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세차게 흐르던 강물이 속삭인다.
영혼이란 존재하는가.
사람의 몸을 껍질이라고 볼 때, 그 껍질 안에 꽁꽁 숨겨져 있는 본질.
일반적인 시선으로는 볼 수도 마주할 수도 없기에 신비라 불리는 무언가.
학문과 종교, 사상의 관점에 따라 누군가는 존재를 부정하기도 하는 영혼은 과연 이 세상에 실존하는가.
실존한다면, 껍질을 잃은 본질이 향하는 곳은 어디인가.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저승인가?
아니면 누구도 알지 못하는 또 다른 세상인가.
지금에 들어서 학문의 힘이 발전하고 대부분의 신비가 인간의 손아귀에 내려온 지금까지도 사후세계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다.
그리고 아무렇게나 늘어놓아진 질문에 나는 이리 답했다.
“존재하겠지. 씨발.”
갑작스레 튀어나온 욕지거리에 아이들 앞에서 자랑스레 신비에 관한 이야기를 노래하던 음유시인이 눈을 동그랗게 뜬다.
그는 나를 보고선 깜짝 놀란 듯한 표정을 짓다가 이내 원래의 얼굴을 되찾고선 말을 이어 나갔다.
아무래도 한 아이의 치기 어린 방해로 생각한 모양이다.
나는 진심이었는데.
아이들 또한 내가 내뱉은 말을 그다지 상관하지 않는 듯했다.
하기야 이런 방해는 익숙할 테니까.
그것보단 음유시인이 늘어놓는 신비한 이야기들에 더욱 관심이 갈 터.
나 또한 원래라면 저런 이야기에 눈을 반짝이며 달려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럴 수 없다.
“하아…….”
나는 한숨을 흘리며 열심히 음유시인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아이들에게서 시선을 뗐다.
호기심에 이야기를 들어보긴 했지만 역시나 영양가가 없었던 탓이다.
되려 동네 아이들에게 안 좋은 인상을 심어주기만 했다.
물론 그런 이유로 한숨을 내쉰 건 아니었다.
고작 그 정도로 한숨을 내쉴 거라면 이미 백 번도 넘게 한숨을 내뱉었을 테니까.
그것보단 조금 더 고차원적이고 심오한 이유.
“상태창.”
내 과거가 저들이 저리 열정적으로 외치던 신비 중 하나인 환생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이 한숨의 원인이었다.
***
흔히들 말한다.
이세계 전생하고 싶다고.
온갖 특례와 치트키를 품은 채 세상만사 편안한 인생을 즐길 수 있다며.
요한은 그렇게 말하는 이들의 아구창을 날려버리고 싶었다.
“편안한 인생은 개뿔이.”
이세계에 전생하고 말문을 트게 된 순간부터 그는 단 하루도 편안했던 적이 없었다.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지금이야 발 뻗고 누워서 잘 만큼의 안전을 확보받았지만 처음 이 세계에 떨어졌을 때는 그런 것도 없었다.
요한을 기르던 부모는 그가 5살이 되던 해 그를 버려두고 도망갔기에 그가 살아남는 방법은 오로지 버티는 것뿐이었다.
적자생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면 죽어 나가는 것이 이 세계의 이치였기에 요한은 최대한 빨리 세계에 적응하고자 발버둥 쳤다.
그 과정은 전혀 순탄치 않았다.
지금도 4년간의 고생을 떠올리면 눈물이 나올 정도다.
그나마 그를 이곳에 처박은 존재가 무엇이라도 선물을 줬겠지, 라는 생각에 요한은 상태창이나 특성창 따위의 말을 늘어놓았다.
하루도 빠짐없이 이상한 말들을 중얼거리는 요한에게서 사람들은 점점 멀어져 갔다.
처지에 대한 동정 어린 시선마저도 점점 기피와 공포로 바뀌어 갔다.
아무튼, 그는 계속해서 상태창이나 특성창 따위의 말을 중얼거렸고, 결과는 다음과 같다.
“…….”
텅 비었다.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다.
그렇다.
