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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화  레벨 업 (1)

   “으으⋯⋯.”

   문득 눈을 뜨자 천장이 보였다.

   주변을 살펴보니 소년은 근처의 벽에 기대어 있었고, 나는 위를 바라보는 형태로 누워 있었다. 뒤통수가 아팠기에 차가운 바닥인 것을 금방 깨달았다.

   “어? 신입!”

   “우우⋯⋯ 커헉!”

   상체를 일으켜 뭐라고 말하려다가 다시 지면에 쓰러졌다.

   “어, 어이. 너무 무리하지 마.”

   비틀거리며 일어나려 하자, 소년이 급하게 달려와 부축해 주었다. 그나저나 뭐야, 이 공복감은⋯⋯.

   속이 뒤집힐 것 같다. 의식이 다시금 흐려지려 한다.

   “⋯⋯배고파, 이 새끼야⋯⋯.”

   “뭐?”

   나는 소년의 멱살을 잡고 당장 밥을 내놓으라며 고함을 치기 시작했다.

   “이 자식이! 너만 굶은 줄 알아?!”

   그러자 소년은 황당함과 분노 그사이 무언가에 가까운 표정을 지은 채 내 얼굴을 후려쳤다.

   “내놔!”

   “이런 미친놈을 봤나. 네 배낭에 식량이 다 들어있는데 뭔 개소리를 하는 거야?!”

   “배낭?”

   아, 그래. 분명 큰 배낭을 메고 있었지.

   나는 그 말을 듣고서 당장 배낭을 미친 듯한 기세로 파헤치기 시작했다. 뭐든 좋았다. 빵이든 말린 고기든 아무거나 먹고 싶었다.

   “오.”

   있다.

   고기다. 그것도 싱싱함이 그대로 느껴지는 생고기. 어째서 생고기가 배낭에 들어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 알 바 아니다.

   지금은 이 허기를 어떻게든 달래야 한다.

   신이시여, 일용할 양식을 오늘도⋯⋯.

   퍼억!

   “먹지 마! 뒤지고 싶냐?!”

   소년이 황급히 달려와 다시금 내 얼굴을 후려쳤다.

   베어먹으려던 고기는 내 손을 빠져나가 공중에서 아름다운 궤적을 그리며 일 회전.

   다시 내 손에 안착하는 일도 없이 그대로 지면으로 낙하하여 더 이상 먹을 수 없게 되었다.

   “아앗, 고기가!”

   녀석이 떨어뜨린 고기는 포기하고 배낭에서 또 다른 고기를 꺼내 들었다.

   소년이 있는 힘껏 멱살을 잡고 흔들기 시작했지만, 두 번은 당해주지 않는다.

   “야! 뱉어!”

   무시하고서 고기를 입에 있는 대로 투하. 육즙과 피 사이의 정체 모를 액체가 터져 나와 더욱 입안을 자극한다.

   날것 그대로의 식감인 데다 비린내가 났지만, 그런데도 나름의 풍미가 있었다.

   특히 뭔가 쏘는 맛이 일품이었다.

   “아아⋯⋯ 수고해라. 병신아. 그게 뭔 고기인진 알고 처먹는 거냐?”

   고기를 얻지 못한 패배자의 말이 들려왔다.

   “우물⋯⋯ 뭔데?”

   “독이라고 독! 이 멍청한 놈아. 해독은 절대로 안 걸어줄 테니까 알아서 해.”

   뭐? 독?

   그 말을 듣고 고기를 확인하자 확실히 뭔가 색이 이상했다.

   “푸헉! 우웨에엑⋯⋯.”

   뱉자. 뱉어.

   시발. 이런 걸 왜 배낭 속에 넣어놔⋯.

   “세상에, 베노멧의 생고기를 그대로 처먹는 놈이 있을 줄이야⋯⋯.”

   “우읍!”

   “야! 내 앞에 오지 마!”

   고기의 정체를 알고 나자, 속이 갑자기 메스꺼워졌다. 빌어먹을. 이번에야말로 진짜 죽을지도 모른다.

   “사, 살려 주세요⋯⋯.”

   “⋯⋯.”

   그렇게 경멸하는 표정으로 볼 것까진 없는 거 아니야?

   “어이, 신입. 그러면 거래하자고. 해독을 걸어주는 대신, 저 바위를 방금 했던 것처럼 당장 들어서 치워. 아니면 그대로 독에 뒤지시든지.”

   “치, 치울게요! 우읍!”

   벌써 몸이 저릿했기에 그렇게 말하자, 소년이 다가와 내 어깨를 잡고서는 무언가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마법의 영창인가?

   “⋯⋯자애의 근원이자 어머니 되시는 앨리스시여, 모든 병의 근원으로부터 구원의 손길을 내미소서. ‘안티 도트’.”

