

   트윈헤드 오거의 사체를 훑어본 레힐로는 전투의 흔적을 보고 그렇게 판정내렸다.

 

   쓸데없이 잔 상처를 내지 않고, 힘을 조절하며 오우거를 이리저리 컨트롤한 뒤.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타이밍에 온 힘을 쏟아부어 트윈헤드 오거의 목을 단칼에 베어버린 것이다.

 

   그 과정에서 한 치의 실수도 없었다는 듯 트윈헤드 오거의 머리에 난 절단면은 더없이 매끄럽다.

   ‘나라면 가능한가?’

 

   레힐로는 오거의 절단면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곰곰이 생각했다.

   자신이라면 이렇게 행동할 수 있는가.

   결론은 불가능이었다.

   힘을 비축하며 놈의 공격을 피하는 것까진 가능할 수 있지만 강철만큼이나 단단한 놈의 목을 한 번에 베어버리는 건 아무리 오러를 다룰 수 있는 레힐로라 해도 불가능하다.

   아무리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려봐도 한 개가 한계다.

 

​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만난다면, 기사단에 반드시 데려가고 싶은 정도.

   레힐로는 그리 중얼거리며 자리를 떴다.

***

   “내가 뭘 한 거지?”

   그는 얼떨떨한 표정을 지은 채 손에 쥔 검을 바라봤다.

   아직도 조금 전 한 일이 믿기지 않았던 탓이다.

   본래 일반적으로는 오거의 피부를 벨 수 없다.

   오러를 사용할 수 있는 기사 두 명이 필요하다 했던 이유 또한 놈의 피부를 베어내기 위함이었으니까.

   실제로 요한 또한 놈을 죽일 생각은 조금도 하고 있지 않았고.

   그런데.

   ‘잡았어.’

   그것도 상처 하나 입지 않은 채.

   나름대로 단련하긴 한 탓에 몸에 근육이 붙어있긴 했지만, 트윈헤드 오거의 목 두 개를 단박에 날려버릴 정도는 아니다.

   애초에 예전에도 한 번 테스트를 해봤지만, 이 몸에 이만한 힘은 존재하지 않았다.

   단칼에 트윈헤드 오거의 목을 벨 정도라면 느껴지는 게 있어야 했건만 그런 게 하나도 느껴지지 않은 탓이다.

   요한의 몸은 그냥 다른 이들보다 조금 더 튼튼하고 조금 더 똑똑한 소년일 뿐이다.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이 검이 무언가를 했다는 거겠지.”

   요한의 손에 들린 검은 여전히 빛나고 있다.

   트윈헤드 오거의 붉은 피는 그곳에서 여기까지 달려오며 어느 정도 흩어져 있었다.

   이 검이 어떤 능력을 갖췄는지는 알 수 없다.

   애초에 눈에 띄는 것이라곤 간간이 빛이 나오는 정도가 끝이니까.

   그러나 요한은 기억하고 있었다.

   검을 휘두르자마자 느껴졌던 감각을.

   트윈헤드 오거의 목을 가르며 튀던 피를.

​   “무슨 능력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대단한 능력의 검이란 것은 증명됐다.

   그냥 오거도 아니고 트윈헤드 오거를 단칼에 벨 정도이니.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요한이 처음 보는 검이란 사실은 조금도 변하지 않는다.

   나름대로 게임을 오랫동안 하며 유명할 만한 것들은 기억 속에 넣어두고 있지만 이 검만큼은 머릿속에 남아있지 않다.

   “게임에서 안 나온 검인가?”

   만약 그렇다면 성능이 왜 이렇지.

​   어느 쪽이건 이 검에 대해 알아봐야 한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그러나 이 촌구석 동네에서 검에 대해 알아볼 방법 따윈 존재하지 않았다.

   그 유명한 기사도 한 명 배치되지 않은 곳이니까.

   “적어도 도시에는 가봐야 뭘 알아보든 말든 할 텐데……”

   요한은 그리 중얼거리며 품속에서 미리 챙겨뒀던 유리병을 꺼냈다.

   기껏해야 손바닥에 잡힐만한 크기의 유리병에는 붉은 액체가 끈적거리며 움직인다.

   트윈헤드 오거의 피였다.

   그는 트윈헤드 오거를 잡고선 그 피를 미리 담아둔 상태였다.

