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레벨 업 (2)
“으아아아!”
망했다. 조심스레 도망가려고 했는데 녀석들에게 들키고 말았다.
바닥과 벽, 심지어 천장까지 이동 경로로 삼아 정신 나간 스피드로 쫓아오는 마물.
그 수는 이제껏 본 어느 마물보다 많았다.
공포를 느꼈다.
“크윽!”
[스킬, ‘던지기’를 사용합니다.]
[스킬, ‘던지기’를 사용합니다.]
[스킬, ‘던지기’를 사용합니다.]
마구잡이로 주위의 돌을 집어서 던졌지만, 마물의 군세는 너무나도 견고했다.
“젠장, 튀어!”
“네!”
소년의 등을 따라 계속해서 달렸다.
코너를 두 번 돌고, 계단으로 올라가서 한 번 슬라이딩.
하지만 그런데도 녀석들은 쫓아오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다.
끈질긴 놈들이다.
이대로라면 따라잡힌다. 어떻게 하지? 무슨 방법이 없나?!
“내가 하겠어!”
이 사람, 분명 치유나 해독밖에 못 쓴다고⋯⋯.
“바람의 정령이여, 거세게 휘몰아쳐라. ‘윈드 캐논’!”
영창이 끝나자, 소년의 지팡이 끝에서 보이지 않는 충격파가 튀어나왔다.
충격파는 순식간에 도달해 적들을 요격.
하지만 위력은 얕다.
잠시 진형을 흩트려 놓는 정도밖에 되지 못했다.
쫓아오던 녀석들의 일부, 특히 전방에 서 있는 것들은 흔적도 없이 분쇄되었지만 그래도 아직 남아 있는 녀석들이 있다.
“쳇, 역시 초급으로는 안 되나⋯⋯.”
“다른 공격 마법은요?!”
“없어! 애초에 나는 치유사라고!”
야단났다.
쓰러뜨려도 쓰러뜨려도 끝이 없다. 차례대로 계속 튀어나왔다.
[스킬, ‘던지기’를 사용합니다.]
몇 마리가 돌에 맞아 파편을 흩뿌리며 터져나갔다.
[리바운드: 스킬 사용 시, 무게에 따른 반동이 주어집니다.]
“큭!”
처음엔 견딜 수 있을 정도의 통증이었지만 갈수록 팔에 부담이 심해지고 있다.
소년의 마력은 이미 절반 이하. 아마 치유 마법의 지원도 기대하기 힘들겠지.
하지만 던지는 것을 멈추면 죽는다.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위험: C급 마물, ‘클로프’는 피하는 것이 상책입니다. 전력으로 도주하십시오.]
그래. 알고 있다고!
“키에에엑!”
한 마리씩 쓰러뜨려 갈 때마다 소름 끼치는 소리가 던전 내에 울려 퍼진다.
녀석은 치명상을 입으면 주변에 소리를 내어 마물을 끌어들이는 구조로 되어 있다.
마치 벌레들이 짝을 찾기 위해 소리를 내는 것처럼.
벌써 소리를 듣고 딸려 온 마물들이 시야 끝에서 보이기 시작했다.
당장 눈에 보이는 클로프만 해도 수십 마리.
잡혔다간 꼼짝없이 갉아 먹히며 고통에 몸부림치다 죽게 되겠지.
그런 건 사양이다.
[경고: 오른쪽 팔의 데미지가 한계에 도달했습니다. 다음 스킬 사용부터 탈골될 가능성이 일부 존재합니다.]
“이런⋯⋯.”
오른쪽 팔은 이제 못 쓴다. 점점 이쪽이 쓸 수 있는 카드가 줄어들고 있다.
“키에엑!”
그러는 사이에 클로프 무리는 어느새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대지의 정령이여, 견고한 은총을 이곳에 재현하리라. ‘어스 월’!”
소년의 다급한 영창이 끝나자, 지면에서 3m 정도의 벽이 솟아올랐다.
임시방편은 되겠지만, 이 두께로는 쏟아지는 마물을 버틸 수 없다.
“신입, 막아!”
“아, 알겠습니다!”
심호흡하고 전력을 다해 벽을 밀어붙였다.
“무, 무슨 힘이 이렇게⋯⋯.”
하지만 마물들의 기세는 꺾일 줄을 몰랐다.
녀석들이 벽에 부딪힌 직후 충격이 일어 뒤로 튕겨 나갈 뻔했지만, 이를 악물고 버텨냈다.
상상 이상으로 무거웠기에 당장이라도 밀릴 것 같았다.
그러나.
“어?”
쩌적.
시야에 금이 간 벽이 들어온 것은 그다음이었다.
