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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화 투비 히어로(To be Hero)

 

 

 

   이재천.

   당시 히어로 랭킹 4위.

   20대 최고의 히어로이자,

   젊은 히어로 숙청 사건의 주역.

   누구보다 앞장서서 목소리를 내던 그가 파업한 히어로들을 모조리 쓸어버릴 줄 누가 알았을까.

   ‘미안……하다고도 못하겠어. 그냥 그럴 수밖에 없었어.’

   어떻게 함께 싸워 왔던 동료들을 그렇게 쉽게 배신할 수 있지?

   갖가지 기억들이 잠시 떠올랐다.

   “제 이름이 여기까지 알려졌나 보군요?”

   “아……, 아?”

   “다친 덴 없어 보이시는군요.”

   “아! 내 씹새가!”

   “뭔 새요? 설마 이거요?”

   이재천이 죽은 땅 익룡을 가리켰다.

   설마 가로채기 당했나?

   [+12정수]

   그건 아닌가 보네.

   “어, 어어?”

   이재천이 눈을 크게 떴다.

   “당신, 혹시 초능력자인가요?”

   “어떻게 알았지?”

   “그야 이 새……, 당신이 잡은 거 아니에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상하다.

   그 썩은 동태눈깔을 보면 뒤지게 패려고 했었다.

   막상 이재천을 보니 그럴 마음이 싹 사라졌다.

   배신의 눈동자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상태였다.

   저놈 한 마리 잡는데 정신력을 너무 많이 써서 이상해졌나.

   레벨 업부터 하자.

   [10정수를 사용해 레벨을 올렸습니다.]

   [레벨: 1(+20)-> 2(+20)]

   [포인트를 1 받습니다.]

   [체력이 가득 찹니다.]

   [정신이 맑아집니다.]

   몸이 개운하다.

   머리가 말끔해진다.

 

   크, 이거지…… 알고는 있었어도 직접 경험하니 다르다.

   “휴…….”

   “와……. 어떤 능력이길래 이걸 잡았어요?”

   이재천이 죽은 땅 익룡을 보며 신기해하고 있었다.

   정신을 차리니 이재천의 뒤에서 땅 익룡이 조용히 다가와 날개뿔을 세우고 있었다.

   “조심해!”

   땅 익룡을 공중에 띄웠다.

   이재천이 그쪽으로 손을 크게 휘둘렀다.

   -쾅! 콰광!

   거대한 번개가 땅 익룡을 맞췄다.

   보통 숙련자가 되면 최소한의 출력으로 약점을 노리는데, 지금 이재천은 때 묻지 않은 초심자였다.

   그 과장된 몸짓과 번개가 내 눈을 사로잡았다.

   어쩌면 내가 히어로가 되었을 때 가장 상상하던 모습이 이 모습 아닐까.

   그러고 보니 이때 나를 지키려다 상처를 입었었지.

   “괜찮아?”

   “괜찮으신가요?”

   동시에 말했다.

   또, 동시에 한숨을 내쉬었다.

   전이었으면 둘 다 다쳐 있었을 상황.

   지금은 아무도 다치지 않았다.

   이재천이 머리를 짚으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하마터면 위험할 뻔했네요.”

   “그래. 위험할 뻔했어.”

   “염동력자시군요!”

   “……응?”

   “뭐, 사이코키네시스라 불러드려요?”

   염동력자……인 건 아닌데.

   지금 쓴 능력만 보면 그렇게 보일 수밖에 없겠지.

   “그럴 필요는 없고.”

   “염동력은 실제로 처음 보네요. 혹시 히어로신가요?”

   “아직은, 아니야.”

   “음……, 그럼 혹시 저 좀 도와주실 수 있을까요?”

   “도와달라니?”

   “어쨌든 알 깨진 둥지 근처잖아요? 주변 사람들 구하는 걸 좀 도와주세요.”

   하……. 도저히 거절할 수가 없네.

   분명히 복수심에 불타야 하는데,

   내가 가장 증오하는 사람의 가장 존경했던 시절이라…….

   “……뭘 하면 되지?”

   존경이 더 컸던 모양이다.

   “저 앞 사거리 너머 건물에 새들이 몰려 있어요. 건물 안에 사람들이 갇힌 것 같아요.”

