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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화 본투비 히어로(Born to be Hero)

 

 

 

   ‘일어나……. 올라가……. 막아야 해…….’

***

   “……크헉! 크아악!”

   눈을 떴다.

   죽지 않은 건가?

   어떻게 움직일 수 있는 거지?

   설마 죽은 후의 세계인가? 여긴 어디지?

 

   그 메일이 진짜였나?

   어둡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 저 멀리 한 줄기 빛이 여길 얕게 비추고 있었다.

   등에 이물감이 들어 손을 뻗었다.

   위로 솟은 밧줄이 내 몸에 붙어 있었다.

   잡고 올라가다 보면 빛에 닿을 수 있으려나?

   나는 뭔가에 홀린 듯 한 손으로 줄을 잡고 오르기 시작했다.

   “뭘 하고 계십니까?”

   “어? 으, 으악!”

   놀라 줄을 놓치고 떨어졌다.

   “으, 으윽…….”

   목소리의 주인이 다가와 나를 내려다봤다.

   빛을 반대로 받고 있어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저 높은 곳을 혼자서 올라갈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너, 넌 누구야? 여긴 어디야?”

   그녀가 부드럽고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다시 물어보겠습니다. 저길 올라갈 수 있을 것 같습니까?”

   “……날 어떻게 할 셈이지?”

   “겁먹을 필요는 없습니다. 저는 유기한, 당신을 도와드리려는 겁니다.”

   뭐지? 전혀 겁먹지 않았는데?

   “저는 당신의 사망 회귀를 인도할 신, 폴리미아입니다.”

   일단 말을 들어보자.

   “먼저 축하드립니다. 당신이 첫 번째 회전 초능력 시스템의 주인이 될 겁니다.”

   “회전 초능력?”

   물체를 회전시키는 초능력인가?

   “물론 물체를 회전시키는 능력은 아닙니다.”

   “내 마음을 읽었어?”

   “아뇨, 그런 건 제가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럼 어떻게?”

   “회전 초능력이란 말을 들으면 누구라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하긴.

   “그럼 그게 무슨 능력이지?”

   “말 그대로 돌아가며 여러 능력을 쓰는 겁니다. 제가 준비한 능력들을 순서대로 하나씩 사용하시면 됩니다.”

   회전초밥 같은 느낌인 건가.

   내가 그토록 꿈꾸던 초능력을 얻을 수 있는 거야?

   “근데 어째서?”

   “사실……, 당신은 이미 전부터 초능력을 가지고 있어야 했습니다.”

   “뭐?”

   “초능력자가 돼야 했을 시점에 시스템 준비가 되지 않았습니다. 이 점은 사과드립니다.”

   폴리미아가 고개를 숙였다.

   “내가 초능력자였어야 했다고?”

   “그렇습니다. 그때 하찮은 방해물 때문에 늦어져서 말이죠. 결국 회귀 시스템까지 설계하게 되었습니다.”

   하찮은 방해물이라니.

   대체 어떤 걸 말하는 거지?

   “그 말은 결국, 네가 준비를 늦게 했다는 거지?”

   “다시 한번 사과드립니다.”

   딱히 부정하진 않는군.

 

   “그 방식은 뭐지? ‘이거 누르면 죽음’이라니…….”

   “당신의 죽음을 각오한 용기를 잘 보았습니다.”

   죽음을 각오한 용기?

   아니……, 그게?

   “그래……. 어떤 초능력들이 있나 보여줄 수 있나?”

   “아쉽게도 저는 능력을 부여하는 신이라 초능력 자체를 보여드릴 순 없겠네요.”

   “그건, 나보고 알아서 하란 소리인가.”

   “그렇지만 따로 준비한 게 있습니다. 눈 똑바로 뜨고 보시죠.”

   어두운 공간이 밝게 변했다.

   불길이 치솟는 산.

   파도가 치는 바다.

   얼어붙은 섬.

   “얻을 초능력들을 이미지화 해봤습니다. 어떤가요?”

   슬라이드 쇼를 보듯 세상이 이리저리 변했다.

   그 사이, 나는 폴리미아의 얼굴을 봤다.

   눈, 코, 입이 없었다.

   “너……, 얼굴이 없잖아?”

   “아, 보셨군요.”

   다시 공허, 어둠으로 채워진 곳으로 바뀌었다.

   그녀가 한줄기 빛을 등지고 다시 나를 바라봤다.

   “저는 제 모습을 잃었습니다.”

   입이 없는데 어떻게 말하고 있는 걸까.