요한에겐 아무것도 없었다.
다들 말하는 이세계 특전이나 좋은 위치.
둘 중 어느 것도 요한에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요한의 품에 주어진 것은 튼튼하게 태어나준 건강한 육체와 시골 촌놈에게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회전이 빠른 두뇌뿐이었다.
심지어 부모마저 잃어버린 채였으니 그에게 남아있는 건 오로지 그것뿐이라 해도 무방했다.
심지어 그렇다고 해서 그 우수한 머리를 활용할 수단이 넘치는 것도 아니다.
한적한 시골에 그런 게 있을 리 만무했으니.
이따금 마을에 있는 자그마한 도서관에 들러 사람들은 읽지 못하는 고서를 읽어보는 것이 전부였다.
그나마 건장한 육체는 사용할 방법이 있긴 했으나 그게 활용적이라 할 순 없었다.
요한이 할 수 있는 것들?
단순하다.
나름 나이는 들었다고 어른들 농사일에 불려 가 조금 일하거나, 자신보다 어린애들이 위험하지 않도록 돌보는 것뿐.
아이들은 항상 시원한 물이 찰박이는 계곡에서 놀았기에 그가 신경을 쓸 것도 없었다.
이러한 생활을 약 3년간 반복하며, 요한은 이것이 분명 잘못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이래선 안 된다.
이런 시골에서 썩고 싶지 않았다.
단순히 더 나은 삶을 원하는 건 아니다.
솔직히 말한다면 요한은 지금의 삶도 그다지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시골에서 한적한 삶을 지내는 건 그도 오래전부터 한 번쯤 꿈꿔왔던 것이기에.
그런데도 그가 다른 빙의자들처럼 힘을 가지길 원하는 이유는 단순했다.
“세계가 멸망한다는 데 안 하고 배겨?”
요한이 살던 세상의 멸망.
결말을 본 뒤 욕하곤 접어버린 게임.
엠파이어 오브 킹덤.
그 게임의 테마는 명확했다.
멸망해 가는 세상을 구원하라.
그리고 요한이 이 세계에 떨어진 이상 그가 가져야 할 명제 또한 명확했다.
세상의 구원.
“진짜 죽여버리고 싶네.”
누구도 죽음을 원치는 않는다.
그렇기에 요한은 움직여야 했다.
다만 문제는 요한에게 주어진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이다.
재능은 확인할 계기조차 없었고 든든한 뒷배경은 한적한 시골에서 태어난 순간부터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거기다 빙의자들이 흔히 가지는 상태창도 없으니 실로 좆됐다고 할 수 있다.
심지어 게임은 중간에 접어버린 탓에 극초반부를 제외한 모든 내용을 요한은 직접 알아내야 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이 있다면 지금이 게임의 시작인 멸망이 시작되는 시점보다 뒤라는 것.
제국의 멸망이란 시한폭탄이 터지기 전에 그는 움직여야 했다.
기회란 언제나 스스로 쟁취해야 하는 것.
이 한적한 시골은 기회라곤 한 톨도 보이지 않는 그야말로 촌이었다.
기회의 땅은 존재한다.
그곳은 아마 제국이란 이름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제국에 간다면, 검술이건 마법이건.
이 몸의 재능을 알 수 있을 터였다.
요한은 머릿속으로 소드마스터나 대마법사가 되는 상상을 했다.
평범한 시민 1로 지내는 것보단 이름난 사람으로 사는 것이 더욱 살아남기 쉬울 터다.
그런 생각을 하던 탓에, 어느 순간부터 계곡에서 놀고 있던 아이들이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을 요한은 눈치채지 못했다.
“어?”
요한이 망상에서 깨어난 것은 물이 찰박거리는 소리가 들려오지 않았을 때였다.
순식간에 혼란에 빠진 그의 시선이 계곡 전체를 훑기 시작했다.
그리고 요한은 발견할 수 있었다.
딱 봐도 아이들이 들어가고 싶게 생긴, 성인 남성은 들어갈 수 없을 법한 크기의 동굴과 그 앞에 놓인 아이의 신발 한 짝.