   이재천이 나뭇가지를 주워 손에서 얕은 번개를 일으켜 불을 지폈다.

   “자, 이걸로 새들을 유인해서 이쪽으로 데려와 주시면 됩니다!”

   “그건 나보고 미끼가 되라는 소리 아니야?”

   “맞습니다! 어차피 염동력으로 하면 안전하잖아요?”

   당당한 모습.

   내가 좋아했던 그 모습이다.

   하지만 아직 뭔가 어설퍼.

   “내가 그걸 받아들일 거 같아?”

   “당연하죠! 당신이 새들을 끌어  오면 제가 상대하겠습니다. 그 사이에 사람들을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켜 주세요.”

   “거절할게.”

   “네! ……네?”

   이재천이 당황했다.

   당황할 만도 하지.

   이때 이재천은 거절이란 걸 모르던 자식이었으니까.

   자기가 하늘 말이 항상 옳다고 생각하고 그게 옳았으니까.

   확실히 이재천의 말은 옳았다.

   전에도 자기 혼자 적을 끌어 모아 모두를 상대했다.

   그렇게 해서 아무도 다치지 않고 모두 구할 수 있었다.

   이재천은 ‘아무’에서 항상 자기 자신을 뺐다.

   그렇게 늘 자기만 상처 입고 모두를 구했다.

   “이미 미끼가 있는데 내가 미끼가 될 필요는 없잖아?”

   “그게 무슨……?”

   “저놈들은 너무 커서 어차피 건물 안에 못 들어가.”

   “설마……, 시민들을 미끼로 삼겠단 말인가요?”

   혼자서 정면승부하겠다고?

   이번에는 좀 다르게 가 보자고.

   “맞아. 건물을 부수는 놈들을 몰래 하나씩 잡는 거지. 그 사이에 건물이 부서질 일도 없으니.”

   “히어로가 시민을 미끼로 삼다니요! 말도 안 됩니다.”

   “아직은 아니라고 했을 텐데?”

   “으……. 저는 조용히 적을 처리할 능력이 없는데요?”

   “알아. 너는 잠자코 보고 있어.”

   한 마리 정돈 남겨줄 테니.

   정수가 산더미인데.

   내가 굳이 몹 몰이를 해줄 필요는 없지.

   건물에 붙어 있는 놈들은 번개 범위 때문에 잡으려 들지 않겠지. 분명 사람들에게까지 닿을 거고.

   “기, 기다려 보세요!”

   날 붙잡으려는 이재천을 뿌리치고 건물에 다가갔다.

   “살려주세요!”

   “여보, 자극하지 말라니까!”

   “살려주세요!”

   패닉 상태인 것 같다.

   오히려 새들을 자극하니 좋은가.

   -짹짹.

   -까악, 까악.

   다 내 조류 도감 영상에 올라온 놈들이잖아.

   땅 익룡보단 훨씬 약한 놈들.

   하나같이 다 약점이 노출된 놈들뿐이군.

   크기만 큰 잡새도 있네.

   영상 올리던 게 새록새록 떠오른다.

   맞은편 건물 2층에 올라가 창문을 열었다.

   단검을 움직여, 소리도 없이 조용히 몸 밖에 난 약점을 베었다.

   일부러 칼날을 내 쪽으로 향하게 해서 어느 방향에서 공격하는지 알 수 없게 했다.

   -사샥, 샥샥, 사샥, 샥샥.

   [+2정수]

   [+2정수]

   [+6정수]

   새를 조금씩 죽여 나갔다.

   열두 마리 정도 남았나.

   3레벨이 되면 두 가지 능력을 동시에 사용할 수 있다고 했지.

   [13정수를 사용해 레벨을 올렸습니다.]

   [레벨: 2(+20)-> 3(+20)]

   ……

   [두 가지 능력을 동시에 사용할 수 있습니다.]

   무슨 초능력을 받을까?

   [집중 파괴: 목표한 곳을 터뜨립니다.]

   뭐지?

   말이 안 되는데?

   단검을 도로 가지고 와 집어넣었다.

   땅 참새의 약점을 바라보고,

   쥔 주먹을 폈다.

   -콰직!

