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을 조명하는 가장 큰 소란
문태을, 「구름」외 1편
| 창작의도
구름은 ‘우연히 아름다운 우연’. 우연히 생긴 구름. 제멋대로의 모습. 그중에 하필 아름다운 구름이 있다면, 이것은 겹 우연이다. 우연과 우연이 포개지는 모습. 그게 바로 아름다운 구름의 모습이다.
우리는 이 우연을 보고 많은 것을 연상할 수 있다. 아이스크림, 손, 새, 공룡, 사람, 하트, 마음, 마음 같은 것. 하지만 그 어떤 것도 구름의 이름을 대체할 수 없다. 구름의 이름은 구름이다. 여기까지가 당연한 사실. 그러나 과연 구름에게 구름은 적합한 이름일까? 구름을 구름이라고 불러도 될까? 구름을 떠올려보자. 제각기 다른 구름의 모습들. 개개의 구름마저도 하나의 모습이 아니다. 언제나 흔들리며 서로를 덮고, 흩어지고, 사라지고, 나타나는 양태다. 하나의 단어로 뚝 떨어지지 않는 구름은 유유히 하늘을 유영한다.
누구도 구름을 입에 머금어 본 적 없다. 구름의 맛을 모른다. 그러므로 뱉어볼 수도 없다. 입에 담기지 않는 구름. 구름은 그 자체로 추상. 어떤 말을 붙여도 적합하지 않다. 그 어떤 말도. 내게 구름의 이런 속성은 이름과 크게 다르지 않다. 둘은 모두 그 자체로 어떤 것이 아니라, 어떤 것을 지시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점에서 같다. 이름이 의미를 표상한다면, 구름이 표상하는 것은 바로 빛이다. 내리쬐는 햇살을 허공에서 바라볼 수는 없는 법이니까. 그것을 바라보기 위해선 구름의 도움이 필요하다. 찢어진 구름 사이로 흘러나오는 빛, 그제야 선명하게 보이는 빛, 이름의 틈으로 새어 나오는 한줄기의 침묵. 그리고 이 일련의 과정이 나에겐 시다. 그것이 바로 시여야 한다.
시간은 등을 밀고, 삶은 우리를 살게 한다. 죽음은 의미를 찾아 살게 한다. 이런 하루가 지나간다. 내일은 어제처럼 반복될 것이다. 그때, 시는 나른한 삶의 어깨를 주무른다. 정형화되어 가는 하루를, 몇몇 이름으로 소급되는 딱딱한 하루를, 부드러운 상태로 되돌려 놓는다, 이름을 빼앗는다. 그래야 한다. 시가 만들어 주는 모든 의미가 메말라 버린 땅에서 문득 걸음을 멈춰 설 줄 알아야 하며, 그 침묵을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한다. 의미와 이름을 찾아 헤매는 여정에서 벗어날 줄 알아야 한다. 너무 많은 말이 우리를 어지럽히고 있으므로. 가지런하고 명료한 생각으로 돌아갈 줄 알아야 한다.
이것은 선언이 아닌 다짐이다. 시는 침묵을 비추는 가장 큰 소란. 우리는 시의 너덜거리는 넝마 사이로 침묵을 응시할 수 있으며, 그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