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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뭇가지에 매달린 손 한 짝이 눈처럼 쌓여 있다

김태연, 「눈두덩이」 中

   | 창작 의도

   봄이 와도 겨울에 머무르는 사람들이 있다. 떠난 사람은 봄이 와도 눈 속에 묻혀 있고, 우리에게는 익숙한 사진과 빈약해지는 상상력만이 뭉쳐져 있다. 겨울에 남아 눈을 퍼내는 사람들이 있다. 떠난 사람의 손 한 번 잡아보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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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침을 맞이한 이들의 겁 많은 애도

   유독 무언가를 떠나보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수년 전 학창 시절 사용했던 낙서 가득한 공책부터, 연락 한 번 하지 않는 수십 명의 전화번호가 저장되어 있는 연락처, 그리고 지금은 내 옆에 없는 상대를 향한, 해소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쌓여 가기만 하는 묵은 감정까지. 혹자는 정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나는 그들을 겁이 많은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다. 겁이 많아서 한때 사랑했던 것을 떠나보내지 못하고, 정체되기를 자처하는 사람들이라고.

   살아가면서 사랑하던 대상을 떠나보내는 일은 필연적으로 일어난다. 그를 떠나보내고 마음을 회복하는 작업 과정을 ‘애도’라고 칭하는데, 정상적인 애도 과정을 겪는 이는 상실 이후 적응의 단계를 거쳐 일상생활로 복귀한다. 하지만 겁이 많은 사람은 애도 자체를 거부하거나 그 기간을 연장시키는 등의 병리적 애도 반응을 취한다. “눈밭에 떨어진 조약돌처럼 금세 파묻힐” 대상을 향한 감정을 보내지 못해 “눈을 퍼내는” 시 속 인물들처럼 말이다. 그들은 사랑했던 이의 얼굴이 희미하게 비친 얼음을 차마 “깨뜨리지 못해 미끄러”지기를 선택하고, 대상이 돌아오기를 바라며 “기다리고 기다리다 정류장이 되어버”리기까지 한다. 화자는 그런 그들에게 “푹신한 눈꺼풀을 이불처럼 덮어”주고, 손을 잡고 아침까지 녹아 가며 우울을 함께 견딘다.

   「눈두덩이」 속 인물들은 프로이트의 관점에서 보자면 실패한 애도를 수행하고 있다. 그러나 한겨울에도 “땀에 그을린 가슴”을 하고 눈을 퍼내는 사람들을 어떻게 ‘실패’했다고 할 수 있을까. 떠나버린 대상을 향해 “쭉 뻗은 손목”은 결국 가 닿지 못하고 “나뭇가지에 매달”리지만, 그렇더라도 자기 안으로 매몰되지 않고 뻗어냈다는 건 저들 나름의 애도 과정을 치르고 있다는 증명일 테다.

 

   시는 개별적이면서 공유적이고, 포괄적이면서도 지극히 개인적이다. 시에서 공유되는 경험은 세계 중에서도 매우 미시적인 부분이지만, 그를 통해 전달받는 감정은 우리 모두가 겪어본 적 있는 것이다. 「눈두덩이」는 추상적 개념으로부터 그려낸 구체적 형상의 내밀한 이야기를 통해, 우리로 하여금 시 속 화자에게 몰입하게 하고 더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키도록 한다.

D, W. 김유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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