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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화 흉조(2)

 

 

 

   “왜 이리 늦게 오셨습니까, 선배님? 제가 무서워서 꽁무니라도 뺀 줄 알았습니다.”

   “내 뒤를 이을 투신이란 게 너냐?”

 

   시작부터 날 도발하는 패기만큼은 높이 사겠다.

   하지만 외관으로 보나 느껴지는 투기로 보나 솔직히 기대 이하였다.

 

   투신이라는 놈이 저렇게 왜소해서야…….

 

   미칠 듯이 끓던 피가 단박에 식어버렸다.

 

   “다시 물으마. 정말 네가 내 상대라는 거냐?”

   “제 검을 받아보면 알게 될 겁니다.”

   “오호.”

 

   이렇게 말하는 걸 보면 진짜인 것 같기도 했다.

 

   눈을 씻고 다시 봐도 상대의 눈빛은 결연했다. 그렇다면 더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오랜만에 느껴도 살벌한 투기로군.”

   “동감입니다.”

 

   투신의 몸에서 투기가 맹렬하게 발산됐다.

   물론 전력이 아니었다. 전력은커녕 힘의 2할이나 썼을까 의문이었다.

   적어도 상제나 다른 신들에게는 그렇게 느껴졌다. 전력으로 투기를 발산했다면 하급 신들은 그 즉시 혼절했을 테니 말이다.

 

   짐작건대 상대를 시험하고 있는 듯했다.

 

   상제가 본 바,

   맞은편에 있는 어린 투신의 몸이 사시나무 떨듯 떨리고 있었다.

   애써 떨림을 억제하고 있는 듯했지만, 원초적인 공포까지는 어쩔 수 없던 모양이다.

 

   신들은 놀라고 있었다.

 

   아무리 투신이 힘의 반의반도 쓰지 않았다곤 하나,

   어지간한 중상급 신들도 아무렇지 않을 것이라고는 장담할 수 없을 것이었다.

   그런 투기를 새파랗게 어린 신이 정면으로 받고도 기절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신들에게 미약한 기대감을 심어주었다.

 

   “어쩌면 가능성이 있을지도 모르겠군.”

 

   천녀가 제안한 일계(一計).

   그 핵심이 될 자가 저 어린 투신이라 했다.

   상제 역시 투신과 마찬가지로 처음 봤을 때는 못 미더운 인상에 표정을 구겼다.

 

   하지만 저 투기에 견뎌내는 모습을 보니 조금은 희망이 생겼다.

 

   투신은 발산하던 투기를 거둬들였다.

   그의 눈에서 당혹을 엿볼 수 있었다.

   가볍게 발산한 투기였다지만 정말로 견뎌낼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그 침묵도 잠시, 투신은 목청껏 웃음을 터뜨렸다.

 

   메아리가 채 멎기도 전에 시야에서 투신의 신형이 사라졌다.

   곧이어 엄청난 폭음이 일대를 뒤흔들었다.

 

 

 

***

 

 

 

   휘익~

 

   가볍게 휘파람을 불어줬다.

   불시에 들이닥친 주먹을 막아낸 것에 대한 일종의 칭찬이었다.

   완벽히 흘려내지 못했는지 사색이 되었지만. 천상대전 때 내 일격에도 견디지 못해 터져나간 신들보단 훨씬 나았다.

 

   확실히 전투에 소질이 있다.

 

   지금 당장은 어리고 약할지언정, 제대로 이끌어 줄 스승을 만난다면 대성할 것이다.

   차기 투신으로 점찍은 게 잠재력을 높게 평가한 것이라면 납득할 수 있었다.

 

   ‘지금 싹을 뽑아버리기엔 너무 아까운데…….’

 

   아까웠지만 어쩔 도리가 있나.

   투신임을 칭한 이상 누구 하나 결딴날 때까지 싸워야 했다.

 

   차라리 강해지고자 내게 가르침을 청했다면.

   그랬다면 성심성의를 다해 가르쳐 정식으로 내 뒤를 잇게 할 수도 있었을 터.

 

   제자도 길러보고 싶었건만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주먹을 거두고 거리를 벌렸다.

 

   “투신이 되고 싶나?”

   “……!”

   “그렇다면 잡다한 것은 필요 없다. 네가 가진 힘으로 증명하면 된다.”

