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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화

   “이게 뭘까……”

   바람에 수풀이 흔들리는 초원.

   초원에는 마치 그림으로 그린 것처럼 곱게 자란 나무가 한 그루 자라 있었다.

   요한은 나무 그루터기에 앉아 멍한 표정을 지은 채 손에 쥔 검을 바라봤다.

   요한의 시선이 닿은 검은 마치 별빛처럼 은은히 빛나고 있었다.

   손이 닿기 전, 아무런 빛도 내지 못한 채 어둠에 동화되어 있던 것과는 딴판이었다.

   자체 발광이 가능한 검이라니.

   아무리 생각해도 정상적인 경우는 아니다.

   아무리 이 세계가 판타지라 해도 자체적으로 빛을 내뿜는 검이 일반적인 검일 리는 없었다.

   “누군가의 유산?”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경우였다. 공동 한 가운데 박혀 있던 데다가 그 공동에 인간의 손이 닿은 듯한 흔적이 있는 걸로 보아 자연적인 형태는 아닌 듯했다.

   그렇다면 누군가의 유산으로 보는 게 적합하기는 하다.

   “근데 그럼 성좌들은 왜 반응했지?”

   성좌(星座).

   그들은 밤하늘에 수놓아진 별. 그 중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자들이었다.

   생전에 위대한 업적을 쌓아 별자리 중 하나를 차지할 만큼의 격을 이뤄냈거나 아니면 이야기로 와전되어 결국에는 그만한 격이 만들어진 존재들.

   그들의 목소리는 일반적으로는 들려오지 않는다.

   아니, 정확히는 듣지 못한다고 말하는 것이 맞았다.

   당연하겠지.

   성좌란 위대한 자들. 그런 위대한 자들에게 있어 대부분의 일은 이미 겪었거나 보았던 것들이기에 굳이 힘들게 목소리를 낼 필요가 없다.

   거기다 그들이 사람들에게 목소리를 내는 것만으로 그들에겐 그 대가가 따른다.

   격 높은 존재가 격 낮은 존재에게 말을 건다는 건 그만한 부담이 따르는 일이었기에.

   그런데도 요한에게 목소리가 들려왔다는 것은 이 검을 뽑았다는 게 그만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의미였다.

   아니면, 이 검을 들어 올리는 것으로 성좌들의 목소리가 들린다거나.

   “어느 쪽이건 일단 평범한 건 아니겠지?”

   요한은 손에 들린 검을 이리저리 휘둘러봤다. 검을 휘두른다 한들 아무런 일이 일어나진 않았지만 일단 빛이 난다는 것만으로도 그의 기분은 최고조에 달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대로면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시골 촌놈 1로 죽을 운명이었을 테니.

   사실 이 몸의 운명 따윈 알지 못하지만, 이대로 살아가는 것보단 낫겠지.

   이 검이 어떤 힘을 가졌는지는 모르겠지만 범상치 않은 파동이 느껴진다. 분명 개쩌는 힘을 가진 검이겠지.

   그리 생각하면서 요한은 고개를 옆쪽으로 돌렸다.

   시원한 바람과 함께 수풀이 흔들린다. 초원과 숲을 가르는 경계선에는 아이들이 한창 놀고 있는 계곡이 있었다.

   그로부터 사흘이 지났다.

   그동안 요한은 동생들과 함께 실종된 것을 변명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했다.

   꽤 오랜 시간 동안 아이들과 함께 사라졌다는 이유에서였다.

   그가 동굴 밖으로 나왔을 때, 하늘은 이미 노을빛으로 물들어 있었고 마을 어른들이 전부 모여 그들을 찾고 있었다.

   원래라면 요한은 그게 아니라며 자초지종을 설명했을 터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러지 못했다.

   요한이 할 수 있는 건 그저 아이들과 함께 놀다 보니 시간이 너무 많이 흘렀다는 말을 반복하는 것뿐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갑자기 계곡에 본 적 없는 동굴이 나타나 그곳에 들어갔더니, 처음 보는 검이 있었고 그 검을 가지고 꼬맹이들을 데려 나오니 해가 지고 있었다는 걸 어떻게 설명하겠는가.

 

   만약 사실대로 말한다면 요한은 마을에 하나뿐인 사제님께 끌려가 악령에게 지배당하고 있는지 확인받을 것이 분명했다.