   그걸 궁금해하기엔 이곳은 너무도 비현실적이었다.

   “저는 제가 할 일을 할 뿐입니다. 알려줄 의무는 없습니다.”

   “……괜찮아?”

   “당신은 본래 초능력을 발현해야 했을 그때로 돌아가서 하고 싶은 걸 하시면 됩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이제 돌아갈 시간입니다.”

   발밑에 동그란 판이 나타났다.

   커다란 판이 반 시계 방향으로 돌아갔다.

   “알려주기 싫다는 건가. 아무튼! 내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거지?”

   그녀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눈앞이 점점 환해졌다.

   [초능력 획득 예정 시기를 불러옵니다.]

***

   눈부셨다.

   밝은 하늘을 마주했다.

   정말로 돌아간 건가?

   주변을 둘러봤다.

   “여긴…….”

   그곳이다.

   어깨를 다쳐 팔을 휘두를 수 없게 된 곳.

   내가 히어로를 포기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가 된 바로 그곳.

   초능력을 얻으려고 새 앞에 섰지.

   모든 초능력자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싸울 의지를 갖추고 새와 마주하는 것.

   내부 정보를 통해 들었던 거라 확실하다.

   물론 내게는 통하지 않았다.

   그게 단순히 신의 나태 때문이었다니.

   그땐 정말 후회했었는데, 그럴 필요가 없었네.

 

   그러고 보니 왠지 어깨가 가벼운데?

   정말 다치기 전으로 돌아왔구나.

   작은 단검 하나가 허리춤에 매여 있었다.

   호신용으로 샀던 조류 전용 단검.

   어차피 신체 능력도 낮아서 쓸모없었지. 어깨를 다치고 나서는 더더욱.

   -끼이이익!

   저 멀리 내 어깨를 망가뜨렸던 새가 울었다.

   땅 익룡.

   날개를 발처럼 써 사족 보행하는 놈.

   난 저놈한테서 꿈을 빼앗겼었다.

   죽일 놈. 저놈은 내가 죽인다!

   [새로운 힘에 눈을 뜹니다.]

   [회전 초능력을 얻었습니다.]

   드디어 초능력자가 되었다.

   더는 무능력자가 아니다.

   이리도 쉽게 얻을 수 있었다니.

   허탈한 웃음을 내보냈다.

   신체 능력 향상 앱을 켰다.

   +

   <유기한>

   레벨: 1(+20)

   초능력자

   생명력: +20    정신력: +0

   지구력: +0      기억력: +8

   적응: +0         근력: +0

   속력: +0         감각: +0

   보유 포인트: 21

   보유 정수: 1

   회전 초능력 현재 상태: 염동력

   +

   내 눈으로 초능력자 상태를 보게 될 줄이야.

   27년 무능력자 한을 이제야 푸네.

   어?

   회귀 전에 올린 신체 능력이 그대로 남아있잖아?

   개이득.

   일단 지금 능력은 염동력인가.

   저놈이 오기 전에 감 좀 잡아볼까.

   [염동력: 대상을 지정해, 그 대상을 손대지 않고 자유자재로 움직입니다.]

   가장 먼저 손에 든 핸드폰을 띄워 보았다.

   느낌이 이상한데?

   손을 움직이자 그대로 핸드폰이 공중에서 따라 움직였다.

 

   음, 음…….

   처음이라 적응이 안 되네.

   그래도 빨리 익숙해질 수 있겠는데?

   [현재 동시에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은 하나입니다. 레벨이 오르면 늘어납니다.]

   염동력 말고도 다른 능력도 쓸 수 있다는 거지?

   [3(+α)레벨이 되면 두 가지 능력을 동시에 사용할 수 있습니다.]

   어쨌든 정수를 써서 레벨을 올리라 이거지?

   그런데 능력 바꾸는 법을 알려주지 않네?

   염동력보다 더 좋은 능력이 있을텐데?

   일단 지금 상황은 염동력으로 해결해야겠네.

   “그래, 해보자고.”

   땅 익룡이 내 앞까지 다가왔다.

   기억력 때문인가?

   그때의 고통이 떠올랐다.

   오른손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새를 직접 잡아보려고 했던 때가 이 순간밖에 없었다.

   그때와 달리 이놈의 공략법을 알고 있지만, 떨리는 것은 매한가지였다.

   “할 수 있어. 이길 수 있어!”

   전엔 이 거리까지 왔는데도 초능력을 얻지 못해 도망쳤었다.

   도망가는 도중에 놈의 날개뿔에 등을 맞았지.

   이번엔 도망치지 않아.