 

   오랜만이라는 말 가지고는 턱없이 부족할 정도로 유구했던 세월 속.

   모처럼 내 일격을 받아내는 재목을 찾았다.

 

   줄곧 전투에 목말라 있던 나를 위해서도.

   차기 투신으로 선발된 저 꼬마의 자질을 위해서라도 쉽게 끝내줄 생각은 일절 없다.

 

   날 넘어서기까지 바라는 건 욕심이겠지만 최소한 내 기억에 각인될 전투를 보여줬으면 한다.

 

   “선수는 양보해 주마.”

 

   대놓고 자세까지 풀었음에도 상대는 쉽사리 덤벼 오지 않았다.

   본능적으로 무언가를 경계하고 있는 듯했다.

   입가에 절로 미소가 떠올랐다. 오히려 바로 덤벼들었다면 크게 실망했을 것이다.

 

   투신쯤 되면 어지간한 상대는 일격에 보낼 수 있게 된다.

   설령 자세를 취하지 않고 있다고 해도 말이다.

   가끔 그 전에 더 빠르게 치명타를 먹이면 되지 않느냐며 도전하는 머저리들도 당연히 있었다.

 

   물론 이론과 실전에는 극명한 차이가 있었고.

   이렇게 떠들어댄 녀석들은 빠짐없이 삼도천 뱃사공에게 보내줬다.

 

   하지만 상대도 투신이라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진다.

 

   어느 쪽이든 까딱 방심했다간 일격에 승패가 갈리게 되니까.

 

   ‘원래라면 서로 확실하게 일격을 꽂아 넣을 수 있을 때까지, 상대의 수를 예측하고 또 예측해야 하는 피곤한 대결이 됐겠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실력이 동등한 수준이었을 때의 이야기.

 

   지금 저 꼬마 투신의 머릿속은 터질 지경일 것이다.

 

   상대는 맨손이며 자신은 검, 그것도 신병을 들어 유리한 위치임에도.

   내게 치명타는커녕 일격이라도 제대로 먹일 상황이 떠오르지 않을 테니 말이다.

 

   다음에는 어떤 수를 취할 것이냐.

 

   ‘무의 정점에 오르는 데 자질만으로는 부족하지. 어떤 식으로 대응해올지 볼까?’

 

   전투는 한동안 고착 상태였다.

   따분했는지 신들 사이에서 아우성이 터져 나왔다.

   시간도 썩어나는 것들이 성질머리만 급해선……. 마음 같아선 조용히 하라고 일갈하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아주 작은 허점이라도 드러날 수 있다.

 

   음?

 

   돌연 꼬마에게서 꽤 강렬한 기운이 느껴졌다.

   점차 힘을 더해간 기운은, 몸이라는 울타리에서 벗어나 하나의 덩어리가 되어 용솟음쳤다.

   워낙 갑작스레 느껴진 기운에 나조차도 한순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꼬마도 그걸 느꼈는지 기운을 검에 모으기 시작했다.

   차츰 기운이 모여감에 따라 칼날이 눈부시게 반짝이며 주변 대기를 진동시켰다.

 

   이윽고 우렁찬 기합과 함께 한줄기 섬광이 허공을 갈랐다.

 

   베어 올린 검의 궤적에서 새하얀 반월이 태어났고, 투기장 바닥을 가르며 거침없이 내게 달려왔다.

 

   “방어고 회피이고 상관없이 상대를 분쇄하는 일격이라……. 하핫, 화끈한데? 마음에 들어!”

 

   정통으로 맞는다면 어떤 신도 뼈를 못 추릴 것이다.

   삼두육비가 된 나타태자라도 이걸 맞고 무사하다고 장담은 못하겠지.

 

   맞는다면 말이지만.

 

   왼발을 세차게 굴렀다.

   충격파와 부딪힌 반월이 무형의 벽에 가로막힌 것처럼 기세가 꺾였다.

   아까 전까지 멧돼지를 연상케 하는 기세였다면, 지금은 뭍에 올라온 거북이다. 내 눈에는 거의 멈춰 있는 상태나 다름없게 보였다.

 

   느려진 반월은 더 이상 위협이 되지 못했다.

   난 이어서 반월의 중심부를 노리고 두 손뼉을 마주쳤다.

 

   파캉-

 

   옥구슬 깨지듯 청량한 소리가 장내 구석구석 퍼졌다.

