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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화 흉조(1)

 

 

 

   한낮의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푸르렀다.

 

   하압!

 

   두 손에 힘을 가득 실어 창을 내질렀다.

   가공할 완력으로 내질러진 창날을 견디기에 대기는 너무나도 약했다.

 

   피잉.

 

   일말의 군더더기도 없는 청아한 파공음이 들려왔다.

   창끝에서 무형의 폭발이 일어난 것 또한 거의 동시였다.

   지금껏 참아 왔던 숨을 내쉬며 내 창이 만들어낸 걸작을 감상했다.

 

   충격파가 구름을 일직선으로 뚫고 지나갔다.

 

   질풍은 한동안 진정될 생각이 없는 듯 구름을 헤집었고, 그것이 지나간 곳은 예외 없이 반구형으로 깎여 나갔다.

 

   여파에 말려든 구름들은 마치 그믐달과 초승달이 일렬로 늘어선 듯한 형태가 되었다.

 

   난 이 작품에 ‘달구름 길’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제법 만족스러운 작품이 아닌가.

 

   “역시 수련은 기분 좋단 말이지. 왜 다들 이런 좋은 걸 기를 쓰고 안 하려 하는지…….”

 

   당최 이해가 가지 않았다.

 

   신좌에 오른 자가 어찌 단련하느냐는 상제도,

   강해지고 싶다면 법력이나 선술을 익히면 되지 않느냐는 천녀도,

   붓이 칼을 이긴다며 무력을 천시하는 노군도.

 

   정작 내 무력에 목숨을 빚진 자들이 입만 살았다.

 

   “그렇지, 통천?”

 

   통천.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전장을 함께 헤쳐 온 신병이기(神兵利器). 이젠 일심동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구불구불한 용무늬가 양각된 창 자루를 쓰다듬자 이에 호응하듯 금색으로 빛났다.

 

   “음?!”

 

   통천이 빛을 발한 순간, 창날 쪽에서 위화감이 느껴졌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금이 가 있었다.

 

   “금이 가다니……. 내가 널 오래 쓰긴 했나 보다.”

 

   신병이라고 해도 영원불멸한 것은 아닌 모양이다.

   나는 그 길로 대장장이 신을 찾아갔다.

 

   “아니, 이 단단한 걸 어쩌다 흠집을 냈단 말인가? 앞으로 천 년은 거뜬했을 텐데……?”

 

   통천과 나를 번갈아 곁눈질하던 대장장이는 짚이는 점이 있는지 한숨을 내쉬었다.

 

   “혹시 자네……. 수련할 때 이걸 들고 한 건 아니겠지?”

   “맞는데.”

   “아이고, 이 화상을 어쩌면 좋을까. 뒷골이……!”

 

   제아무리 신병이라도 내구에 한계는 있기 마련이다.

   그 무지막지한 수련을 전부 소화하고도 이만큼 버틴 게 용할 지경이다.

   고쳐주는 것은 이번뿐이니 다시는 수련할 때 통천을 쓰지 마라.

 

   잔소리가 한바탕 폭풍처럼 지나갔다.

 

   “아, 혹시 흉조일지도 모르니 몸조심하라고.”

   “알았네.”

 

   이 말을 끝으로 대장간의 육중한 철문은 굳게 닫혔다.

 

   “방식을 달리해야 하나……?”

 

   역시 강해지는 길은 어렵고 멀다.

 

 

 

***

 

 

 

   “전부 모였는가.”

 

   근엄한 목소리가 상제궁(上帝宮)에 울려 퍼졌다.

 

   자리에 앉아 있던 신들이 일제히 기립했다.

   몇 자리가 비어 있었지만 크게 신경 쓸 신들은 아니었기에 상제는 말을 이어 갔다.

 

   “제군들이 무탈한 것 같아 안심했네. 부른 이유에 대해서는 전해 들었을 것이오.”

   “투신 말씀이십니까?”

   “그렇소!”

 

   ‘투신’이라는 이름이 나오자 상제는 자기도 모르게 노호성을 질렀다.

   말을 꺼냈던 신을 비롯해 하급 신 몇몇이 움츠러들었다.

   상제는 헛기침을 하고는 본론으로 넘어갔다.

 

   “바로 그 투신 말인데, 이대로 두면 필시 우리에게 위협이 될지도 모르겠소.”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지만 다른 신들도 우려하던 일이었다.

