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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화  폐급 작가 관두고 상하차나 하렵니다 

 

   [하차합니다. 작가님도 상하차나 하러 가세요.]

   “후유⋯⋯.”

 

   옥상 난간 끝에 기대어 다시 한번 내 작품이 쓰레기라는 걸 절실히 깨닫는다.

 

   ‘결말 이후의 세계에서 농장 경영으로 힐링합니다’.

 

   2년을 쏟아부은 양산형 판타지 소설.

 

   양산형이라고 말하긴 했지만 내 전부였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치밀한 설정 준비에 매력적인 세계관, 개성 있는 캐릭터까지.

 

   연재를 시작할 때만 해도, 굉장한 작품이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이딴 걸 글이라고 써놨냐?]

 

   [정말 많이 웃기네 ㅋㅋ 걍 접으세요]

 

   [전개 븅신 같다. 하차해요~]

 

   [고구마 진짜 ㅈㄴ 답답하다. 주인공이 멍청하네 그냥.]

 

   [작가 지능 = 등장인물 지능]

 

   “⋯⋯.”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31회의 연재분. 조회수는 1,000에서 머물렀고, 추천은 그 10분의 1에 불과했다. 보통의 기성 작가들이라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망한 작품이구나 하며 유기했겠지.

 

   하지만 나는 도저히 그럴 수 없었다.

 

   학창 시절부터, 무려 2년을 쥐어 짜내어 만든 설정과 배경이란 말이다. 간단히 버릴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리고 한 독자의 존재가 나를 그만두지 못 하게 붙잡고 있었다.

 

   아파서 휴재하는 날이 있어도, 실수로 지각하는 일이 있더라도, 매 편 빠짐없이 긍정적인 댓글을 달아 주었다.

 

   악플이 난무하는 내 작품에서 유일한 힘이 되어준 사람이었다.

 

   [stacia123: 하차합니다. 작가님도 상하차나 하러 가세요.]

 

   그런데 그 마지막 독자마저 하차하며 상하차 행을 추천했다.

 

   상황의 심각성을 깨닫고 뒤늦게 수정 공지를 올렸지만 이미 늦었다.

 

   한 번 떠난 독자는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하아⋯⋯.”

 

   담뱃재가 하늘에 흩날린다.

 

   불씨가 꺼져가며 볼품없이 추락하는 그 모습은 마치 내 작품을 보는 듯했다.

 

   어쩔 수 없다. 다 내 잘못이다. 독자를 붙잡고 싶었으면 애초에 그딴 병신같은 전개로 실망시키지 말았어야 했다.

 

   [잔액: 53,788원]

 

   전 재산은 오만 원 남짓.

 

   당장 먹고살 돈도 부족한 상황이었기에 무엇이라도 해야만 했다.

 

   “제길!”

 

   허공에 욕지거리하며 한탄하자, 저 멀리서 비둘기가 나무라는 듯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스스로가 빌어먹을 정도로 한심하게 느껴졌다.

 

   나는 저런 작은 생물에게도 미움받는 인간인가.

 

   ‘차라리 그냥 이대로⋯⋯.’

 

   막상 아래를 바라보니 괜히 무서워져서, 곧바로 그 생각을 지웠다.

 

   침착하자. 이대로 뛰어내렸다가는 정말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인간으로 끝나는 거다. 머리로는 알고 있잖아?

 

   “⋯⋯.”

 

   결국 독자의 말처럼 상하차하러 가는 수밖에 없나.

 

   나는 당장이라도 흘러내릴 것 같은 눈물을 억누르며, 떨리는 손으로 상하차 알바 공고를 클릭해 지원했다.

 

***

 

   “와.”

 

   교육을 받고 물류센터에 들어서자마자 눈앞의 광경에 압도당했다.

 

   랙 사이사이를 빼곡히 채우고 있는 상자들과, 레일 위를 미친 듯이 질주하는 물건들. 심지어 명절 직전이라 내 옆의 물류는 그야말로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대충 어림잡아도 족히 10m는 되겠는걸.