뒤는 이미 막다른 길.
도망칠 곳 따윈 더 이상 없었다.
외통수다.
“크윽, 대체 뭐 하다가, 이딴 곳에⋯⋯ 갇힌 건데요?!”
“멍청아! 네가 함정을 밟은 탓에 이렇게 된 거잖아!”
함정?
무슨 소리래. 그딴 걸 밟은 적은⋯⋯ 아니, 이건 아마 내가 빙의 당하기 전의 일이겠지.
“원래는 적당히 3층 정도만 탐색하고 돌아갈 생각이었어⋯. 근데 신입. 네가 멍청하게 함정으로 넘어지는 바람에 나까지 7층으로 전이 당했다고!”
“그거, 죄송하게⋯⋯ 됐네요!”
이런 상황에 싸워봤자 의미는 없다.
소년이 흙 마법으로 만들어 낸 벽으로 내가 어떻게든 막고 있지만, 아무래도 곧 부서질 것 같다.
끝인가.
“⋯⋯어쩔 수 없나. 비켜.”
“예? 무슨 미친 소리를⋯.”
“불의 정령이여, 뜨거운 열기로 적을 남김없이 불태워라. ‘파이어 볼’!”
순간, 새까맣던 눈앞이 번쩍 빛났다.
축구공 정도의 크기를 지닌 그 불덩어리는, 조금의 시간차도 없이 날아가서 남아있던 클로프들을 전부 불살랐다.
“키에에에엑!”
귀를 막았다.
마물을 불러 모으는, 소름이 돋을 정도의 소리가 중첩되어 발생했다.
“으윽⋯⋯.”
옆을 바라보니 소년은 힘이 빠진 듯한 모습으로 고개를 푹 떨구고 있었다.
마력이, 고갈된 건가?
“저 방향으로⋯⋯ 뒤돌아보지 말고, 계속해서 뛰어⋯⋯.”
소년은 그 말을 끝으로 정신을 잃었다.
그가 기절하기 직전 손끝으로 가리킨 방향.
그래. 조금 전 마지막으로 발한 파이어볼이 주위를 화악하고 밝혔을 때 틀림없이 보았다.
저곳에 출구가 있다.
‘이런, 연기가⋯⋯.’
저번에도 말했지만, 이런 밀폐된 공간에서 불을 쓰는 것은 자살 행위에 가깝다.
일산화탄소 중독. 다시 말해서 해독할 수 없는 독이 발생하게 되니까.
소년은 그 위험을 무릅쓰고 마지막 도박을 건 거다.
내가 그걸 헛되이 만들 수는 없겠지.
옷의 일부를 찢어 코와 입을 막고 소년을 들었다.
[스킬, ‘상차’를 발동합니다.]
생물은 못 든다.
하지만 옷이라면 물체이기 때문에 들 수 있다.
스킬의 효과로 장비나 옷의 무게는 0에 한없이 가까워지게 되겠지.
물론, 그렇다고 해도 소년의 무게는 줄어들지 않는다.
“⋯⋯.”
어림잡아 12살 전후의 몸.
다소 몸이 튼튼한 것 같기는 해도, 어디까지나 어린애의 몸이다.
소년의 무게를 버티면서 마물을 피해 도망치는 것이 가능할까?
⋯⋯아니, 여기서 이런 고민을 해봤자다.
살아서 나가는 거다. 이런 곳에서 죽을까 보냐.
나는 죽음을 각오했다.
“⋯⋯해 보겠어.”
곧바로 벽을 부수고 앞으로 뛰쳐나갔다.
2미터쯤 돼 보이는 마물 몇 마리가 눈치채고서 돌진해 왔지만 아직은 내 쪽이 더 빠르다.
‘지금!’
미리 주워두었던 벽의 파편.
남은 한 손으로 멀리서 뭔가를 쏘는 마물을 저격한다.
“큭!”
[스킬, ‘던지기’를 사용합니다.]
스스로도 놀랄 만큼 그 위력은 강했으리라고 생각한다.
한발 늦게 파열음이 들림과 동시에 녀석은 곤죽이 된 상태로 지면에 털썩 쓰려졌다.
“크오오오!”
“!”
정신이 팔린 사이에 뒤에서 마물이 크게 앞발을 휘둘렀다.
하지만 느리다.
충분히 반응할 수 있는 속도다.
“다리 장비를 들어 올려!”
[스킬, ‘상차’를 사용합니다.]
몸이 공중에 붕 떴다.
“윽!”
머리에 피가 쏠린다.
마치 다리만 잡힌 채로 허공에 매달린 듯한 느낌이라 전신이 욱신거렸지만, 어떻게든 저 육중한 공격을 간신히 피할 수 있었다.