   영창이 끝나는 순간. 소년의 손이 희미하게 빛나는 듯했다.

   “오, 오오!”

   어지러웠던 것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제길⋯⋯. 쓸데없이 마력이나 소모하게 만들고 말이야.”

   마법.

   방구석에서 상상만 했던 것이 눈앞에 재현되었다.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틀림없이 소년의 손에서 백색의 광채가 흘러나왔다.

   그와 동시에 여기가 이세계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실감한다.

   “대단해⋯⋯.”

   “뭘 감탄하고 있냐? 회복했으면 빨리 저 바위나 치워.”

   매정한 녀석이군.

   “알겠습니다.”

   일단 바위 너머로 마물의 낌새는 없어 보이고, 주위도 조용했다. 탈출하려면 지금이 기회겠지.

   근데 스킬을 발동하면 틀림없이 허리가 아작이 날 텐데.

   “⋯⋯.”

   모르겠다. 이미 한다고 해버렸으니 일단 치우고 나서 생각하자.

   “상태─”

   어?

   뭐야, 상태창이 왜 안 보이지?

   “상태창! 스테이터스!”

   “너, 진짜로 머리 이상해진 거 아니냐?”

   입으로 소리를 내어도 아무 반응이 없다. 이럴 리가 없는데⋯⋯.

   잠시만.

   ‘설마.’

   생각해보니까 조금 전에도 분명 멋대로 튀어나왔지? 내가 상태창이라고 말할 때는 아무 반응이 없다가 뒤지기 직전에 와서야 겨우 모습을 보였다.

   마치 내 생각을 훤히 꿰뚫어 보고 있는 것처럼⋯⋯.

   만약 그렇다면 이 모든 게 설명된다. 아니, 그것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내가 좆같은 스킬이라고 해서 삐진 건가?

   ‘미치겠네.’

   웃기지도 않는다. 자아를 가진 상태창이라니.

   몸이 달랐기에 대충 이세계로 빙의 당했다는 건 짐작했지만, 상하차에 이어 상태창마저 클리셰를 깨부수고 있다. 이건 말도 안 된다.

   “⋯⋯.”

   있는 힘껏 바위를 들려고 하자, 당연하게도 바위는 움직이지 않았다.

***

   “허억⋯⋯ 헉.”

   큰일 났다. 진짜로 굶어 죽게 생겼다.

   물의 경우라면 그가 마법으로 만들어 낼 수 있어서 상관없었지만, 역시 식량이 문제였다.

   소년이 ‘베노멧’이라고 부른 생물의 고기.

   배낭엔 저 빌어먹을 고기 빼고 먹을 게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독이 있기에 생고기 상태로 내버려 둬도 부패하지 않고, 불에 구워서 먹으면 아무런 문제도 없는, 그야말로 보존용으로도 좋은 데다가 마물 유인용으로도 탁월한 고기.

   하지만 오히려 그 부분이 문제였다. 이런 밀폐된 공간에서 불을 쓰는 것은 자살 행위다.

   “⋯⋯.”

   싸움이라고는 1도 도움 안 되는 힐러에, 한 번 쓰면 허리가 아작나는 가성비 최악의 스킬.

   심지어 그나마 의지할 만한 상태창은 삐져서 하루째 튀어나오지 않고 있다.

   그야말로 오합지졸 파티.

   그래서 결국 베노멧 고기로 배를 채우고, 해독으로 어떻게든 버티고 있다.

   “⋯⋯저기, 마력은 얼마나 남았죠?”

   “반절도 안 남았다고⋯⋯. 그보다 너 이 자식, 어제는 대체 어떻게 든 건데?!”

   “그게, 저도, 어떻게 한 건지 전혀 모르겠어요⋯⋯.”

   그동안 몇 번이나 바위 앞에서 낑낑대며 스킬을 써보려고 노력했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내 짐작건대 아마 상태창이 튀어나오지 않는 이상, 스킬을 쓸 수 없는 구조일 것이리라.

   “태창아! 미안하다⋯⋯!”

   허공에 그렇게 외치고서 두 손을 모아 싹싹 빌었다.

   그 순간.

   [⋯⋯.]

   상태창이 희미하게 빛났다.

   “죄송합니다! 다시는 그런 소리 안 지껄일게요!”

   틈을 놓치지 않고 바로 대가리를 박았다.

   울퉁불퉁한 던전의 바닥은 차갑고 딱딱했다. 하지만 이번 기회를 놓치면 언제 다시 튀어나올지 모른다.

   진심으로 사과했다.

   [스킬, ‘상하차’의 사용을 허가합니다.]

   “오오!”

   태창아, 믿고 있었다고!

   곧바로 바위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가 허리에 힘을 주고 있는 힘껏 들어 올렸다.