   땅 익룡이 날개를 펼치고 뿔을 내 쪽으로 세웠다.

   그것을 염동력으로 띄우기 위해 손짓했다.

   땅 익룡이 공중에 떴다.

   “큭……. 머리가……”

   갑자기 어지러워졌다.

   염동력은 정신력으로 물체를 움직이는 거였지.

   저놈이 너무 크고 무거워서 더 많은 정신력을 소모하는 건가?

   이대로 가면 힘들겠는데.

   -쿵!

   공중에 떴던 땅 익룡이 떨어졌다.

   새라는 놈이 공중에 띄워줬는데도 날지를 못하냐…….

   땅 익룡이 잠시 비틀거리며 날개를 짚으며 일어났다.

   오케이, 확인.

   정신력이 필요하다.

   바로 정신력 20포인트 올렸다.

   -끼익, 끼이익!

   다시 공중에 띄워 땅으로 내리꽂았다.

   -쿵!

   정신력을 찍었기 때문인가, 조금 덜 어지럽다.

   그래도 어지러운 건 마찬가지다.

   미쳐버리기 전에 잡아야 한다!

   놈이 다시 일어나며 날개를 발처럼 쓰며 네발로 달려왔다.

   이번엔 놈을 뒤로 보내 거리를 벌렸다.

   허리춤에서 조류 전용 단검을 뽑았다.

   날지도 못하고, 날개를 다리로 쓰는 새라니.

   그런 네놈이 날개까지 없어지면 뭐가 남지?

   단검을 띄워 놈 쪽으로 보냈다.

   유기한의 조류 도감 1화, 「땅 익룡 공략법」

   ‘땅 익룡은 엄청난 날개 힘으로 공격하는 새입니다.’

   나 혼자 직접 수소문해서 만들어낸 공략법.

   ‘그에 비해 날갯죽지가 매우 약하고 섬세해, 여기를 노리시면 됩니다.’

   내 첫 업로드 영상이었다.

   ‘등을 보기 어렵겠지만, 날개를 끊어내면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힘내주시길 바랍니다!’

   단검을 띄워 놈의 등 뒤로 보냈다.

   이거 상성이 너무 좋잖아?

   이번엔 내가 네놈의 어깨를 박살 내주겠다.

   멀찍이 서서 놈의 날갯죽지를 목표로 단검을 움직였다.

   단검을 이리저리 흔들어댔다.

   “으아아아!”

   -서걱, 서걱.

   정신을 집중해라.

   오로지 저놈을 죽일 생각만 해라.

   흐트러지면 한 번에 위험해질 수 있다.

   “으으읏…….”

   -서걱, 서걱, 서걱.

   단검을 마구마구 휘둘러댔다.

   놈의 어깨를 베고, 또 베었다.

   멀찍이서.

   -끼우욱!

   놈의 날개가 끊어졌다.

   놈은 더는 네발로 달릴 수 없다.

   느려진 땅 익룡의 다리까지 마구잡이로 썰어댔다.

   “가만히 있으라고!”

   다리는 꽤 단단했다.

   몇 번이고 베어도 끊어지지 않았다.

   그래도 타격이 되었나, 놈이 풀썩 땅에 내려앉았다.

   “어이, 내 조류 도감 1호 새 양반.”

   놈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너 때문에 내가 못 한 게 정말 많거든? 이 씹새야.”

   지금이야말로 내가 언제나 떠올렸던 그림을 실현시킬 때다.

   놈의 심장을 찌르고 목을 베고 뇌를 쥐어짜낸다!

   “너를 죽이고, 히어로가 되겠다.”

   놈의 머리를 발로 밟으려 했다.

   -끼이익! 끼이이익!

   어이쿠, 위험했네. 물릴 뻔.

   입만 살아서는.

   가까이서는 위험하겠네.

   다시 멀찍이 섰다.

   단검을 띄우고, 원하던 것을 마음껏 했다.

   심장.

   -푹찍!

   단검을 앞뒤로 쑤셔 박았다.

   -푹찍, 푹찍, 푹찍…….

   “죽어! 죽어! 죽어!”

   머리.

   -푸슉, 푸슉, 푸슉…….

   그런데 갑자기,

   -콰광, 쾅!

   번개가 내리쳤다.

   놈이 새까맣게 타버려 움직이지 않았다.

   “죽…… 어?”

   “헉, 헉……. 괜찮으세요? 다친 덴 없어요?”

   맞다.

   나타날 때가 되었구나.

   땅 익룡에 정신 팔려 있었다.

   “이재천……!”

   이 개새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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