맞았다면 분명 죽었으리라.
“해제!”
[스킬, ‘하차’를 사용합니다.]
곧바로 지면에 착지. 뒤돌아보지 않고 일직선으로 달린다.
조금만 더. 목적지가 바로 코앞이다.
구르듯 달렸다.
“키엑?”
따라잡히기 직전, 간신히 출구 쪽으로 뛰어들었다.
“⋯⋯.”
올라오나?
그런 걱정이 무색하게도 녀석들은 자신의 영역이 아니란 것을 깨달았는지 곧바로 방향을 틀어 후퇴했다.
[리바운드: 스킬 사용 시, 무게에 따른 반동이 주어집니다.]
하지만, 반동이 온다.
“끄으윽⋯⋯!”
아프다. 뭐라고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온몸이 비명을 질러댔다.
하지만, 기절할 정도는 아니다.
몇 번의 반동으로 고통에도 꽤 익숙해진 탓인지 그 바위를 들었을 때보다는 버틸만했다.
“후우⋯⋯.”
일단 한숨 돌렸다. 겨우 살았다.
소년은 이미 탈진해서 기절했고, 아무래도 한동안은 깨어나지 않겠지.
“⋯⋯.”
아직도 손이 덜덜 떨린다.
하지만 알고 있다. 이 감각은 달성감이다. 이 세계에 와서 처음으로 뭔가를 해냈다.
가슴 속으로 뭔가 와닿는 것이 있었다.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가 있었다.
“⋯⋯윽.”
무거운 몸을 일으켜 주위를 둘러보니 푸른색의 돌덩이가 마치 조명처럼 은은한 빛을 내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이라면 역시 이거겠지.
크기는 대충 1평이 조금 안 되는 정도일까. 육망성과 여러 기하학적인 도형이 뒤섞여 있으면서도 무언가 복잡한 형태를 이루고 있는, 그런 게 푸르스름한 빛을 띠고 있었다.
그래, 이건 마법진이다.
소년이 조금 전 7층이라고 했으니까 이걸 밟으면 8층 혹은 6층으로 이동하는 구조겠지.
그나저나 긴장이 풀리니까 슬슬 배가 고파오기 시작했다.
“어라?”
뭔가 먹을 게 있지 않을까 싶어 배낭을 뒤져보니 구석에 책이 끼워져 있었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이 있던가.
생각보다 깊숙이 박혀 있어서 눈치채지 못했다.
어디 보자. 이름은⋯⋯.
“미티아스 미궁 탐색기, 마법 교본.”
처음 보는 문자였는데도 어째서인지 읽을 수 있었다.
이세계 빙의 기념 특전⋯⋯ 은 아니겠고, 아마 몸이 언어를 기억하는 것이겠지.
일단 전자의 책.
이건 아무래도 미궁의 마물이나 구조를 서술한 책 같다. 나는 던전이라고 불렀지만, 구조적으로 비슷했으니까 어느 쪽이든 괜찮겠지.
방금 죽인 녀석들의 그림도 있는 것을 보아 아무래도 지금 여기가 미티아스 미궁인 듯하다.
읽어둬서 나쁠 건 없다. 이 틈에 읽어두도록 하자.
그리고 후자의 마법 교본.
제목만 봐도 알 수 있다시피 마법에 관한 것들이 적혀 있는 책이다.
역시 본격적으로 이세계라는 느낌이로군.
펼쳐서 확인하니 기본적인 마법들이 잔뜩 실려 있었다.
마법이란 것은 우선 크게 나눠서 두 가지의 종류밖에 없다고 한다.
공격 마법과 지원 마법.
아까 소년이 썼던 바람, 불이나 물 마법 같은 것도 공격 마법이라고 볼 수 있겠지.
등급은 초급부터 시작해서 상급까지.
예외적으로 특급 마법이 있다고 하는데 그건 여기에 자세히 실려 있지 않았다.
“특급이라⋯⋯.”
일단 여기까진 내가 익히 아는 설정들이다.
하지만 어느 부분만큼은 뭔가 달랐다. 적성이란 것이 있었다.
“물 마법과 바람 마법은 가장 대표적인 마법의 종류이자 사용자가 가장 많은 마법이다⋯⋯.”
이유는 인간의 생활에서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것이 그 두 원소이기 때문.
인간의 신체는 70%가 물로 이루어져 있다고 그랬었나?
물은 거의 매일 마실 수밖에 없으니까 자연스레 가까워지는 원소겠지.
바람, 즉 공기도 마찬가지다.