 

   “야. 빨리 안 해? 들어오면 바로 옆으로 치워.”

   “예? 아, 알겠습니다.”

 

   잠시 멍하게 허공을 올려다보고 있었더니 주변에서 그런 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오자마자 이런 취급이냐.

   상대하는 것도 귀찮았기에 대충 예, 소리를 내며 답했다.

 

   본격적으로 레일 위에 상자를 올려놓기 시작하자 눈의 초점이 사라지고 무거운 감각만이 허리에 남았다.

 

   들려오는 것은 시끄러운 기계음과 뭔지 모를 둔탁한 소리뿐.

 

   “⋯⋯.”

 

   현타가 제대로 왔다.

 

   내가 조금 더 글을 잘 쓸 수 있었다면, 독자를 만족시킬 수 있었더라면.

 

   적어도, 그 독자만큼은 하차하지 않고 계속 읽어주었다면⋯.

 

   아니, 그만두자.

 

   인제 와서 아무리 후회한들 소용없는 일이다. 엎질러진 물은 두 번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다.

 

   무슨 말을 하던 변명이다.

 

   그렇기에 나는 지금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어디선가 쿵 하는 소리가 들린 듯했다.

 

   “성 씨!”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졌다.

 

   나를 다급히 부르는 소리에 놀라 위를 올려다보니, 상자를 지지해 주는 역할을 하는 랙의 일부가 파손되어 있었다.

 

   랙이 부서지면 어떻게 될까?

 

   당연한 이야기다. 무너지게 된다.

 

   그 검은 형체는, 속도를 줄이는 일도 없이 맹렬한 기세로 추락하고 있었다.

 

   “어?”

 

   발이 얼어붙어서 움직이지 않았다.

 

   게다가 평소 움직이지도 않던 근육을 혹사한 탓인지, 다리에 힘이 풀려서 오히려 주저앉아 버렸다.

 

   내 위치는 절망스럽게도 낙하지점의 정중앙.

 

   도망칠 수 없다. 깔린다.

 

   “살─”

 

   나는 어이없게도 택배 상자에 깔려서 죽었다.

 

   비참한 인생이었다.

 

***

 

   “으윽⋯⋯.”

 

   힘겹게 눈을 뜨자 시야 전체가 흐릿해서 반사적으로 눈살을 찌푸렸다.

 

   이상한 기분이다. 머리가 깨질 것만 같다.

 

   꿈인가?

 

   대체 무슨 일이⋯⋯.

 

   ‘아.’

 

   뒤늦게 생각났다.

 

   그래. 분명히 나는 추락하는 상자에 깔려서⋯⋯.

 

   “어, 어라?”

 

   죽지 않았어? 아니, 확실히 깔렸지?

 

   떨리는 손으로 목을 조심스레 더듬어 보자, 울퉁불퉁한 뼈가 아니라 매끄러운 피부의 감촉이 느껴졌다.

 

   “⋯⋯.”

 

   멀쩡하다.

 

   목이 부러지긴커녕 다리가 절단되거나, 팔이 없어지지도 않았다.

 

   어떻게 된 걸까.

 

   무거운 상자에 짓눌려, 목뼈가 부러지는 감각만큼은 아직도 생생할 정도로 기억나는데.

 

   ‘⋯⋯음?’

 

   잠시만. 뭔가 이상하다.

 

   뭐라 해야 할까, 위화감이 있었다. 평소와는 확연히 다른, 알 수 없는 그런 위화감.

 

   그 위화감에 신경을 집중하자 시야가 생각보다 낮게 보이는 것을 깨달았다.

 

   내 키가 원래 이렇게 작았나?

 

   아무리 170이 안 되는 키였다고 해도 이 정도로 낮게 보일 리가 없는데.

 

   아니다. 다시 보니까 피부가 이상했다. 손이 작다. 머리카락도 검은색이 아니다. 갈색이었다. 심지어 이상한 옷을 입고 있다.

 

   소름이 돋아서 나도 모르게 소리를 내었다.

 

   “히익!”

 

   방금 누가 말한 거지?