척 보기에도 수상한 흔적이다.
요한이 이 계곡 근처에 온 지도 벌써 한 달이 넘었는데 저러한 구멍을 한 번도 본 적 없다는 것이 그 증거였다.
구멍이 그리 크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눈에 띄지 않을 정도는 아니다.
오히려 동굴은 제발 들어와 달라는 듯 입을 쩍 벌린 채였다.
요한은 미심쩍은 눈을 한 채 동굴을 잠시 바라봤다.
본래 존재하지 않던 동굴이 갑자기 생겨났다. 이런 괴이한 현상이 일어났다면 본래는 어른들에게 알리는 것이 옳았다.
그러나 어른들에게 알리는 사이 꼬맹이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모를 노릇이다. 아직 앳된 티가 가시지도 않은 아이들인 만큼 흔한 고블린 한 마리만 나타나도 몰살당할 터였다.
그리고 요한은 그런 꼴을 보고 싶지 않았다.
“아오, 내가 왜 눈을 떼서.”
잠시 머리를 긁적이던 요한은 두 눈을 질끈 감고선 눈앞의 동굴에 들어가길 택했다.
고오오.
동굴 안에 들어가자 마치 그를 환영한다는 듯 오싹한 소리가 들려왔다.
어릴 적 갔던 귀신의 집에 비견될 정도.
이런 곳을 꼬맹이들이 대체 어떻게 들어간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물론 요한은 겁먹지 않았다.
이런 것에 겁먹기엔 그가 전생에 보아 온 것들이 너무 많았다.
차라리 처음으로 본 여자친구의 쌩얼이나 화난 부장님의 얼굴이 더 두려울 정도.
그렇기에 요한은 당당히 전진했다.
얼마나 전진했을까, 암순응을 끝마친 요한의 눈에 커다란 공동이 들어왔다.
공동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거대한 건축물과 무언가를 기리듯 조각해 둔 조각상. 그리고 어둠 속에 묻힌 검이 있었다.
그 검의 앞에는 요한이 그토록 찾던 꼬맹이 무리가 쓰러져 있었다.
요한은 황급히 꼬맹이들에게 달려가 심장 박동과 코 밑의 호흡을 확인했다.
“후우…… 숨은 쉬네.”
다행히 호흡은 멀쩡했다.
심장도 제대로 뛰는 것으로 보아 아무래도 이곳에서 잠든 듯했다.
요한은 꼬맹이들을 향해 머리를 쥐어박고 싶은 심정을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견뎌낸 뒤 땅에 박힌 검을 바라봤다.
검은 아무래도 오랫동안 이곳에 박혀 있던 것 같았다.
본디 황금빛이었을 손잡이가 어둠 속에 파묻힌 것만 봐도 그러했다. 꼬맹이 중 일부가 호기심에 검을 잡아본 것인지 손잡이 일부분에 때가 벗겨져 있었다.
요한은 그 검을 잠시 쳐다보다 이내 손을 뻗었다.
그래야만 할 것 같은 감각이 들어서였다.
탁.
먼지를 털어내고 검의 손잡이를 붙잡자, 그의 머릿속이 가볍게 울리는 느낌이 들었다.
요한은 알 수 없는 위화감을 느끼며 천천히 검을 뽑아 들었다.
검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 매끄럽게 땅에서 뽑혀 나왔다.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검의 자태는 검에 대해 문외한인 요한이 보기에도 아름다웠다.
척 보기에도 명장이 공들여 만든 명검인 듯싶었다.
“으음……”
요한이 검을 휘두르려는 무렵, 갑작스레 목소리가 들려왔다.
[검의 지배자가 눈앞의 광경에 경악합니다!]
[자연을 사랑하는 자가 입을 쩍 벌립니다!]
[망치를 두드리는 자가 두 눈을 의심합니다.]
[불꽃을 내뿜는 자가 비늘을 벅벅 긁습니다.]
[털이 부족한 자가 자신의 털을 한 움큼 뽑습니다!]
그것은, 요한이 여태껏 들어본 적 없는 목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