   땅 참새의 머리가 터졌다.

   [+2정수]

   헐?

   미친?

   머리가 찌릿했다.

   남은 포인트를 정신력에다 모두 넣었다.

   새들의 머리를 마음껏 터뜨렸다.

   -콰직! 펑! 콰직!……

   [+2정수]

   [+3정수]

   [+2정수]

   ……

   [17정수를 사용해 레벨을 올렸습니다.]

   [레벨: 3(+20)-> 4(+20)]

   [정신이 맑아집니다.]

   “뭐야 저거?”

   “새들이 죽어 나가고 있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야?”

   -콰직!……

   [+2정수]

   ……

   [보유 정수: 20]

   [레벨 업에 필요한 정수가 1 부족합니다.]

   아, 1 부족해서 레벨 업 안 되네.

   건물 주변 새를 전부 잡았다.

   엄청난 능력을 얻어버리고 말았다…….

   이런 능력을 계속 얻는다고?

   -콰광! 쾅!

   뭐지? 이재천인가?

   -쾅! 쾅! 쾅! 쾅!

   ……설마!

   이재천이 파지직, 뛰어왔다.

   “다들 괜찮으신가요! 둥지 지킴이를 잡고 왔습니다! 주변 새를 모두 잡은 증거니 여긴 이제 안전합니다!”

   “감사합니다! 이재천 씨 맞으시죠?”

   “뉴스에서 많이 봤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엉엉.”

   선수를 빼앗기고 말았다.

   정말 한 마리를 남겨준 꼴이 됐네…….

   둥지 안에서 태어난 놈들을 모두 잡으면 둥지 지킴이라 불리는 마지막 가장 큰 알이 깨진다.

   그걸 잡고 온 모양이네.

   나도 구해줬습니다! 하고 나설 자리는 아닌가.

   

   “조금만 기다리시면 복구 세션이 올 겁니다! 혹시 부상자 있으십니까?”

   “…….”

   이재천 녀석. 상처 하나 없네.

   이게 진짜 아무도 안 다친 거지.

   건방진 모습도 그때 그 모습 그대로네.

   “둥지 지킴이 앞에서 내가 모든 새를 잡기를 기다리고 있던 거야?”

   “당신을 믿었습니다.”

   “믿었다니…….”

   “저희 혹시 어디서 만난 적 있나요?”

   아.

   그러고 보니, 이재천을 처음 만난 날이었지.

   여기선 당황하지 말고 밀고 가자.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처음 만났는데.”

   “음, 으음……? 그러면 왜 반말을……?”

   “내가 너보다 나이 많잖아.”

   이재천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러고 보니 이름도 모르고 있었네요.”

   이재천이 손을 건네며 말했다.

   “아시겠지만 이재천입니다.”

   “유기한.”

   “기억하겠습니다. 유기한 씨.”

   그래, 기억하라고.

   널 뛰어넘어 주겠어.

   그 참사를 막기 위해.

   우선 너보다 강해져야겠어.

   그날 저녁, 집에 돌아왔다.

   급해서 찍지 못한 게 너무 아쉽구나…….

   오늘만 유튭각이 몇 개나 있었는데.

   잠깐, 유튜브라니. 직업병인가?

   스무 살이면 시작도 하기 전이잖아.

   <히어로 잡학지식>도, <영웅이 알고 싶다>도 없다.

   아.

   내 400만 구독자가.

   이참에 히어로 유튜버나 해볼까?

   집중 파괴.

   그 정도 능력이면 A는 당연히 받지 않을까.

   잘 되면 S급 히어로가 될지도?

   내일 바로 시험장으로 간다.

   진짜 히어로가 되는 거다.

   기다려라.

***

   그래서 왔는데…….

   “F등급으로 자동 탈락입니다.”

   왜 오니까 능력이 변한 거지?

   능력도 무슨 쓸데없는 걸로 바뀌었어.

   [휴지 생성: 원하는 곳에 휴지를 한 장 생성합니다.]

   [종이접기: 어떤 종이든지 14번까지 접을 수 있습니다.]

   이게 뭐냐…….

   설마 하루가 지나면 바뀌는 건가?

   알려면 하루를 날릴 수밖에 없겠네.