   같은 신이라는 위치임에도 대놓고 말을 하지 못한 이유는 단 하나.

 

   무서울 정도로 강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신들 대다수가 천상대전에 참전했던 자들이다.

 

   투신의 경이로운 전투력을 두 눈으로 목도했기에, 그 앞에서는 도저히 평상시처럼 안하무인 격으로 행동하기가 어려웠다.

   최상급 신쯤 되면 그나마 형편이 나았지만, 이들마저도 심기를 거스르면 얻어맞기 일쑤였다.

   ‘일기토’라는 명목으로.

 

   그런데 바로 지금, 불문율과도 같던 화두를 다른 누구도 아닌 상제가 꺼낸 것이다.

 

   이를 들은 신들은 두 파벌로 나뉘었다.

 

   평소에 투신을 아니꼽게 보던 강경파.

 

   투신과 싸운다면 천상에 막대한 피해가 일어날 것이라는 온건파.

 

   이 두 파벌로 말이다.

 

   “소신 나타, 상제께 아뢸 말이 있사옵니다.”

   “나타 공인가. 말해보시오.”

   “투신은 천상대전이라는 고비가 지나갔음에도 불구하고 하루도 수련을 거르지 않고 있사옵니다. 언젠가 닥쳐올 위협에 대비하기 위함이라 볼 수도 있겠으나, 소신이 보아온 그는 그리 명석하지 못합니다. 필시 상제께, 천상에 대한 반역을 꾸미고 있다 사료되오니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상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노부도 한 말씀 올려도 되겠는지요?”

   “이견이 있는가? 태상노군.”

   “어찌 옥음에 이견이 있겠습니까. 설사 다른 뜻이 없다손 치더라도 그가 가진 힘 자체가 위험한 것임은 사실이지요.”

   “그렇지.”

   “다만 그와 전투를 치르게 되면 천상이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지 않을까 염려되옵니다.”

 

   이 또한 충분히 일리 있는 말이었다.

 

   천상대전에서 봤던 투신은 그야말로 악귀 야차 같았다.

   그가 전장에 뛰어든 순간, 펼쳐진 건 전투가 아니라 일방적인 살육의 장이었다.

   비록 적군이었지만, 일방적으로 유린당하는 광경을 보고 있자니 없던 자비심도 샘솟을 지경이었다.

 

   노군의 말대로 그런 악귀를 무턱대고 상대했다간, 어느 정도의 피해가 나올지 헤아릴 수 없을 것이었다.

 

   “그렇다면 묘안이라도 있소?”

   “그것은…….”

 

   천상에서 지혜로 정평이 난 태상노군이었으나 별다른 책략이 떠오르지 않았다.

 

   싸워야 할 상대가 터무니없이 강한 탓이었다.

 

   인간들이 아무리 모여도 천재지변 앞에서는 무력한 것과 같은 이치.

 

   하물며 상급 신보다도 아득히 높은 경지에 있는 투신은……. 무엇을 더 말하겠는가.

 

   아무리 그럴듯한 계략을 짠다고 해도 보란 듯이 힘으로 부수고 상대의 목에 칼을 겨눌 수 있는 자, 그것이 투신이었다.

 

   “방법이라면 있사옵니다.”

 

   말을 꺼낸 것은 천녀였다.

 

   노군은 조금 자존심이 상했지만, 어떤 방법일지 궁금해 구체적인 계획을 물었다.

 

   “정공법이 통하지 않는다면 금술(禁術)이라도 써야지요.”

   “금술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다면 노부가 머리를 싸매겠나.”

   “후후, 제가 알고 있는 금술 중에는 노군의 생각보다 훨씬 위험한 것들이 많답니다?”

 

   이후 천녀의 입이 열렸고, 설명을 듣고 난 신들의 표정은 네 글자로 표현할 수 있었다.

 

   대경실색(大驚失色)이라는 네 글자로 말이다.

 

 

 

***

 

 

 

   통천이 없으니 공허했다.

 

   모처럼 찌르기의 극한에 도달했는데 그 감각을 다시 느낄 수 없다는 게 아쉬웠다.

 

   그렇다고 천병에게서 창을 빌리는 것 또한 불가능했다. 빌릴 수야 있겠지만 보통 무기로는 내 힘에 견디지 못하고 부서질 게 뻔했다.

 

   차라리 없느니만 못하지.

 

   맨손으로 시늉이라도 해보고는 있지만 허전한 기분은 어쩔 수가 없었다.

