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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序) 투신(鬪神)

 

 

 

   출진 명령이 떨어졌다.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던가.

 

   내게 거추장스러운 갑주 따위는 필요 없다.

   싸움에 방해만 될 뿐이니까.

 

   오직 이 육체와 무기 한 자루면 충분하다.

 

   “자, 나가볼까?”

 

   옆에 세워둔 창을 집어 들었다.

 

   청룡이 무기에 그대로 담긴 듯한 자태.

   자루에 똬리를 튼 몸체와 창날을 단단히 고정하고 있는 머리.

   용머리가 물고 있는 여의주로부터 쭉 뻗어 있는 창날은, 대장장이 신이 천상 최고의 금속으로 심혈을 기울여 담금질해 무척 얇으면서도 날카로웠다.

 

   밖으로 나가자 백마가 푸르릉거렸다.

 

   발굽을 가만 놔두지 않고 연신 바닥을 긁어대며 내게 시선을 보냈다.

   빨리 등에 타고 전장을 휘저어 달라는 듯이.

 

   바람을 이루어주기 위해 사뿐히 안장에 올라타 고삐를 쥐었다.

 

   “달리고 싶어서 온몸이 근질거리냐? 나도 그래!”

 

   몸을 풀듯 서서히 말을 움직였다.

   백마도 주인의 마음을 아는지 콧김을 뿜으면서도 천천히 걸었다.

 

   전장을 바라봤다.

 

   상대는 상제에게 반역을 일으킨 옛 신들.

   첫 출진부터 이런 거물들과 맞붙다니 이 얼마나 행운인가.

 

   난 마상에서 창을 휘둘러보는 것으로 준비를 마쳤다.

 

   “죽음이 두렵다면 내 앞에 서지 마라!”

 

   극성의 사자후를 토하며 참전을 알렸다.

   박차를 가하자 백마가 질풍같이 달려 나갔고, 등 뒤에서는 북이며 징을 난타해 진동을 울렸다.

 

   한 차례 사자후와 타악기 소리가 울려 퍼진 뒤, 전황은 일변했다.

 

   내가 서로 뒤엉켜 싸우는 두 세력 사이에 뛰어들었기 때문이었다.

   굶주린 창끝은 피아를 가리지 않았다.

 

   난 분명 앞에 서지 말라고 경고했다.

 

   더 이상 말은 필요 없었다.

   앞을 가로막는다면 누구든 섬멸한다.

 

   설령 아군이라도 방해가 된다면 마찬가지다.

 

   “크하하하하!”

 

   이윽고,

   투신의 권능을 해방한 내 입에서 광소가 터졌다.

   그리고 이 광소는 전장에 불어올 피바람을 예고하는 전주곡이 되었다.

 

   백마가 혼란스러운 전장을 가로질렀다.

 

   찌르면 적의 등판이나 급소를 꿰뚫고,

   휘두르면 적의 어깨, 허리, 목뼈 할 것 없이 잘려 나가거나 박살이 났다.

   난 그야말로 창끝만이 아니라, 창의 모든 부분을 써 적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어떨 때는 타고 있는 말까지 함께 꿰기도 하고,

   창날의 예리함을 십분 이용해 적을 무기째로 베어 내기도 했다.

 

   그렇다고 창에만 의존하지는 않았다.

   투신이 되어 전투에 최적화된 육체를 썩혀 두기에는 아까웠으니까 말이다.

 

   백마를 노리는 검을 걷어찼다.

   후방에서 찔러 오는 창을 피한 뒤 옆구리에 끼우고 부러뜨렸다.

   부러진 창도 버리지 않고 살뜰히 암기로 사용했다.

   가끔은 무기를 잡아 주인과 함께 던져버리기도 했다.

 

   난 투신이다.

 

   싸우기 위해 단련을 거르지 않고,

   어떤 위기에든 대처하기 위해 모든 무구를 다루며,

   그 누구보다도 강해지기 위해 강자와의 전투를 갈구하는.

 

   억압의 굴레를 벗어던지기 위해 싸우는 투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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