   ‘다른 것도 가져올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테지만……’

   기껏해야 10살 남짓인 꼬맹이가 가져오기엔 트윈헤드 오거의 몸뚱이는 너무 컸다.

   게다가 힘겹게 가져온다 해도 내다 팔 구석이 없기도 하고.

   그래서 피만 챙겼다.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왜 굳이 더럽게 피를 모아두냐고 따질 수 있겠지만 그건 말 그대로 뭘 모르기에 할 수 있는 소리였다.

   오거. 그것도 트윈헤드 오거의 피는 그 자체로 영약 역할을 하곤 한다.

​   그 효능은 섭취하는 사람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대체로 근력이 향상되는 식의 효과를 보이는 것이라 알고 있다.

   쉽게 말해 보약이란 것이다.

   “그럼 이걸 어디다 쓸까.”

   손에 들린 오거의 피가 찰랑인다.

   넣을 곳이 없어 물을 보관하는 물통에 넣어두긴 했지만, 이 상태를 오래 유지할 거란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았다.

   잘은 모르겠지만 피는 결국 신선도가 중요한 제품이다.

   그 신선도가 떨어진다면 당연하게도 피의 효율 또한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피를 제대로 보관하는 것이 아니라면 빠르게 섭취하거나 판매해야 한다.

   “음……”

   그렇기에 본래는 요한이 직접 이 피를 마셔 근력을 향상시킬 생각이었으나 트롤의 피를 마주하니 생각이 바뀐다.

   물론 생으로 피를 섭취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도 있긴 했으나 요한이 이 피를 거부하는 것은 조금 더 근본적인 원인이었다.

   그는 이 피가 어쩐지 꺼림칙했다.

   온몸의 감각이 이 피를 마셔선 안 된다고 소리치는 듯하다.

   그리고 요한은 이런 감을 대부분 신뢰하는 사람이었다.

   “뭐…… 아직 약초도 없으니까.”

   어렴풋이 떠오른 기억 속에서 오거의 피는 특정한 약초와 함께 섭취해야 한다는 정보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게임상에선 스턴, 그러니까 엄청난 고통과 함께 기절에 걸린다고 알고 있다.

   도서관에서 보았던 책에도 쓰여 있는 정보였으니 아마 확실할 것이다.

   그리고 그 약초는 적어도 이 근처에서 구할 수 있는 물건은 아니다.

   무려 오거의 피를 중화시킬 수 있는 약초니까.

   그 가격이 쌀 리도 없을 테고.

   ‘그러면 방법은 파는 것뿐인가……’

   무려 트윈헤드 오거의 피다.

   모르긴 몰라도 아마 그 가격은 시골 촌놈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오를 터.

   아마 이 마을 내에서 구매처를 찾긴 힘들 테고……

   “결국 도시로 가야 하나?”

   요한은 머리를 벅벅 긁었다.

   이 시골이라 해서 도시가 없는 건 아니다.

   이곳도 영지인 만큼 영주가 있는 곳이 있을 테고 그런 곳은 당연히 도시로 발전하기 마련이다.

   물론 제국의 수도에 비할 바는 아닐 테지만 나름대로 도시라 부르긴 충분한 수준.

   그렇기에 그곳으로 간다면 오거의 피를 판매할 수 있는 구석을 찾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   다만……

   “알리샤 눈에 들어가면 망하는데.”

   그가 저지른 짓이 조금.

   아주 조금 있었기에.

   요한은 그것이 이번 거래에 영향을 미치지 않기를 고대하며 도시로 발걸음을 옮겼다.

***

   “누님, 그놈이 도시로 진입했다는 소식입니다!”

   “……그놈?”

   “네.”

   그놈이란 말에 붉은 안광이 어둠 속에서 빛났다.

   얼굴에 자그마한 상처가 난, 붉은 머리의 여인은 이를 까득 갈면서 도시의 입구를 바라봤다.

 

   “요한, 이 망나니 새끼. 다시 돌아오면 네 생살을 씹어먹어 버린다고 맹세했지. 대체 무슨 이유로 돌아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멀쩡히 돌아가진 못할 거다.”

 

   붉은 머리와 붉은 눈동자를 가진, 카트린 영지의 뒷골목을 지배하는 붉은 늑대 용병단의 수장.

 

   알리샤가 주먹을 꽉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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