 

   무의식적으로 입가에 손을 가져다 대자, 입이 벌려져 있었다.

 

   나다.

 

   내가 낸 소리였다. 목소리가 높아서 눈치채지 못했다. 그걸 알아차린 순간 한 가지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다.

 

   이건 내 몸이 아니다.

 

   “이게, 어떻게 된⋯.”

   “야, 야! 신입, 일어나!”

 

   깜짝이야.

 

   갑자기 웬 녀석이 미친 듯이 멱살을 잡고 흔들기에 놀라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자 차분한 흑발에 붉은색의 눈동자가 인상적인 소년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나이는 10대 후반 정도일까.

 

   특이한 게 있다고 한다면 짙은 색의 로브를 입은 데다가, 무슨 지팡이 같아 보이는 걸 들고 있었다는 점이겠지.

 

   소설 속 문장 같은 묘사지만, 정말로 소년의 모습이 그랬다.

 

   “뭐, 뭐야⋯⋯.”

 

   혼란스럽다.

 

   본 적도 없는 어두운 장소에 누군지 모를 몸, 게다가 마치 판타지 세계에서나 나올 것 같은, 이상한 차림을 한 미친놈까지.

 

   죽기 전에 사람은 주마등을 돌아본다고 하던데, 이게 그런 걸까.

 

   그런 생각을 하며 눈을 돌리려던 그 순간.

 

   [─────────?]

 

   “어?”

 

   뭐야, 이게.

 

   시야 가장자리에 모르는 언어들이 의미를 알 수 없는 배열로 주르륵 떠 있었다.

 

   ‘어라?’

 

   잘못 본 건가 싶어 눈을 비벼도 선명하게 남아 있다.

 

   그와 동시에 의미를 알 수 없던 글자들이 점점 또렷해진다.

 

   [살아남기를 원하십니까?]

 

   눈앞에 뜬 것은 다름이 아닌 ‘상태창’.

 

   틀림없다.

 

   생전에 몇 번이고 화면 너머로 보았던, 익숙한 형태의 푸르스름한 창이 떠 있었다.

 

   그런데⋯⋯.

 

   [전용 스킬 - 상하차 LV.1: 물건이라면 무엇이든지 올리고 내릴 수 있다.]

 

   “뭐?”

 

   전용 스킬이 상하차?

 

   내가 의문을 가질 틈도 없이, 전용 스킬이 ‘상하차’라는 짧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기고서 상태창은 곧바로 시야에서 사라졌다.

 

   “⋯⋯.”

 

   상하차.

 

   인제야 조각난 기억들이 맞추어지기 시작한다. 위화감의 정체는 이거였나.

 

   익숙한 전개, 익숙한 설정⋯⋯.

 

   그래. 뭘 어떻게 보아도 이건 ‘빙의’다.

 

   “어이⋯⋯ 신입.”

 

   옆에서 소년이 식은땀을 흘리며 어깨를 툭툭 건드렸지만 아랑곳하지 않는다. 다시 한번 상태창을 불러내야 한다.

 

   떠올려. 어떻게 했었지?

 

   ‘한국이라면 상태창, 일본이라면 스테이터스.’

 

   그래. 상태창이라면 무조건 이 키워드일 거다. 뻔한 클리셰 아닌가.

 

   “스테이터스! 상태창!”

 

   큰 목소리로 외치자, 놀랍게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렇다면⋯⋯.

 

   “상하차!”

 

   방금 상태창의 너머로 힐끗 보았던 스킬명인 ‘상하차’.

 

   상태창이 안 먹힌다면 십중팔구 스킬명을 외치는 것이리라.

 

   “⋯⋯.”

 

   그러나 내 목소리만 죄 없는 허공을 가를 뿐, 당연하다는 듯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상하차! 상하차! 상하차!”

 

   제길, 이 정도면 그냥 좀 발동 돼라!

 

   “돌았냐? 기껏 살려놨더니 뭔 이상한 소리를⋯⋯ 죽기 싫으면 당장 달려!”