   이 순간만큼은 자리에 있던 모두가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반응이랄 것도 없었다. 하나같이 입을 떡 벌린 채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았으니까.

 

   높은 곳에 앉아 전투를 지켜보던 상제도, 다른 신들도, 다음 공격을 준비하던 꼬마 투신도.

 

   그들의 시선은 내 양손에 꽂혀 있었다.

   내 두 손 사이에는 불과 일 초 전까지 반월이었던 것이 끼어 있었다.

   대부분이 산산이 조각난 극히 일부의 파편만이. 그마저도 서서히 형체를 잃어 희미해져 가는 상태였다.

 

   박수에 인해 부서진 반월은, 때 아닌 우박으로 모습을 바꿔 투기장 안에 쏟아졌다.

 

   “듣던 것보다 훨씬 괴물이시네요, 선배님…….”

 

   한참의 침묵 속, 처음 입을 연 것은 꼬마였다.

   허탈했는지 약간 힘이 빠진 목소리였다. 전력을 다한 공격이 허망하게 부서졌으니 당연한 일이다.

   이쯤이면 패배를 인정할 법도 했지만, 꼬마의 두 눈에는 아직 포기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불꽃이 이글거렸다.

 

   자세를 다잡은 꼬마는 그대로 돌진했다.

   그리고 피를 토하듯 비명을 지르며 검을 휘둘렀다.

 

   기력은 거의 담겨 있지 않았어도 공격 궤도가 예사롭지 않았다.

   일격마다 급소를 노리는 정밀함.

 

   동시에 아홉 방위를 공격하는 속도.

 

   체력 소모가 심한 공격을 숨결 하나 흐트러지지 않고 이어가는 지구력.

 

   다른 식으로 만났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콰악!

 

   마음을 독하게 먹었다.

   목을 노리고 날아드는 칼날을 우악스럽게 잡아챘다.

   그리고 내 쪽으로 확 끌어당겨, 칼자루를 놓지 않은 채 딸려 오는 꼬마의 복부에 발차기를 꽂았다.

 

   “케헥……!”

 

   어쭈?

 

   꽤 힘을 실은 발차기였는데도 놓지 않다니. 이건 나도 좀 놀랐다.

   원래 무기부터 뺏어 무력화할 심산이었지만…….

 

   더 이상 덤벼들진 못할 테니 됐나.

 

   “만약 내세에도 날 만난다면 제자로 들어와라. 그땐 열성을 다해 널 투신으로 키워주마.”

 

   즐거웠던 시간에 끝이 도래했다.

   승자로서 패자에게 영면을 내려줄 시간이다.

 

   잡았던 칼날을 놓았다.

   검을 뺏어 죽일 수도 있었으나, 자신의 무기에 죽는 비참한 결말을 맞이하게 하고 싶진 않았다.

   불굴의 투지와 정신력을 보여준 이 어린 투신에게는 마땅히 경의를 표해야 한다.

 

   최고의 예의는 통천을 사용하는 것이겠지만 공교롭게도 지금은 내 손에 없다.

   그렇다면 맨손인 내가 할 수 있는 최강의 공격.

   ‘권의 극’으로 눈을 감겨 주겠다.

 

   오른팔을 허리춤으로 가져가 손가락을 마디마다 힘 있게 말아 쥐었다.

   낭비되지 않게끔 서서히 힘을 올렸다.

 

   팔이 힘을 담을 수 있는 한계에 도달했음을 느꼈고,

   있는 힘껏 주먹을 앞으로 뻗었다.

 

   인지를 초월한 속도에 견뎌내지 못한 공기들이 고리 모양으로 퍼지기를 수없이 반복했다.

 

   이걸로 어린 투신의 육체는 흔적도 없이 분쇄된다.

   그리고 삼도천을 건너겠지.

 

   초장의 일격과 달리 이번 공격은 조용했다.

   폭발이란 닿은 것이 어느 정도 충격을 견뎌냈을 때 일어나는 것.

   너무나도 강한 힘이 가해진다면 아예 견뎌내지 못하고 가루가 되기에 이른다.

 

   그렇기에 소리가 나지 않는다.

 

   이것이 권, 나아가 타격의 극.

   상처 입은 어린 투신에게 안식을 내려줄, 소리 없는 사신의 일격이었다.

 

   “굉장하네요……. 그래도 더욱 높은 경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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