 

   요한이라는 이름으로 이 세계에 살고 있지만, 본질은 사이비가 넘쳐나는 시대에서 온 정신.

   종교인의 심문이 평화로이 끝나리라고 믿을 리 만무한 그였다.

 

   그렇기에 요한은 모든 꼬맹이를 대신하여 꾸중을 들어야 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꼬맹이들의 기억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다는 점이다.

 

   어린놈들인 만큼 멋진 검이 동굴 안에 있었다며 주저리주저리 떠들어대면 어떻게 해야 할까 싶었는데 눈을 뜬 아이들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다.

 

   그 아이들이 기억하는 건 오로지 점심때 강가에서 놀았던 기억뿐이었다.

 

   아마 앞으로도 강가에서 놀다 단체로 잠든 것으로 생각할 터.

 

   이럴 때는 어리고 단순하다는 것이 장점이었다.

 

   “후우……”

 

   요한은 머리를 벅벅 긁고선 손에 들고 있던 검을 내려놨다.

 

   검을 잡은 뒤로 계속해서 검을 휘둘러 봤지만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하다못해 검술 교본이나 기사 한 명이라도 이 마을에 존재했다면 그것을 보고 따라 할 수라도 있었겠으나 이 자그마한 마을에 그런 게 존재할 리 만무했다.

 

   결국 요한이 할 수 있는 건 전생의 영상에서 보았던 검술 일부를 따라 하는 것뿐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운동이 되기는 했으나 그렇다고 해서 이게 옳다는 보장은 없었다.

   ‘차라리 그 공동을 더 둘러보고 나올걸.’

   사흘이 지나고, 사람들의 시선에서 어느 정도 자유로워진 요한은 가장 먼저 공동이 있던 동굴로 향했다.

   이 검이 나온 공동인 만큼 그 안에 무언가 더 있을 거라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공동은 물론 그가 나왔던 동굴 자체도 남아있지 않았다.

   마치 그곳에 동굴 따윈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처럼.

   사라진 것을 다시 찾아낼 순 없는 노릇이다.

   하물며 신비에 의해 사라진 것은 더더욱 그러했다.

   심지어 그날 이후로 성좌들의 목소리마저 들려오지 않았으니, 기연이라 부를만한 것은 이 검 말고는 없었다.

   물론 이 검이 대단치 않다는 건 아니었지만 검에 감춰진 비밀을 하나도 알지 못한다는 건 힘을 조금도 사용하지 못함을 의미했다.

   붕, 부웅.

   검을 두어 번 정도 휘둘러본 요한은 이마에 난 땀을 닦고선 하늘을 올려다봤다.

   하늘에는 노을이 껴 있다. 태양은 당장이라도 사라질 것처럼 지평선 너머에 일렁이고 있었다. 조금 있으면 빛이 사라지고 어두운 밤이 올 터였다.

   “일단 돌아갈까.”

   늦게 들어간다고 해서 누군가 그에게 꾸중하진 않을 테지만, 아무래도 숲의 분위기가 조금 이상했기에 일찍 들어가는 게 좋을 듯했다.

   요한은 검을 누구도 알지 못하는 자신의 아지트에 집어넣고자 몸을 움직였다.

   그때.

   “으아아아아아앙-!”

   그의 귀에 어린아이의 비명이 들려왔다.

   요한은 반사적으로 검을 쥔 채 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달렸다.

   ‘별로 멀지 않아.’

   그렇게 달려 도착한 곳에는, 비명을 질렀던 아이가 땅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아이는 움직이지도 못한 채 울먹이는 중이었지만.

   다행히 몸의 몇몇 상처를 제외하면 멀쩡했다.

   그르르.

   다만, 문제가 있다면 아이의 앞에 거대하고 푸른 피부를 가진 오거가 있었다는 점이다.

   그것도 머리가 두 개인 오거가.

   ‘트윈헤드 오거가 왜 여기에……’

   도서관에 있던 책과 주민들 사이에 있는 사냥꾼의 경고를 통해 요한 또한 오거에 대해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고블린 10마리가 모여도 이길 수 있을까 말까 한 게 오크이며, 그런 오크가 30마리는 모여야 겨우 사냥할 수 있는 것이 오거라고.