 

   그 목소리에 고개를 옆으로 돌리자, 괴물이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생물이 이쪽을 향해 소름 끼치는 소리를 내며 눈을 번뜩이고 있는 것이 보였다.

 

   “어?”

 

   마치 당장이라도 뛰어올 것처럼 부풀어 오른 다리 근육이 눈에 들어온 것은 그다음이었다.

 

   상태창에 시선이 빼앗겨 눈치채지 못했다.

 

   괴물⋯⋯ 아니, 마물이 나를 향해 일직선으로 뛰어오고 있었다.

 

   “이런 씨발!”

 

   미치겠다.

 

   조금 전엔 택배 상자에 깔려 죽질 않나, 이번엔 갑자기 마물에 쫓기고 있다.

 

   내가 쓴 뒈지게 욕먹었던 회차도 이따위 전개는 아니었는데!

 

   [무언가를 올리는 행동이 필요합니다.]

 

   정신없이 도망치는 와중에 상태창의 텍스트가 바뀌었다. 무언가를 올리는 행동이 필요하다고?

 

   갑자기 그런 소리를 해도⋯⋯.

 

   “아.”

 

   달리다 갑자기 멈춰서는 소년.

 

   미끄러지듯이 멈춰서자, 바로 앞에는 거대한 벽이 존재하고 있었다.

 

   좆됐다. 막다른 길이다.

 

   “어, 어떡하죠?”

   “아아, 이제 다 끝났어⋯⋯.”

 

   뭔가 방법이 없나 싶어 다급히 물어보았더니 힘없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 녀석은 도움이 안 된다.

 

   [무언가를 올리는 행동이 필요합니다.]

 

   “⋯⋯.”

   시야 끝에는 아직 사라지지 않은 상태창이 존재를 계속 어필하고 있다.

   그래. 무언가를 위로 올리는 행동이 필요하다 이거지?

   옆에 있는 것은 마침 녀석을 가로막기 딱 좋은 크기의 바위.

   이렇게 된 거 이판사판이다.

 

   [스킬, ‘상차’를 발동합니다.]

   “흐읍!”

   나는 그대로 전력을 다해 바위를 들어 올렸다. 평소라면 상상도 못 할 일이지만 놀랍게도 바위는 아무런 저항도 없이 쉽게 들어 올려졌다.

   “무슨⋯⋯ 말도 안 돼.”

   옆에서 그런 감탄사가 들려왔지만, 지금은 그런 걸 신경 쓸 때가 아니다.

   문제는 이다음.

   일단 들어 올리긴 했는데 이걸 어떻게 하지? 이대로 마물에게 던지면 되는 걸까?

   “쿠오아아아!”

   시간이 없다.

   “으윽!”

   있는 힘껏 던지려고 하자, 팔이 삐끗하는 감각과 동시에 상태창의 텍스트가 또다시 바뀌었다.

   [스킬, ‘던지기’는 요구 사항을 충족하지 않아 사용할 수 없습니다.]

   뭐?

   “빠, 빨리 어떻게든 해봐!”

   이, 일단 내려놓자. 내려놓는 거다.

   적어도 길이 막혀있으면 아무리 녀석이라도 못 넘어올 거다. 설마 부수고 넘어오진 않겠지?

   [스킬, ‘하차’를 발동합니다.]

   콰앙!

   눈을 질끈 감으며 바위를 내려놓자, 굉음이 나며 마물과 우리가 있는 공간 사이를 완벽히 차단했다.

   ‘일단 살았다⋯⋯.’

   그렇게 생각하고서 멋쩍은 표정으로 소년을 바라보는데, 갑자기 쥐어짜는 듯한 통증이 허리 주변을 급습했다.

   “크아아아악!”

   재빨리 시선을 상태창으로 향하자 어느새 또 텍스트가 바뀌어 있었다.

   [리바운드: 스킬 사용 시, 무게에 따른 반동이 주어집니다.]

   뭐 이런 좆같은 스킬이 다 있어⋯⋯.

   “어이, 야! 신입! 괜찮아?!”

   희미하게 들려오는 소년의 목소리.

   허리가 쪼개질 듯한 통증에 나는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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