인간은 호흡하지 않으면 죽는다. 이것도 마찬가지로 물처럼 매우 가까운 원소.
왠지 납득하게 되는 설정이구만.
하지만 반대로 불은 뭘 어떻게 하더라도 가까워질 수 없는 원소다.
사람은, 아니, 생물은 불에 닿으면 몸이 타올라서 죽게 된다.
누구나 아는 당연한 상식이겠지.
하지만 방금 소년은 불 마법을 쓰지 않았나?
뭘 어떻게 했길래 쓸 수 있었던 걸까.
“⋯⋯.”
설마 일부러 손에 불을 가져다 댄다던가, 불을 삼킨다든가 하진 않았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소년이 정말로 미친놈처럼 보였다.
“오.”
책의 바로 다음 페이지에 그 이유가 대문짝만하게 적혀 있었다.
“자기 적성에 맞지 않는 마법을 사용할 경우, 소모하는 마력은 두 배로 늘어나고 위력은 절반으로 급감한다⋯⋯.”
그랬던 건가. 그래서 소년이 파이어볼을 쓴 다음 기절했던 거로군.
하지만 위력은 충분했다.
사실 이 사람은 천재가 아니었던 걸까. 초급이라고는 하지만 무려 기초 4계통 원소를 모두 다룰 줄 아는 데다가 치유나 해독도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본인의 입으로는 치유사라고 했는데, 실력을 숨기고 있었을 가능성도 없진 않겠지.
그나저나 마법이라⋯⋯.
나도 쓸 수 있는 걸까.
책에 기본적인 영창이 몇 가지 적혀 있긴 한데, 우선 가장 쉬워 보이는 초급 물 마법을 한번 시도해 보기로 했다.
“어어, 고결하고 아름다운 물의 정령이여⋯⋯ 그 일렁임을 지금 이곳에 나타내리라. ‘서먼 워터’.”
그러자 뭔가 빨려드는 듯한 감각과 함께 손에서 물구슬이 쏘옥 하고 튀어나왔다.
“오, 오오!”
크기는 작다.
기껏해야 성인 남성의 주먹 정도.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의미가 있었다. 마법이다. 내가, 마법을 썼다.
기뻐서 눈물이 다 나오겠다.
[경고: 마력이 고갈됩니다.]
감격하고 있었더니 상태창이 눈치 없이 끼어들었다.
아니, 웃기지 마. 초급인데 벌써 마력이 고갈된다고?
내 MP가 이것밖에 안 될 리가⋯⋯.
“어?”
그렇게 생각한 순간, 내부에서 뭔가 끊어지는 느낌이 들었기에 곧바로 캐스팅을 취소했다.
뭐야, 이 피로감은⋯?
“허⋯⋯ 허억⋯⋯.”
시야가 흐려졌다. 마치 격한 운동을 했을 때와 같은 감각.
위험했다.
조금만 늦었더라면 기절했을 수도 있다. 이게 마력 고갈인가?
“⋯⋯.”
뭐가 어떻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마법은 일단 봉인하기로 하자.
마력도 적은 모양이고, 자칫 쓰러지기라도 하면 큰일이니까.
“응?”
조금 지쳐서 등을 기대려다가, 뭔가 묵직한 느낌이 있어 뒤를 돌아보았더니 그곳엔 작은 상자가 떡하니 자리를 잡고 있었다.
황금빛으로 빛나는 장식에, 누가 봐도 열어달라고 말하는 듯한 그 모습.
‘보물상자?’
이게 왜 여기 있지?
잠시만, 이 방의 생김새. 그리고 보물상자의 존재⋯⋯.
이 두 가지 사실이 의미하는 건 하나밖에 없다.
“리워드 룸!”
그래. 이런 류의 RPG풍 던전에서는 항상 리워드 룸(Reward Room)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클리어 보상도 물론 있겠지.
뭐가 나올까. 소년에겐 미안하게 됐지만 이건 내가 먼저 발견한 거다.
“후후⋯⋯.”
떨리는 손으로 상자에 손을 뻗으려는 그 순간.
[정보: 눈앞의 물체를 조심하십시오.]
“엥?”
상태창이 갑자기 튀어나와서 상자를 열려던 내 동작을 정지시켰다.
눈앞의 ‘물체’를 조심하라고⋯?
‘미믹?’
무심코 그런 생각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자칫 잘못 열었다간 한 방에 골로 가버리는, 무시무시한 마물.
아니, 하지만 상태창은 물체라고 말했고.
근데 왜 조심하라고 하는데? 미믹은 살아있는 생물 아니야?
[판단은 당신의 선택입니다.]
“하하⋯⋯.”
이 상태창 녀석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