   그런 오거들 중에서도 극악한 확률을 뚫고 나타나는 이레귤러.

   머리가 두 개 달린 트윈헤드 오거는 강철과 비견될 정도로 말도 안 되는 내구력 때문에 일개 병사 무리로는 상대할 수 없고, 오러를 다룰 줄 아는 기사 두 명이 있어야만 사냥할 수 있다고 들은 기억이 있다.

   ‘뭐, 트윈헤드 오거를 만날 일이 있겠냐만. 하하!’

   “지금 만났잖아요, 씨발.”

   요한은 속으로 멋쩍게 뒷머리를 긁적이며 트윈헤드 오거를 만날 일이 없다, 말하던 사냥꾼을 향해 욕설을 내뱉었다.

   호기롭게 술자리에서 자신의 무용담을 늘어놓던 사냥꾼조차 눈앞의 트윈헤드 오거를 만난 적이 없다고 했다.

   그런 놈이 어째서 이곳에 있을까.

   의문은 짧고 결정은 단순했다.

   요한은 앞으로 달려 나갔다.

   오거를 죽이겠다는 거창한 의지가 있는 건 아니었다.

   놈이 어째서 여기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다만, 아이가 오거에게 잔인하게 살해당하는 꼴을 보지 못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거기다 이 근처는 마을이다.

   만약 트윈헤드 오거가 마을로 들어간다면 돌이킬 수 없는 대참사가 일어날 것이 분명했다.

   만약 지금 앞으로 나서지 않는다 해도 어차피 마을은 반파될 터.

   그런 꼴을 보고 싶은 요한은 아니었다.

   앞으로 나선 요한은 은은히 빛나는 검을 앞으로 내밀고선 오거를 향해 외쳤다.

   “야, 돼지! 멍청한 새끼야!”

   크르륵?

   어그로가 제대로 끌린 것인지 꼬마를 향해 침을 질질 흘리고 있던 오거의 한쪽 머리가 요한에게로 향한다.

   그러자 다른 쪽 머리도 요한의 방향으로 향했다.

   두 머리는 아무래도 반짝이는 검에 신경이 쏠린 듯했다.

   요한은 시선이 자신의 쪽으로 쏠린 틈을 타서 꼬마에게 소리쳤다.

   “빨리 도망가! 도망가서 아무나 불러오라고!”

   “흐, 흐윽……”

 

   그를 향해 울먹이던 꼬마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선 자리에서 일어나 달렸다.

   그 모습을 잠시 지켜보던 요한은 헛웃음을 흘렸다.

   “그래도 한 번 정도는 돌아보고 가지……”

   정 없기는.

   크워어어어-!

   먹잇감을 놓쳐서일까. 아니면 내가 욕을 한 것 때문일까.

   잔뜩 화가 난 오거가 괴성을 지르며 요한에게 달려들었다.

   육중한 거체가 천지를 진동시킨다. 과연 몸이 큰 탓인지 속도가 그렇게까지 빠르진 않았다.

   요한은 두 눈을 부릅뜨고 오거의 움직임을 읽은 뒤 아슬아슬한 타이밍에 몸을 구른다.

   마치 그래야만 할 것처럼.

   손에 쥔 검이 그리하라 지시하는 듯했다.

   타닷.

   공격을 피한 뒤 요한은 한쪽 눈을 잃은 오거의 사각지대를 향해 달렸다.

   순간적으로 그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당황하는 오거의 모습.

   요한은 시간을 조금도 지체하지 않은 채 놈의 목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트윈헤드 오거란 놈들은 그 두꺼운 피부와 근육 탓에 어지간한 날붙이론 생채기조차 나지 않는다.

   지금 그가 하는 짓도 그저 시간 벌이와 시선을 끄는 것이 전부일 터였다.

   그걸 알고 있으면서도 굳이 검을 휘두르는 이유는 단순했다.

   비록 바늘만도 못한 피해더라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단 무언가를 하는 게 트윈헤드 오거의 시선을 끌기에는 좋을 테니까.

   ……그렇게 생각했다.

   서걱.

   “어?”

   강철보다 단단한 오거의 목이, 마치 두부처럼 부드럽게 썰려 나가기 전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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