 

   “이럴 바엔 정권을 수련하는 게 낫겠군.”

 

   지체하지 않고 정권 자세를 잡았다.

 

   왼발을 강하게 앞으로 딛고.

   동시에 오른 주먹을 한껏 뒤로 당겼다.

   흉부까지 올라온 왼팔을 뒤로 빼는 탄력으로 주먹을 쏘아-.

 

   아니, 쏘려고 했다.

 

   “계신지요?”

 

   갑자기 들려온 말소리만 아니었다면.

 

   수련을 방해받아 짜증이 올라왔지만, 객을 기다리게 할 순 없어 내색하지 않고 문을 나섰다.

 

   서 있는 것은 예상 밖의 인물이었다.

 

   누에 실을 뭉쳐 곧게 편 듯한 아름다운 백발, 목에 두른 하얀 여우의 모피……. 천녀였다.

 

   “지체 높으신 분께서 이런 누추한 곳에 무슨 일로 오셨을까?”

   “후후, 전일 본녀가 무력을 천시하는 말을 했다고 아직 토라져 있으신가요? 그렇다면 사과의 뜻도 겸해서 좋은 소식을 가져왔는데 들어보시겠어요?”

 

   ‘좋은 소식’.

   솔직히 구미가 당기지 않는다면 거짓이다.

   쓸 일이 없어 둔해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예리한 직감이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이 불여우 같은 계집이 아무런 대가 없이 좋은 소식을 가져올 리가 없다.

 

   대장장이가 한 말도 신경 쓰였다. 통천이 알려준 흉조라는 게 이걸 말하는지도 몰랐다.

 

   “마음은 고맙지만 사양하겠소.”

   “요즘 싸우지 못해 안달이 나지 않으셨나요?”

   “……!”

 

   천녀의 말에 몸이 움찔했다.

   이 여자가 기껏 지금까지 억눌러왔던 투쟁 본능을 건드렸다.

   한 번 일깨워진 본능은 의지와 상관없이 피를 끓게 했다.

 

   천상대전 이래 제대로 된 싸움을 해본 적이 있었던가.

 

   맹세코 없다고 할 수 있다.

 

   왜 지금 와서야 이런 말을 하는지, 그 저의가 무엇인지 따위 이젠 아무래도 좋다.

 

   난 투신이다.

   전투는 업이며 몇 없는 낙이다.

   전장이야말로 특기를 십분 발휘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였다.

 

   미칠 듯이 고양된 기분을 누르며 애써 침착한 목소리로 물었다.

 

   “상대는…… 누구지?”

   “차기 투신감이라던데, 실망스럽진 않을 테니 걱정 마시길.”

 

   제기랄, 상대라도 시시했다면 팍 식었을 텐데.

   차기 투신이라니 얼마나 굉장한 놈일지 기대되기 시작했다.

 

   천녀를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걷고 걸어 도착한 곳은 순백의 투기장이었다.

 

   입구에 들어서니 회랑이 보였다. 평상시의 나였다면 감탄을 연발할 정도로 그 위용이 대단했으나, 본능이 일깨워진 지금 그런 감정은 전혀 들지 않았다.

 

   그저 싸움을 지연시키는 장애물일 뿐이었다.

 

   “여기만 지나가면 되는 건가?”

   “한시라도 빨리 싸우고 싶은가 보네요. 그런 줄도 모르고 이렇게 천천히 걸어왔다니 실례……. 먼저 가시죠.”

 

   더 들을 것도 없이 내 몸은 이미 뛰쳐나간 후였다.

   만에 하나 천녀가 무언가를 획책하고 있다 한들 상관없다.

   어떤 함정을 준비했든 무력으로 강행돌파하면 그만이니까.

 

   지금 중요한 것은 차기 투신이란 놈이다.

 

   “얼마나 강할까~!”

 

   이 천상에서 투신이 둘이나 존재할 순 없다.

   투신은 신들 사이에서 무력이 가장 강한 이를 말한다.

   내가 변고를 당한 것도 아니고, 노쇠하지도 않았으며 실력이 감퇴한 것도 아니다.

   그런데 차기 투신을 뽑았다는 건……? 최소한 나와 합은 겨룰 수 있는 실력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겠지.

 

   기대된다.

 

   너무나도 기대돼서 참기가 어렵다.

 

   마침내 강렬한 빛이 시야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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