   [스킬, ‘상차’를 발동합니다.]

   “흐읍!”

   바위를 들어 올리자, 쿠웅 하는 소리와 함께 흙과 먼지들이 흩날렸다.

   “쿨럭, 쿨럭!”

   젠장. 눈에 먼지가 들어갔잖아⋯⋯.

   좁은 통로 사이로 전방의 시야가 확보된 그 순간.

   “이, 이게 뭐야⋯⋯.”

   발밑에는 머리가 짓뭉개진 채로 죽어 있는 마물의 사체가 있었다. 끔찍한 광경이었기에 곧장 눈을 돌렸다.

   “오오, 신입. 네가 던진 바위에 맞아 죽은 모양인데? 한 건 해냈구만.”

   “그걸 해냈다고 봐야 할까요⋯⋯.”

   고어 영화를 싫어하는 사람이 보면 실신할 만한 광경이다.

   “잘 들어. 이 녀석은 B급 마물인 자이언트 토터스. 흉폭하고 사납지만, 독이 있는 베노멧보단 맛있지. 뭔 소리인지 이해했으면 당장 해체하자고.”

   “예?”

   [스킬, ‘하차’를 발동합니다.]

   쿠궁!

   구석에 바위를 내려놓고서 소년에게 다가가자, 이미 주머니 속에서 칼을 꺼내 마물의 살을 발라내고 있었다.

   나도 도와야 할까?

   [리바운드: 스킬 사용 시, 무게에 따른 반동이 주어집니다.]

   “크아아아악!”

   “어?”

   멀뚱멀뚱 뭐 하고 있어, 이 새끼야⋯⋯.

   “빨리, 치, 치유 마법을!”

   “아, 알겠어.”

   아, 이제 한계다. 또 쓰러지겠다.

   “성 앨리스시여, 고통으로부터 해방을, 상처를 입은 자에게 다시 일어날 수 있도록 안식을 되찾아 주소서. ‘힐링’!”

   길고 긴 주문이 끝나고 초록빛의 광채가 뿜어져 나오자, 머지않아 통증이 잠잠해졌다.

   식은땀이 흘렀다.

   “허억⋯⋯. 뒤질 뻔했네. 반동이, 있다고요. 그러니까 못 쓰는 거예요.”

   “반동? 아니, 애초에 그런 마법은 들어본 적도 없어. 그거 근력 증강 마법 아니야?”

   근력 증강 마법도 있는 거냐.

   하지만 아마도 이 세계엔 ‘스킬’과 ‘상태창’의 개념이 존재하지 않겠지.

   대놓고 떠 있는 이 상태창도 나만 보이는 것 같고.

   “그러면 저도⋯⋯.”

   [스킬, ‘상하차’의 레벨이 1에서 2로 증가했습니다. 스킬 ‘던지기’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어? 뭐야.

   레벨업이라고?

   다시금 상태창을 확인하자 확실히 상하차 스킬의 레벨이 1에서 2로 변해 있었다. 아마 두 번의 스킬 사용으로 인해 레벨이 올라간 것이리라.

   그리고 ‘던지기’.

   분명 내가 쓰려다가 실패한 스킬이다.

   이게 열렸다는 뜻은, 어찌 보면 상하차의 조금 더 다채로운 활용이 가능하단 소리일지도 모른다.

   나는 곧바로 주위에 떨어져 있는 적당한 크기의 돌덩이를 주워서 한 손에 꽉 쥐었다.

   “어디 한 번⋯⋯.”

   [스킬, ‘던지기’를 사용합니다.]

   야구공을 던지는 듯한 자세를 취하고, 전력을 다해 투구했다.

   쿠콰앙!

   “야, 신입⋯⋯.”

   순간, 공기를 찢는 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던진 돌덩이는 어느새 벽에 처박혀서 흔적도 없이 가루가 되어 있었다. 당연하게도 벽은 개박살난 상태.

   말도 안 돼. 위력이 하차랑은 완전히 딴판이잖아.

   “⋯⋯.”

   소년은 입을 쩍 벌리고 나를 쳐다보았다.

   [리바운드: 스킬 사용 시, 무게에 따른 반동이 주어집니다.]

   아차, 반동이 있었지!

   “윽.”

   다행이다. 이번엔 손이 살짝 저릿한 정도로 끝났나.

   무게에 따라 반동을 준다고 했으니, 야구공 정도의 크기라면 생각보다 버틸만하군.

   “너, 무슨 짓을 하는 거야⋯⋯.”

   “예?”

   소년이 갑자기 나를 죽일 듯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왜지?

   “⋯⋯아무 소리 내지 말고 따라와.”

   “미친.”

   조금 전의 투구로 인해 부서진 벽의 잔해 속.

   거기에는, 벌레같이 생긴 마물이 잔뜩 모여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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