   그렇게 휴지를 뽑아 접어댔다…….   

   뜬금없게 궁합은 좋네…….

   하루가 지났다.

   [집중 파괴]

   집중 파괴 떴다!

   시험장 가는 길에 셀카봉 하나를 샀다.

***

 

   히어로 면허 시험장.

   모의 둥지 입구.

   평가원이 의자에 대충 걸터앉아 핸드폰을 보고 있다.

   둥지 안에서 남자가 달려 나와 소리쳤다.

   “으아아! 이봐요, 이게 정녕 테스트 둥지가 맞아요? 말이 안 되는데!”

   “맞습니다. 어디 보자. 불합격입니다. 좀 더 강해지신 후에 찾아오세요. 다음!”

   “에이, 씨벌…….”

   남자가 힘없이 돌아갔다.

   터벅터벅 걸어가던 도중, 셀카봉을 들고 있는 사람과 어깨를 부딪쳤다.

   “아이 씨, 잘 좀 보고 다니십쇼!”

   “아, 미안합니다. 여기 안까진 처음 와 봐서.”

   남자가 그의 셀카봉을 보고 물었다.

   “그건 또 뭐요? 시험 생중계라도 합니까?”

   “아, 그건 아니고, 단순 녹화입니다. 이번에 채널 새로 하나 파려고 하는데, 혹시 인터뷰 한번 가능할까요?”

   “뭔 그런 걸 한대. 관심 없으니 저리 꺼지쇼! 기분만 잡치네.”

   “아, 아쉽게 됐네요.”

   그가 모의 둥지 입구 앞에 섰다.

   평가원이 그에게 절차대로 말했다.

   “유기한 씨, 본인 맞으시죠? 어디 보자. 저번 등급 자동 F? 게다가 스무 살? 맞아요?”

   “맞습니다…….”

   “그렇다고 봐 드리진 않아요. 표준 면허 기준을 따릅니다.”

   “알고 있습니다.”

   “흠……. 들어가시고 안 될 것 같으면 바로 나오세요. 보험처리 된다고 해서 일부러 다치시는 마시구요.”

   “알고 있습니다.”

   평가원이 그가 든 셀카봉을 보며 말했다.

   “그 긴 건 뭡니까? 방송은 안 됩니다.”

   “아, 녹화만 하려고요.”

   “흠……, 일단 알겠습니다. 들어가시면 됩니다.”

   평가원이 초기화 버튼을 누르고 신호를 보내자, 그가 둥지 안으로 들어갔다.

   별 관심 없던 평가원은 다시 다리를 꼬고 앉아 핸드폰을 들여다봤다.

   “와……, 이재천 대박이긴 하네. 그 둥지를 혼자서 다 처리했다고? 스무 살인데?”

   평가원이 잠시 댓글을 보고 있던 사이, 게이트 안에서 그가 나왔다.

   “뭔가요? 2분도 안 지났는데, 벌써 포기하신 겁니까?”

   “다 잡고 나왔습니다. 면허 발급은 어디서 받죠?”

   “에? 어디 보자. 아니 진짜네? 이게 어떻게 된……?”

   “어, 방금 그 반응 좋았는데, 영상에 써도 괜찮을까요?”

   “에? 예……. 그러세요. 합격입니다……. 오른쪽 건물 안으로 가시면 됩니다. 유기한 씨.”

   “알겠습니다.”

   그가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평가원이 그의 이름을 되새김질했다. 유기한, 유기한.

   협회 상부에 전화를 걸었다.

   “예, 팀장님. 혹시 유기한이라는 사람…….”

***

   히어로 면허를 받았다.

   꿈에도 그리던 히어로가 됐다.

   나도 이제 사람들을 구할 수 있는 걸까.

   회전 초능력 때문에 어떨 땐 미칠 듯이 강하고, 어떨 땐 한도 끝도 없이 약하다.

   결국 최선은 레벨을 올리는 건데…….

   지금은 팀을 구하는 게 가장 좋겠지.

   결국 어그로를 끌어야 하지 않을까?

   내가 가장 잘하는 걸 해야겠다.

   편집.

   <내가 히어로다>

   [채널을 생성하시겠습니까?]

   딸깍.

   [채널 생성 완료.]

   해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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